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봉스님에게 보내는 서간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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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3-12-04 12:48 조회6,401회 댓글0건본문
경봉스님에게 보내는 서간문(1)
■ 번역 ■
보내온 글과 게송 네 글구를 읽어보니 글이 모두 진지하고 구절구절이 활기가 넘칩니다. 어찌 활달한 대장부 남아가 후오백세(後五百歲) 뒤에 다시 태어날 것을 기약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우러러 찬탄하여 마지않으며 뛸 듯한 기쁨을 무어라 형언할 수 없구료.
이렇게 깨달은 사람의 분상(分上)에서 비유하자면, 커다란 불덩어리와 같아서 무엇이든지 닿기만 하면 타버리니 어찌 한가로운 말과 방편(方便)으로 지도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깨달은 뒤의 조심은 깨닫기 전보다 더 중요한 것입니다. 깨닫기 전에는 깨달을 분(分)이라도 있지만, 깨달은 뒤에 만일 수행을 정밀(精密)히 하지 않고 게으름을 피우면 여전히 생사(生死)에 유랑(流浪)하여 영영 헤어나올 기약이 없게 됩니다.
흔히 옛 사람들이 깨달은 뒤에 자취를 감추고, 이름을 숨기고 물러나 성태(聖胎)를 오래오래 기르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어쩌다 사람을 대하면 지혜의 칼을 휘둘러 마군을 항복받고, 어쩌다 사람이 오면 벽을 보고 돌아 앉아서 그렇게 하기를 30년, 40년 내지 평생토록 영영 산에서 나오지 않기도 하였으니, 예전에 상상(上上)의 큰 기틀을 지닌 분들도 그렇게 하였거늘 하물며 말엽(末葉)의 우리들이겠습니까.
대혜화상(大慧和尙)이 말하기를,
“간혹 근기(根機)가 날카로운 무리들이 많은 힘을 들이지 않고 이 일을 판단하여 마치고는 문득 쉽다는 생각을 해서 다시 닦지 않다가 오랜 세월이 지남에 영영 마군에게 포섭된다.”
이와 같이 고구정녕한 말씀으로 후생(後生)을 지도하여 삿된 그물에 걸리지 않게 하신 말씀을 일일이 열거할 수가 없습니다. 또한 이와 같은 방편을 형도 모르는 바가 아니겠지만, 이미 물어 왔고 또한 최상의 희유한 일에 대하여 즐거운 마음이 자연 용솟음쳐 부득이 간담을 털어놓고 간략하게나마 예전 조사들의 오후수행문(悟後修行門)을 한두 가지 들어서 말하지 않을 수 없으니, 행여나 익히 들어서 아는 것이라고 소홀히 하지 마시고 다시 자세히 살피고 거듭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 스님이 귀종화상(歸宗和尙)1)에게 물었습니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네가 곧 부처이다.”
“어떻게 보임(保任)해야 합니까?”
“한 티끌〔츄〕이라도 눈에 들어가면 공화(空花, 눈병 난 사람에게 보이는 꽃 같은 무늬)가 어지러이 떨어진다.”
이 법문에서 ‘티끌 예(츄)’ 한 자의 뜻을 상세히 알면 오후생애(悟後生涯)가 자연히 만족할 것입니다.
또 석공화상(石鞏和尙)2)이 마조(馬祖)3)께 참례하여 법(法)을 얻은 뒤 삭발을 하고 시봉(侍奉)하던 어느 날 부엌에서 일을 하다가 문득 하던 일을 잊고 망연히 앉아 있었습니다. 그때 마조(馬祖)가 물었습니다.
“여기서 무엇을 하느냐?”
“소를 먹이고 있습니다.”
“소를 먹이는 일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한 번이라도 소가 풀밭에 들어가면 고삐를 잡아 끌어 당깁니다.”
“네가 소를 잘 먹일 줄 안다.”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파예(把쵸) 두 글자를 자세히 알면 오후생애(悟後生涯)를 물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상세하게 안 뒤에는 알았다는 것도 또한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물을 마심에 차고 더움을 스스로 알 수 있지만 남에게는 알려줄 수 없듯이, 실로 이른바 스스로 즐거울지언정 그대에게는 억지로 줄 수가 없고, 푸른 바다가 마르는 것을 맡겨 따를지언정 마침내 그대에게 통하게 할 수는 없다 한 것이 이 말입니다.
어떤 사람이 한암(漢岩)에게 묻기를,
“깨달은 뒤에 어떻게 보임(保任)해야 합니까?” 하고 질문한다면, 한암은 곧 아프게 한바탕 때릴 것입니다.
“위의 옛 성인들의 말과 같습니까, 다릅니까?”
허허. 차치(且置)합니다. 이 일은 이렇게 마치고 세상에서 쓰는 투의 인사는 하지 않겠습니다.
무진(1928년) 3월 초이렛날
문제(門弟) 방한암 배사(拜謝)
■ 原文 ■
細讀來書 及頌四首하오니 字字眞情과 句句活意라 何期大丈夫 活男兒가 復出於後五百歲後哉릿가 讚仰不已와 歡喜踊躍을 不可勝言이로다 如此悟人分上에난 警如一團火相似하와 物觸便燒어니 有何閑言語와 指導方便之爲哉릿가 雖然悟後注意가 更加於悟前이오니 悟前則將有悟分이어니와 悟後에 若不精修하야 墮於懈怠면 則依前流浪生死하야 永無出頭之期故로 古人悟後에 隱跡逃名하야 退步長養者는 以此也라 或對人則揮劍降魔하고 或人來則面壁背坐하고 或三十年 四十年으로 乃至一生을 永不出山하니 古人上上機도 如是온 況末葉吾輩乎잇가 又大慧和尙云 往往利根之輩가 不費多力하야 打發此事하고 便生容易心하야 更不修治하야 日久月深에 永爲魔所攝持라하시니 如是苦口丁寧으로 指導後生하야 不墮邪網케 하신 言句를 不可枚擧외다 且如是方便을 兄亦非不知矣로대 旣有下問이요 而又此最上希有事에대하야 隨喜之心이 自然泉湧故로 不得不披露肝膽이옵기 略擧古祖師의 悟後修行門 一二段하오니 幸勿以慣聞已知로 爲疎忽하시고 更加詳審細思焉하소서 僧問 歸宗和尙호대 如何是佛고 宗云卽汝是니라 僧云 如何保任하리잇고 宗云 一츄在眼에 空花亂墜라하셧씨니 此法門에 對하야 츄之一字를 詳細知得하오면 悟後生涯가 自然滿足이올씨다 又 石鞏和尙이 參馬祖得法하야 仍�髮하고 侍奉一日에 在廚下作務라가 忽忘務而坐하야 馬祖問云 汝在此作甚큯오 鞏云 牧牛라 祖云 牧牛事는 作큯生고 鞏云 一回落草去면 把鼻쵸將回로다 祖云 汝善牧牛라 햐셧씨니 此에 對하야 把쵸兩字를 詳細知得하오면 悟後生涯를 不必問人이올시다 然詳細知得後에 知得도 亦無올시다 到這裏하야 如人飮水에 冷暖自知라 拈出呈似人不得하니 眞所謂 只可自怡悅이언정 不堪持贈君이요 任從滄海竭하니 終不爲君通者也라 雖然如是나 有人問漢岩하되 悟後에 如何保任하리잇고하면 岩은 卽痛與一棒호리니 與上來古聖語로 同가 別가 呵呵라 且置하고 是事只此而已옵고 不備世諦上例套하노이다
戊辰(1928년) 三月 初七日
門弟 方漢岩 拜謝
■ 번역 ■
만약 일생(一生)의 일을 원만하고 구족하게 하고자 한다면, 옛 조사의 방편 어구(語句)로써 스승과 벗을 삼아야 됩니다. 우리나라 보조국사께서도 일생토록 《육조단경(六祖壇經)》으로 스승을 삼고 《대혜서장(大慧書狀)》으로 벗을 삼았습니다. 조사(祖師)의 언구(言句) 중에서도 제일 요긴한 책은 대혜(大慧)의 《서장(書狀)》과 보조(普照)의 《절요(節要)》와 《간화결의(看話決疑)》가 활구법문(活句法門)이니, 항상 책상 위에 놓아두고 때때로 점검해서 자기에게 돌린 즉 일생(一生)의 일이 거의 어긋남이 없을 것입니다. 제(弟) 또한 여기서 힘을 얻은 것이 있습니다.
또한 《서장》과 《결의》와 《절요》의 끝 부분을 의지한다면, 활구(活句)를 깨닫기가 쉽고도 쉽습니다. 이 말이 비록 번거로운 것 같지만, 그러나 일찍이 방랑을 해보아야 나그네의 심정을 안다고 했으니 제발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만약 한 때의 깨달음에 만족하여 뒤에 닦음을 지속하지 않으면, 영가(永嘉)께서 말한 바, “모두 공(空)이라고 여겨 인과를 무시하고 어지러이 방탕하여 재앙을 초래한다.”는 것이 이것이니, 절대로 세상 천식배들의 잘못 알고 고집하여 인과를 무시하고 죄와 복을 배척하는 일들을 배우지 마십시오.
만일 활구(活句)를 깨닫지 못하고 다만 문자(文字)만 본다면 또한 의리(義理)에 걸려서 도무지 힘을 얻지 못하며 말과 행동이 서로 어긋나서 증상만인(增上慢人)4)을 면치 못하리니 간절히 모름지기 뜻을 두소서.
■ 原文 ■
若欲一生事 圓滿具足인댄 以古祖師 方便語句로 爲師友焉이라 故로 吾國普照國師는 一生以壇經爲師하고 書狀爲友하셧나이다 祖師言句中에도 第一要緊한 冊子는 大慧書狀과 普照節要와 看話決疑가 是活句法門이라 恒置案上하야 時時點檢하야 歸就自己면 則一生事가 庶無差違矣리이다 弟亦此에셔 得力者有하니이다 又依書狀과 與決疑及節要末段하야 擧覺活句가 甚好甚好니이다 如此言語가 雖似繁絮나 然曾爲浪子偏憐客이오니 幸勿忽之焉이어다 若以一時悟處爲足하야 撥置後修하오면 永嘉所謂豁達空撥因果하야 莽莽蕩蕩하야 招殃禍者焉也오니 切莫學世之淺識輩의 誤解偏執撥因果排罪福者焉하쇼셔 若不擧覺活句하고 只看文字면 則又滯於義理하야 都不得力而言行이 相違하야 未免增上慢人하리니 切須在意焉이라
1) 귀종화상(歸宗和尙) : 마조의 제자인 지상선사(智常禪師). 여산(廬山)의 귀종사(歸宗寺)에 머물렀으므로 통칭 귀종화상(歸宗和尙)이라 하며 생몰연대는 미상(未詳)이다.
2) 석공화상(石鞏和尙) : 마조(馬祖)의 제자인 혜장선사(慧藏禪師). 무주(撫州)의 석공(石鞏)에 머물렀으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역시 생몰연대(生沒年代)는 미상(未詳)이다.
3) 마조선사(馬祖禪師, 709~788) : 중국의 유명한 선승. 한주(漢州) 사람. 강서(江西)의 개원사(開元寺)에 들어가 선풍(禪風)을 크게 드날려 그의 법을 이은 이가 백장(百丈)·대매(大梅)·염관(鹽官)·남전(南泉) 등 무려 139인이나 되었다. 시호는 대적선사(大寂禪師)이며 그의 성이 마씨(馬氏)였으므로 세상에서는 통칭 강서(江西)의 마조(馬祖), 혹은 마대사(馬大師)라고 일컬었다.
4) 증상만인(增上慢人) : 4만(四慢)의 하나, 또는 7만(七慢)의 하나. 훌륭한 교법과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서도 얻었다고 생각하여 제가 잘난 체 하는 사람. 곧 자기 자신을 가치 이상으로 생각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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