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산 상원사선원 헌답약기
페이지 정보
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7-02-25 12:47 조회4,804회 댓글0건본문
■ 번역 ■
오대산(五臺山)은 우리나라의 명산이다. 그 웅장하고 깊은 산줄기가 삼백여 리나 쭉 뻗어 있는데 비로봉 아래 중대(中臺) 위에 부처님 정골(頂骨)을 봉안한 탑이 있고, 탑 아래 5리 쯤에 상원사가 있는데 이는 신라 자장(慈藏)법사가 세운 사찰이다. 효소왕(孝昭王)의 태자 보천(寶川)과 효명(孝明) 두 사람이 이 절에서 문수보살의 36종 변화를 친견하고, 상원사 앞에 진여원(眞如院)을 창건하여 문수보살의 불상을 조성하여 봉안하였는데 진여원이 폐허가 되어 부득이 상원사에 옮겨 봉안하였다.
조선조 세조대왕이 몸이 편치 못하여 혜각존자(慧覺尊者)인 신미대선사(信眉大禪師)와 학열(學悅) 등에게 명하여 문수보살에게 기원하다가 문수동자가 등을 밀어주며 목욕시켜 준 것을 친견한 후 곧장 말끔히 씻은 듯이 회복되자 세조가 몹시 기뻐한 나머지 문수동자상을 조성하여 봉안하고, 강릉 신석답(申石畓) 500석 세수(歲收)를 상원사에 넘겨주어 향화(香火)를 끊이지 않도록 주선해 주었다.
아! 고승은 이미 열반하고, 무상한 세월의 변천으로 축원답의 토지는 모조리 월정사에 귀속되어 회중(會衆)의 수효에 따라서 월정사로부터 양식을 지불받아 선승 납자의 뒷바라지를 지탱해 왔었는데, 지난 갑자·을축 두 해 사이에 월정사는 십여만 원의 거액의 부채 때문에 선객의 양식이 한 스님이 주석할 만큼도 공급되지 못하고, 매월 초하루마다 6말의 쌀을 지불받아 방을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무진년 여름, 납자(衲子) 5~6인이 상원사에 모여 들었지만, 양식을 조달하기 어렵자 설운 노스님이 쌀 50말을 보내주어 안거를 마칠 수 있도록 마련해 준 후, 경오년 겨울 또다시 쌀 50말을 보내어 선량(禪糧)을 채워 주었고, 그 이듬해 여름·겨울로부터 임신년 여름까지 변함이 없었으며, 이어 논 4529평, 도지 37석, 세수(歲收) 27석을 거두어서 세수(歲收)를 상원사에 헌납하여 납자의 뒷바라지를 하고, 10석 세수(歲收)는 여래탑(如來塔)에 헌납하여 향화(香火)가 끊이지 않도록 하였는데, 두 곳의 세수는 모두 상원사에 귀속시키고 탑묘(塔廟)의 공양미와 중대(中臺)의 선량(禪糧)은 상원사로부터 일에 따라서 지출하여 이곳 저곳에서 서로 나누어 가지는 폐단을 없도록 하였다. 이는 논을 헌납한 설운스님의 부모와 선사 및 설운스님의 사후에 매년 기일(忌日)마다 여래탑과 문수전, 나한전에 축원하여 천도하도록 배려함이었다.
거룩하고 장한 일이다. 이는 보살의 원력이시다. 후인 또한 스님의 원력과 같이 성심으로 보호하여, 선회(禪會)를 폐지하지 않는다면 옛 석가를 먼저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요, 오늘날의 미륵 또한 뒤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만일 세력을 믿고 대중을 속이거나 사사로운 일로 대중을 무시하여 만에 하나라도 다른 사찰에 귀속시킨다든지, 또는 마음대로 낭비하고 전용하는 자는 인과가 분명하여 털끝만큼도 어긋남이 없이 과보를 받을 것이니 두려운 일이 아니겠는가. 이 때문에 이를 기록하노라.
한암중원 삼가 짓다
■ 原文 ■
五臺는 國之名山也라 其雄深包藏之勢는 盤根三百餘里하야 而毗盧峰下, 中臺之上에 奉安如來頂骨塔廟하고 廟下五里許에 有上院寺하니 蓋羅代慈藏法師所建也라 孝昭王 太子 寶川, 孝明兩人이 親見文殊菩薩三十六變化於此寺하고 寺前에 創眞如院하야 造文殊像而安之러니 院已廢墟하야 移安于上院寺하다
世祖大王이 有不豫하야 命慧覺尊者 信眉大禪師, 學悅等하야 祈願于文殊像前이라가 親見文殊童子背沐浴하고 卽平復이러니 上大悅하야 造童子像而安之하고 賜江陵申石畓 五百石歲收를 付于寺하야 以爲常住香火之資矣라
噫라 高僧已去하고 劫運變遷으로 願畓土地를 盡屬於月精寺하야 隨其會衆多少하야 自月精支拂糧米하야 以護禪衆也라 去甲子乙丑兩年間에 月精寺以負債至於十餘萬圓1)之巨額으로 禪衆糧米 難以供給置一人이요 每朔에 給六斗米하야 守房而已라
戊辰夏에 有衲子五六人이 來集上院에 糧米難辦이어늘 雪耘長老가 納米五十斗하야 以終安居하고 以庚午冬에 又納米五十斗하야 以充禪糧이요 翌年熱寒二際로 至壬申夏에 亦如之하고 而仍捨畓四千五百二十九坪, 睹租三十七石, 歲收二十七石하야 歲收를 納于上院하야 供給禪衆하고 十石歲收는 納于如來塔廟하야 以爲香火之資로대 而兩歲收租는 盡屬於上院하고 塔廟供米와 中臺禪糧은 自上院隨機支出하야 無彼我各分之弊니 而爲其獻畓主之父母與禪師及其身之後事를 年年忌日에 辦供禱祝於塔廟與文殊羅漢三殿而追薦焉이라
歟壯哉라 其菩薩願力也라 後之人이 亦如和尙之願力而誠心保護하야 不廢禪會면 則可謂古釋迦不先이요 今彌勒不後로다 若挾勢欺衆하고 營私滅公하야 或引付于他寺하고 又轉用浪費者는 因果昭然하야 毫釐不�矣리니 可不懼歟아 是爲之記하노라
漢岩重遠 謹識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