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수성지 오대산 월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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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신행Odae mountain Woljeongsa

마음의 달이 아름다운 절
선원소개

문수성지 오대산 월정사

청량선원

청량선원淸凉禪院

청량선원은 오대산을 다른 이름으로 청량산이라고도 하는 데서 유래되었는데 문수보살이 상주하는 지혜의 도량이다.
이 선원(현 문수전)은 1947년 월정사 주지 지암 스님이 금강산 마하연의 건물을 본떠지었다. 동북 45도 방향의 이 선원은 정면 8칸, 측면 4칸의 ㄱ자형 건물이다. 기록에 따르면 조선시대에 신미대사의 발원에 따라 세조가 상원사를 왕실의 원당으로 삼으려고 학열 스님에게 친히 불사를 주관하게 했다.
학열 스님은 세조11년(1465)에 공사를 시작하여 이듬해 동서불전을 비롯하여 누각, 나한전, 청련당, 승당, 선원 등을 건립하였다. 그러나 이 법당은 1946년 선원 뒤에 있던 조실에서 실화로 전소되고 1947년 새로 지은 것이다. 육이오 전쟁 때 군인들이 법당을 불태우려하자 한암 스님이 목숨을 걸고 지켜낸 유명한 일화가 있다.
산중턱의 언덕을 깎아 절을 세운 이곳엔 그래서 "오대산 도인"으로 불렸던 한암 스님을 비롯한 역대 선지식들의 기상과 정신이 면면히 흐른다. 한국 선불교의 중흥조로 추앙받는 경허 스님을 비롯해 수월 운봉 동산 등이 이곳에서 수행했다. 특히 1926년 서울 봉은사 조실로 있던 한암 스님이 "천고에 자취를 감춘 학이 될지언정 삼춘(三春)에 말 잘하는 앵무새의 재주는 배우지 않으리라"며 상원사에 온 뒤로는 탄허, 석주, 효봉, 서용, 고암, 월하, 지월, 고송, 범룡 스님 등 내로라하는 선지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수행공간이라곤 법당인 문수전과 조그만 전각 몇 채가 전부에 감자밥으로 끼니를 때웠지만 안거 때마다 40~50명, 많을 땐 80여 명이 함께 수행 정진했다고 한다. "북방제일선원"이라는 말이 그래서 나왔다.
지난 83년 열악한 살림살이 등으로 인해 문을 닫았던 청량선원이 13년 동안 상원사 주지 소임을 맡았던 퇴우 정념스님이 2002년 문수전 오른편에 150평 규모의 청량선원을 새롭게 건립하고 다시 선객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북방 제일선원으로서의 위상을 되찾게 되었다.
부처님 진신 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이 가깝게 있을 뿐 아니라 해발 800m에 가까운 높은 산중에 위치해 있어 여름에도 청량함을 잃지 않고 땅의 기운도 더없이 좋아 전국의 선원 가운데 방부(입방신청)를 들이기 쉽지 않은 곳으로 더욱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