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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성(佛性)을 찾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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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현해스님 작성일03-06-12 00:00 조회5,85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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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성이라고 하는 것은 늙어도 늙지 않고 병들어도 그것은 병들지 않고
몸은 죽지만 그것은 죽지 않고 항상 존재하는 것입니다.

완연한 봄 기운이 천지에 가득하고 만물이 생동하는 춘계지절을 맞아 불자님들마다 부처님의 큰 가피가 두루하기를 기원합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다보면 돈을 벌어야 되고 하루하루가 언제 가는지 모르고 보냅니다. 부처님 말씀에 의하면 누구나 할 것 없이 심지어는 동·식물에 이르기까지 모든 물체에는 근본 바탕이 되는 본체가 있다고 합니다. 그것을 불성(佛性)이라 하고, 자성(自性)이라고 하기도 하고 진심(眞心)이라고 하기도 하며 혹은 여래장(如來藏)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범부들은 그것이 있는지조차도 모르고, 내의 의식작용인 생각으로 느껴지는 것 즉, 밉다·좋다·덥다·싫다는 것이 내 마음인 줄 알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밉다·곱다·싫다는 것에 끌리어 시달리다 보면 다람쥐 쳇바퀴 돌듯 일년 열두 달 365일, 10년, 20년 흘러도 참 자신을 찾지 못할 뿐만 아니라 고통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밉다·곱다·좋다·싫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자기 본래의 모습인 진심 즉, 불성(佛性)을 체득해서 완전한 내것으로 삼아올 때에 가능한 것이며, 이 때엔 죽음조차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불성이라는 것은 본래 태어남이 없기 때문에 늙음도 없고 죽음도 없는 까닭입니다.
자성·진심 혹은 불성이라고 일컫는 이것은 바로 우주의 근본 바탕이요,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공통하고 또한 동일하게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현실에 매몰되고 이끌리다 보니 잊고 살아갑니다. 마치 바닷물에 바람이 불면 물결이 일어나는데 우리는 그 물결만 보고 바닷물을 보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 물이란 것은 추위를 만나면 얼음으로 변하고, 더운 열기를 만나면 수증기로 변하고, 수증기가 다시 찬 기운을 만나면 비라는 모습으로 변합니다. 그래서 비가 되어 내리면 다시 그것이 그 지형에 따라서 아래로 흘러서 시냇물이 되고 시냇물이 흘러가다 보면 강물이 되어 흐르고, 또 강물이 다시 흘러가다 보면 바닷물이 되고 이 바닷물이 열기를 만나 수증기가 되어서 다시 하늘로 올라가며 하나의 ‘사이클’이 되어 되풀이됩니다. 하지만 그 근본은 물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어머니와 아버지라는 인연을 만나서 이 세상에 태어나 청년이 되고, 다시 인연을 만나 결혼해서 살고 또 자식을 낳고 살다보니 늙어서 영감 할머니가 되고, 늙고 병들어서 죽게 됩니다. 이것이 항상 되풀이되지만 늙은이나 청년이나 어린애 할 것 없이 공히 가지고 있는 것은 그 속에 자성 즉 불성이라는 것을 갖고 있습니다. 그 불성이라고 하는 것은 늙어도 늙지 않고 병들어도 그것은 병들지 않고 몸은 죽지만 그것은 죽지 않고 항상 존재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6년 동안 고행을 해서 그것을 찾은 분입니다. 부처님은 그것을 찾아 나와 동일하게 만들어 누우나 자나 항상 내것으로 해서 그야말로 무애자재(無碍自在)하시고 자유자재하신 분입니다. 그러나 우리 중생은 이것을 가지고 있는 줄도 모르고 현실에 이끌려 밉다·곱다·좋다·싫다는 데에 휘둘리고 빠져들기 쉽습니다. 이것이 부처님과 우리 중생들의 차이입니다.
거울에 때가 많이 끼었을 때 우리는 비눗물이나 세제를 사용해 깨끗이 닦습니다. 깨끗한 거울엔 못난 사람이면 못난 사람이 비치고, 검둥이면 검둥이가 비치고, 여자가 오면 여자가 비치고, 남자가 오면 남자가 비치고, 어린이가 오면 어린이가 있는 그대로 비치어 집니다. 비유하자면 거울은 우리의 불성이요 자성이며, 때는 우리 중생의 업장이며, 때를 닦아내는 행위는 수행(修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깨끗한 거울이 되게 하는 비눗물이나 세제는 말하자면 수행하고 기도하는 공덕이요 부처님의 가피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불자들은 기도하는데 있어, 거울에 때를 더 묻히는 기도가 아니라 때를 지우는 기도가 되어 불성을 찾아내는 기도가 되도록 밝은 마음으로 수행에 임해야 할 줄로 압니다.
절이란 무엇입니까? 절은 수행의 공간입니다. 또한 절이란 곳은 세상사에 찌들려서, 마음이 괴로워서 찾아오는 곳입니다. 이렇듯 절은 세상사에 찌든 분들이나 신도님이 와서 마음 편히 쉴 수도 있고, 절에서 자면서 기도도 할 수 있는 그야말로 열린 공간이어야 합니다. 해서 월정사 주지의 소임을 맡은 10년 동안 이런 열린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약 100억 원을 투자했습니다.
조사전을 확장했고 건물 세 동을 옮겼는가 하면 금강문·찻집·유치원을 포함해서 8개동을 새로 지었습니다. 이것은 누구의 치적을 드러내거나 공적을 삼으려는 것이 아니라 본사로서 본연의 역할을 증대하고 월정사를 명실공히 수행의 도량으로 거듭 발전시키기 위한 우리 모두의 원력과 노력을 함께 자축하며 더욱 훌륭한 도량으로 나아가기 위한 전기로 삼고자 하는 것입니다.
여하튼 우리 월정사가 신도님들이 세상사에 찌든 마음으로 힘들어 할 때 절에 와서 조용히 쉬면서 본래 갖고 있는 불성을 밝히는 기도와 수행을 하는 곳으로, 마음을 편히 쉬면서 참 나를 찾는 그런 장소로 일신할 수 있도록 저와 여러분들이 함께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절에 오면 단 한시간 단 하루라도 내 본래의 모습을 찾아가도록 보다 치열한 노력을 경주해야 하겠습니다.

體遍河沙淨妙身이며 應緣能坐又能伸하네
面門出入無跡하며 隨聖隨凡作主人하네
바탕은 황사에 두루하여 깨끗하고 오묘한 법신이여
인연 따라 굽어졌다 펴졌다 하네
콧구멍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하면서도 흔적은 없는데
성인 따라 성인 되고 범부 따라 범부 되니
이것이 주인이네.

모두(冒頭)에 얘기한 바와 같이 불성은 본래 너도 갖고 있고 나도 갖고 있어 이 자연에 다 두루하지만 그것을 모르고 지낸다고 했습니다.
인연에 따라서 법상(法床)에 앉아 이야기하는 이도 있고, 어떻게 되니까 예쁘장한 아가씨도 될 수 있고, 또 어떻게 되면 귀여운 어린애도 될 수가 있고, 또 잎이 다 떨어진 나뭇가지가 될 수도 있고, 흐르는 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콧구멍으로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있지만 그 참모습은 보이질 않습니다. 이것이 성인에게 나타나니 성인이요, 부처님에게 나타나니 부처님이요, 지나가는 거지의 모습으로 나타나면 거지입니다.
분명한 것은 거기에 갖추어진 주인공인 불성을 찾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임오년 말의 해를 맞아 훌륭한 말이 주인의 말을 잘 듣고, 주인을 태우고 하룻밤에 천리를 가듯 간단(間斷)없는 기도와 수행정진으로 내 주인을 찾는 밝은 한 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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