문수성지 오대산 월정사
가련하다 우리 인생 허망하기 그지없네.
어제같이 청춘 시절 어언간 백발(白髮)일세. 백옥같이 곱던 얼굴 검버섯은 웬일이며, 눈물 콧물 자연(自然) 흘러 정신조차 희미하다. 오호라 이 내 몸이 믿을 것이 하나 없네.
풀 끝에 이슬이오 바람 속에 등불이라. 아침나절 성턴 몸이 저녁나절 병이 들어 애고애고 고통 소리 사지백절(四肢百節) 오려낸다 천당 갈지 지옥 갈지 앞길이 망연하니 십념왕생(十念往生) 일렀으나 아픈 생각 앞을 가려 염불 생각 아니나니 임갈굴정(臨渴掘井) 할 수 없네 .
처자 권속 은애(恩愛)하나 나를 위해 대신 가며 금은 옥백 쌓았으나 뇌물 바쳐 면할 손가 돈궤 쌀독 살림살이 이부자리 맛난 음식 하루 아침 다 버리고 이 내 고혼(孤魂) 홀로 가니 아득한 황천(黃天) 길에 따르나니 업(業) 뿐일세 자작자수(自作自受) 내 탓이니 누구를 원망하랴
이러므로 지혜인(智慧人)은 초년 발심 출가(出家)하여 애욕정을 다 버리고 부지런히 공부하네 삼계대사(三界大師) 부처님이 간절히 이르시되 마음 깨쳐 성불하여 불생불멸(不生不滅) 저 국토(國土)에 상락아정 무위도(常樂我淨無爲道)를 사람마다 다 된다고 팔만장교(八萬藏敎) 전했으니 어서어서 닦아 보세 닦는 길을 말하려면 팔만사천(八萬四千) 많은 법문 바닷물로 먹물 삼아 쓴다 해도 못다 하니 대강 추려 적어 보세몸뚱이는 송장이오 망상번뇌(妄想煩惱) 본래 없네
앉고 눕고 가고 오고 잠도 자고 일도 하고 사람대해 말을 하며 글도 읽고 사기(史記) 쓰며 배고프면 밥을 먹고 목마르면 물을 마셔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에 밝고 밝게 아는 것이 이것이 무엇인가?
크고 작은 모든 일들 찾아보면 전혀 없네.
이 무슨 도리(道理)인가? 공(空)인가 유(有)인가 그 뜻을 알 수 없네 들어가고 들어오며 찾아가고 찾아오며 의심하고 의심하며 보아 가고 보아 오되 하루도 열두 때와 오줌 누고 똥 눌 때며
사무 보고 길갈 때며 밥 먹고 옷 입을 때 조금도 간단(間斷) 없이 부지런히 화두 들어 전념(前念) 후념(後念) 끊어지고 일념(一念)이 현전(現前)하야 밥 먹기도 잊어지고 잠자기도 폐해질 때 이때가 좋은 때니 홀연히 깨달으면 본래 생긴 나의 부처 천진면목(天眞面目) 절묘(絶妙)하다 희도 않고 검도 않고 늙도 않고 젊도 않고 크도 않고 적도 않고 나도 않고 죽도 않고 일체명상(一切名相) 다 여의어 활짝 열려 막힘없네. 천만법문 무량한 뜻 한 분상 마음 자리 옛 조사(祖師)의 이른 말씀 과연 허언(虛言) 아니로세.
선지식(善知識)을 찾아가서 요연(了然)히 인가(印可) 받아 다시 의심 없앤 후에 여래명훈(如來明訓) 잊지 마소 계율성곽(戒律城郭) 높이 쌓아 내외청정(內外淸淨) 살피소서 수행 없는 참 수행과 방편 없는 참 방편은 삼세제불(三世諸佛) 역대조사(歷代祖師) 이구동성(異口同聲) 일렀으니 자고자대(自高自大) 부디 말고도회보양(韜晦保養)하는 본을 보소
지혜는 전광 같고 수행은 궁자 같이 문수보살 이른 말씀 본색납자(本色納子) 진도인(眞道人)이 어찌하야 명리(名利)를 쫓을 손가 띠집 토굴 깊은 곳과 사람 많고 시끄러운 곳 인연 따라 자재하며 지혜검(智慧劒) 날을 세워 오욕팔풍(五欲八風) 역순경계(逆順境界)
봄 눈같이 사라지고 불성계주 심지인(佛性戒珠心地印)은 추월(秋月) 같이 새로와라 무한청풍(無限淸風) 이는 곳에 노지백우(露地白牛) 잡아타고 구멍 없는 피리 들고 태평 일곡(太平一曲) 더욱 좋다.
꿈 속 같은 이 세상에 빈 배 같이 떠놀면서 인연중생 제도하면 보불은덕(報佛恩德) 이 아닌가.
동체대비(同體大悲) 마음으로 병든 걸인 괄시 마소 평등원각(平等圓覺) 대가람(大伽藍)에 소요자재(消遙自在) 나 뿐이여 수풀 계곡 한적한 곳 무심객(無心客)을 누가 알랴 여보시오 유지장부(有志丈夫) 이 내 말씀 들어 보소
부처님 말씀 안 믿으면 무슨 말을 믿으며 사람 되어 안 닦으면 어디에서 닦으련가 쓸데없는 탐애정(貪愛情)은 싹도 없이 잘라 내고 자기에게 있는 보물 부지런히 살피시오 시간이 무상하여 늙는 것만 재촉하니 서산 해 다 저문 때 후회한 들 무엇하나 푸줏간에 가는 소가 자욱자욱 사지(死地)로세 세월이 무정하여 백년이 잠시로다.
예전 사람 공부(工夫)할 때 하루 해가 가게 되면 다리 뻗고 울었거늘 나는 어이 방일(放逸)하며 예전 사람 공부(工夫)할 때 잠 오는 걸 성화하야 송곳으로 찔렀거늘 나는 어이 게으른가 참선 잘한 저 도인은 앉아 죽고 서서 죽고 마음대로 자재(自在)하니 나도 어서 정진(情進)하여 섣달 그믐 당하거든 극락왕생 하여 보세
아뢸 말씀 무궁하나 공부에 방해될까 이만 대강 그치오니 출격장부(出格丈夫) 살피시오 불조(佛祖)의 교훈 방편 자기에게 돌이켜서 진실되이 참구(參究)하고 말에 끌려 안다 마소 다시 한 말 있사오니 오늘은 임술(壬戌)년 정월 십 오일(正月十五日) 이올시다
다시 한 말 있사오니 봉래산인 한암 중원은 감로봉 아래 건봉사 선원 방장실에서 이를 짓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