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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암일발록

해마다 새 가지가 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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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1-07-11 13:46 조회6,572회 댓글0건

본문

해마다 새 가지가 돋다
년년갱유신수재하야 난난춘풍졸미휴라(年年更有新修在하야 惱亂春風卒未休라)
(해마다 새 가지 돋아나 춘풍을 끝없이 뇌란시키네)



■ 번역 ■

어떤 수좌가 경청선사(鏡淸禪師)1)께 물었다.
“새해 아침에도 또한 불법의 진리가 있습니까?”
경청선사가 이르시되, “있느니라.”
수좌가 이르되, “어떤 것이 신년의 불법입니까?”
선사가 이르시되, “새해 복 많이 받게.”
수좌가 이르되, “스님께서 대답해 주신 데 대하여 사례하나이다.”
선사가 이르시되, “경청이 오늘 손해 보았도다.”
또 한 수좌가 명교선사(明敎禪師)2)에게 물었다.
“새해 아침에 불법이 있습니까?”
선사가 이르시되, “없느니라.”
수좌가 이르기를, “해마다 좋은 해요 날마다 좋은 날인데 어째서 없습니까?”
선사가 이르시되, “장씨 노인이 술을 먹었는데 이씨 노인이 취했느니라.”
수좌가 이르기를, “소위 어르신이라는 분이 용두사미가 되었습니다.”
명교선사가 이르시되, “명교가 오늘 손해 보았도다.”
뒷날 운문고선사(대혜종고)가 이 이야기를 거론하여 이르시되,
“이 두 존숙(尊宿)이 한 사람은 높고 높은 봉우리를 향하여 섰으되 이마를 드러내지 않았고, 한 사람은 깊고 깊은 바다밑을 향하여 다녀도 발을 적시지 않았으니, 옳기는 옳으나 약간의 잘못을 면하지 못했도다.”

오늘 밤 혹 어떤 사람이 나(┳, 대혜종고)에게 묻기를, “새해 아침에도 불법이 있는가?” 하고 묻는다면, 나는 그에게 말하기를,

“오늘 한 떼거리의 하인 놈들이 찻집에서 어설픈 노래와 덩더꿍이 춤으로 귀신을 희롱하다가 점흉존자(點胸尊者)의 악심을 돋구어서 발우봉(鉢盂峰)을 들어 항하사 세계 밖으로 던지니, 교진여3)가 놀라서 허겁지겁 노주(露柱)4)를 거꾸로 타고 한쪽만 아는 선객〔擔板漢〕5)의 콧구멍으로 뛰어 들어가 서주(舒州)의 천주봉(天柱峰)을 흔들어 쓰러뜨리니, 안락산신(安樂山神)이 참을 수 없어서 뛰쳐 나와 존자(尊者)의 가슴을 잡아 주저앉혀 이르되, ‘존자여, 그대가 이미 아라한(阿羅漢)6)이라면 삼계이십오유(三界二十五有)7)의 진노(塵勞)를 벗어났고, 분단생사(分段生死)8)를 초월했거늘 어찌하여 아직도 허다한 무명이 있는가?’”

그 한 질문에 존자(尊者)는 정신이 어리둥절하여 다시 불전(佛殿)으로 돌아와 셋째 자리에 앉아 여전히 가슴을 두드리고 팔뚝을 두드리면서 말하되,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라 외치리라.” 하고는 이어 스스로 말하되, “그만 두어라, 고(┳)상좌야. 새해 아침에 불법을 물었거늘 어째서 허공에서 곤두박질 치면서 헛소리로 사람을 속이는가?” 한참 있다가 말하되, “고(┳)상좌가 오늘 손해를 보았도다.” 하시니, 이 위의 세 존숙의 답화가 각각 출신처가 있어서 기특한 가운데 다시 기특하고 미묘한 가운데 더욱 미묘하나, 자세히 점검해 보면 평지 위에서 사람들을 미치게 하여 마칠 날이 없도다.

오늘 혹 어떤 사람이 한암에게 묻기를, “새해 아침에 불법이 있습니까?” 하면, 곧 그를 향하여 말하되, “오대산 위에 그물을 치리라.”라고 말할 것이니, 만약 어떤 이가 이 말을 알면 일생동안 참구하던 일을 마치게 되리라.

비록 그러나 요즈음 이 도리에 딱 맞는 사람을 얻기 어려우니 시절이 그래서인가, 숙명적인가. 또한 어찌하여 그러는가.

또 기억하건대, 심문분선사(心聞賁禪師)가 경청·명교 양 존숙의 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송(頌)하였다.

七寶盃酌葡萄酒하고
金華紙寫淸平詞로다.
春風靜院無人見하니
閑把君王玉笛吹로다.

이 송을 자세히 해석하자면,

칠보의 보배 잔에 포도주를 마시고
금화지(金華紙) 위에다 청평사(淸平詞)를 쓰노라.
봄바람 고요한 후원에 보는 사람 없으니
한가롭게 군왕의 옥피리를 잡아 부노라.

이 게송에 무한한 맛과 기권(機權 : 방편)이 사람의 흉금을 서늘케 하고 여흥이 진진하여 한 번 읽으면 일체 진로망념(塵勞妄念)이 끓는 물에 얼음 녹듯하여 자연히 적양화(摘楊花)9) 소식을 얻는 줄 알지 못하거니와, 다시 한 번 살펴보면 바람이 없는 데 파랑을 일으킨 것이고, 일이 없는 데 일을 만든 것이다. 어찌 이렇듯이 낭자한고.

한암에게 또한 게송이 하나 있으니, 기권(機權)의 의미는 비록 옛 사람의 게송(頌)에 미치지 못하나 직절현현(直截顯現)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보기가 쉬우니 한번 대중께 들어 바치려 하노라.

舊歲已隨石猿去하고
新年暗逐木鷄來라
時人善聽木鷄聲하고
更莫戀顧石猿才어다

이 게송을 다시 한 번 해석할 것 같으면,
지난 해는 이미 돌잔나비를 따라 갔고
새해는 가만히 나무 닭을 쫓아오는구나.
지금 사람들은 나무 닭 소리를 잘 들을 것이요
다시 돌잔나비 재주를 그리워하지 말지니라.

그러나 비록 보기는 쉬우나 이 게송에 문이 둘이 있으니 만약 누가 가려내면 네가 친히 조사를 친견했다 하리라. 알겠는가. 한암이 오늘 손해를 보았도다.

■ 原文 ■

僧이 鏡淸禪師께 問하되 新年頭에 還有佛法也無잇가. 師云하시되 有하니라. 僧云하되 如何한 것이 新年頭佛法이니잇고. 師云하시되 元正啓祚니라. 僧云하되 師의 答話하심을 謝禮하나이다. 師云하시되 鏡淸이 今日에 失利로다.

또 僧이 明敎禪師께 問하되 新年頭에 還有佛法也無잇가. 師云하시되 無하니라. 僧云하되 年年是好年이요 日日是好日이오니 爲什큯하야 却無니잇고. 敎云하시되 張翁이 喫酒어늘 李翁이 醉니라. 僧云하되 老老大大가 龍頭蛇尾로소이다. 敎云하시되 明敎가 今日에 失利로다.

後에 雲門┳禪師가 이 話를 擧하여 云하시되 此 二尊宿이 一人은 高高峰頂을 向하여 立하되 頂을 드러내지 아니하고 一人은 深深海底를 向하여 行하되 脚을 濕하지 아니하니 是則是也나 조그만치 淆訛가 有함을 免치 못하도다.

今夜에 或 有人이 ┳上座에게 問하되 新年頭에 還有佛法也無아 하면 다못 他를 向하여 道하되, 今日에 一隊奴僕이 茶堂裏에서 村歌社舞로 些少神鬼를 弄하다가 바로 시러곰 點胸尊者가 惡心을 發하게 하여, 鉢盂峰을 잡아 한번 던져 恒河沙世界 밖으로 던져 지나 ⓝ陳如가 크게 놀라 �怖憧惶하야 露柱를 거꾸로 타고 擔板禪和의 鼻孔裏로 뛰어들어가 舒州 天柱峰을 쳐서 거꾸러뜨리니, 安樂山神이 참다 못하여 出來하여 尊者의 가슴을 잡아 주저앉혀 이르되, 尊者야 네가 이미 阿羅漢이라 稱할진댄 三界 二十五有 塵勞에서 벗어나 分段生死를 뛰어났거니 무엇을 因하여 許多한 無明이 有한고.

이 一問을 만난 尊者는 精神이 어지러워 佛殿裏에 돌아와 第三位에 打坐하여 前과 같이 點胸點肋하여 道하되 天上天下에 唯我獨尊이라 한다 하시고 스스로 이르사되 住住하라, ┳上座야 他가 新年頭佛法을 問하였거늘 어찌 一向에 虛空裏를 向하여 筋斗를 치며 脫空을 說하야 사람을 속이는고. 良久云 ┳上座가 今夜에 失利로다 하시니, 已上 三尊宿의 答話가 各各 出身處가 有하여 奇特中에 다시 奇特하고 微妙中에 더욱 微妙하나 자세히 點檢해 오면, 平地上에 人家 男女를 惑亂케 하여 마칠 날이 있지 못하도다.

今日에 或 有人이 漢岩에게 問하되 新年頭에 還有佛法也無아 하면 곧 他를 向하여 道하되 五臺山上에 以網取之라 하리니 若人이 識得此話하면 一生參學事를 畢하리라.

雖然 如是나 而今此道에 難得其人이니 時耶아 命耶아 且奈何오. 또 記得하니 心聞賁禪師가 鏡淸, 明敎 兩尊宿의 話에 對하여 頌云하시되

七寶盃酌葡萄酒하고
金華紙寫淸平詞로다.
春風靜院無人見하니
閑把君王玉笛吹로다.

이 頌을 자세히 釋하면 七寶盃에 葡萄酒를 가득히 붓고 金華紙에 淸平詞 曲調를 잘 써서 있도다. 봄바람 고요한 院의 사람이 보는 이가 없으니 한가롭게 君王의 玉笛을 잡아 불도다 하셨으니 이 頌에 無限한 趣味와 機權이 사람의 胸襟을 서늘케 하고 餘興이 津津하야 잡아와 한번 읽으면 一切塵勞妄念이 끓는 물에 얼음 녹듯 하여 自然히 摘楊花 消息을 얻는 줄 알지 못하거니와 다시 한 번 살펴보면 無風起浪이며 無事生事라 어찌 시러곰 이렇듯이 狼藉한고.

漢岩이 또한 一頌이 有하니 機權 意味는 비록 古人의 頌에 미치지 못하나 直截顯現하야 사람으로 하여금 보기가 쉬우니 試驗삼아 大衆께 들어 바치려 하노라.

頌曰

舊歲已隨石猿去하고
新年暗逐木鷄來라
時人善聽木鷄聲하고
更莫戀顧石猿才어다

이 頌도 한번 다시 釋할 것 같으면 옛 해는 이미 돌잔나비를 따라가고 새해는 가만히 나무닭을 쫓아오는지라 땟사람은 나무닭의 소리를 善하게 들으시고 다시 돌잔나비 재주를 생각하여 돌아보지 말지어다.

雖然易見이나 此頌이 有兩負門하니 若人이 辨得出하면 許汝親見祖師來하리니 會큯아. 漢岩이 今日에 失利로다.

1) 경청(鏡淸, 868~937) : 법명은 도부(道�), 설봉의존의 제자.
2) 명교(明敎, 1007~1072) : 법명은 계숭(契嵩), 불일선사(佛日禪師)라고도 하며 중국 선종의 하나인 운문종 스님. 저서에 《전법정종기(傳法正宗記)》, 《심진문집》 등이 있다.
3) 교진여 : 부처님께서 성도하신 후 최초로 교진여 등 5명의 비구에게 설법하셨다. 교진여는 부처님의 제자이다.
4) 노주(露柱) : 불당이나 법당 밖 정면의 좌우에 서 있는 두 기둥.
5) 담판한(擔板漢) : 한쪽만 알고 다른 것은 모르는 사람, 사고가 경직된 사람. 목주(睦州)스님이 한 스님을 불렀다. “대덕이여!” 그 스님이 머리를 돌리자 목주스님이 말했다. “판자를 짊어진 사람이구나.”라는 데에서 유래된 말.
6) 아라한(阿羅漢) : 소승의 교법을 수행하는 성문(聲聞) 4과의 가장 윗자리.
7) 이십오유(二十五有) : 유(有)는 존재란 뜻. 중생이 나서 변천을 거듭하는 존재를 25종으로 나눈 것.
① 4악취(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② 4주(동불바데, 남염부주, 서구야니, 북울단월)
③ 6욕천(4왕천, 도리천, 야마천, 도솔천, 화락천, 타화자재천)
④ 색계(초선천, 범왕천, 제2선천, 제3선천, 제4선천, 무상천, 54함천)
⑤ 무색계(공무변처천, 식무변처천, 무소유처천, 비상비비상처천)
이를 줄여서 3계 6도라 한다.
8) 분단생사(分段生死) : 생사(生死)로서 육도를 윤회하는 것을 말함.
9) 적양화(摘楊花) : 목주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하직을 고하니, 선사가 말하되 “부처님 계신 곳에도 머무르지 말고, 부처님 안 계신 곳은 빨리 지나가서 삼천리 밖에서 사람을 만나거든 잘못 이야기하지 말라.” 하였다. 그 중이 대답하되 “그러면 떠나지 않겠습니다.” 하였다. 이에 선사가 “버들꽃을 꺾고 버들꽃을 꺾어라.” 하였다.


■ 해설 ■
이 역시 <선원(禪苑)>지(誌) 제4호(1935년 10월호)에 실린 법문이다. 초판에서는 <항상 새로운 날>이라는 한글 제목으로 수록되었으나 글의 뜻을 살려서 <해마다 새가지가 돋다>라고 바꾸었음. 내용은 경청선사(鏡淸禪師)와 명교(命敎禪師), 그리고 고(果) 상좌(大慧宗果)도 “오늘 손해 보았다.” 고 했고, 한암(漢岩)선사도 “오늘 손해 보았다.”는 일구(一句)로 끝을 맺고 있다. 모두 손해가 적지 않았다는 것인데, 이 역시 활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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