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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 에세이] 황혼기에 나도 출가합니다 (10월31일-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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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6-11-01 08:36 조회6,29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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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공양을 마친 출가자들이

어두운 적광전 앞마당을

기러기 대열로 걷는다

그들의 걸음은 비록 

석양 노을처럼 뉘엿뉘엿하지만

오늘의 새벽빛을 뚫고 

쉼 없이 걸어온 

오래된 수행자들 같다

“사람은 그 누구인들 산에 들어가서 수도하고 싶어 하지 않으랴 만은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애욕에 얽혀있기 때문이다.” 

월정사 출가학교 앞에 걸려있는 현수막에 쓰여 있는 글이다. 원효대사의 발심수행장에 나오는 글귀다. 애정과 욕망으로 버무려진 도시생활을 뒤로하고 강원도 오대산에 58명의 황혼기의 행자들이 출가를 실천했다. ‘애욕’을 잠시라도 끊어내야 하는 8일간의 짧은 출가 경험을 위해서다. 그간 나이 제한과 건강상의 이유로 기존 출가학교 동참이 어려웠던 고령자들이 용기를 내서 입산한 것이다. 여자 39명, 남자 19명이다. 나이는 지긋하고 행동은 느렸지만, 젊고 파릇한 젊은 단기출가자들보다 왠지 애틋하고, 큰 박수로 환영해주고 싶어지는 출자자들이었다. 그들을 맞이하기 위해 필자는 자원봉사 형태로 월정사에 5박6일을 머물렀다.

황혼기 출가자들이 입산하는 날, 자식들이 캐리어를 끌고 오기도 했고 건강이 좋은 행자는 본인이 직접 가방을 주렁주렁 매달고 출가학교의 문턱을 넘었다. 모두 얼굴에 상기된 빛이 어른거렸지만, 대체로 무거운 얼굴이었다. 누구는 젊은 시절 품었던 입산의 꿈을 한 조각이라도 맛보기 위함일 것이고, 또 누구는 번잡한 세상살이에 지쳐 숨통을 트이게 하기 위함일 것이며, 또 누구는 자식들에게 등을 떠밀려 왔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지만 황혼기의 그들은 공통으로 자신의 삶을 잠시라도 반추하고, 그 힘으로 앞날을 잘 살아내기 위해 출가를 결행한 것이다. 출가자들은 사회생활이라는 옴짝달싹도 할 수 없었던 수렁의 ‘덫’, 야생마처럼 날뛰는 허망한 ‘잡생각’,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숨 막히는 ‘틀’을 벗어나고 싶어 했다.

‘지금까지 비틀거리며 걸어왔던 내 삶이 실패작은 아니었을까?’하는 불안감이 있는 분도 계시고, ‘뒤돌아보면 떳떳하지 못한 인생에 대한 참회’의 마음으로 오신 분도 있었다. 어떤 분은 ‘처자식과의 갈등 끝에 굳어버린 고정관념을 깨트리고, 원만한 마음을 갖고 싶어’ 오신 분도 있었다. 무엇보다 출가자들의 공통점은 절이라는 공간이 이유 없이 끌리고, 부처님 앞에 멍하니 앉아만 있어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위안을 느끼신다는 분들이었다. 그들은 청장년 시절 걸었던 길을 차분히 갈무리하고, 황혼의 출가지만 마음만은 첫새벽처럼 살 수 있는 희망의 길을 모색하는 중이다.

집에서라면 손자, 며느리들에게 큰 어른인 그들이 도량석 목탁소리에 소년 행자처럼 눈을 뜨고, 새벽 4시 30분 찬바람 부는 적광전에 줄을 맞춰 무릎을 꿇고 앉아 어설프게 지심귀명례를 외친다. 식판을 앞에 두고 공양게를 목청껏 함께 외치며, 밥 한 톨이라도 남기면 혼날 것이 두려운 유치원 아이가 되어 출가 행자의 하루를 시작한다.

아침 공양을 마친 출가자들이 아직은 어두운 적광전 넓은 앞마당을 기러기 대열로 걷는 중이다. 그들의 걸음은 비록 석양녘 노을처럼 뉘엿뉘엿한 걸음걸이지만, 마치 어젯밤 황혼 무렵에 첫 마음으로 출발하여 오늘의 새벽빛을 뚫고 쉼 없이 걸어온 오래된 수행자들 같다. 위태하지만 황혼에서 새벽까지 무명(無明)을 헤치며 더듬더듬….

[불교신문3245호/2016년11월2일자] 

이형순 소설가


기사원문보기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152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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