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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을 찾아 떠난 대장정(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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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7-04-26 12:42 조회3,47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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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을 찾아 떠난 대장정(1)
조선왕조실록환수위 활동경과 보고
혜문(慧門)
들어가는 말 -도쿄대는 왜 실록을 돌려 주었는가?

1. 2006년 7월 17일,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 47책은 아시아나 항공으로 도쿄 나리타 공항을 떠나 93년만에 고국의 품에 안겼다. 나는 그날 공교롭게도 도쿄에 있었다. 일본 궁내청 서릉부가 소장하고 있는 조선의궤 72종의 반환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도쿄의 김순식 변호사를 만나기 위함이었다.

조선왕조실록 환수위가 공식 출범한지 4개월. 결코 짧지 않은 기간동안 우리는 3번에 걸친 도쿄대와의 협상, 6번의 일본 방문을 통해 치열한 한번의 전쟁을 치룬 느낌이었다. 함께 뜻을 모은 사람들의 뜨거운 열정과 희생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처음 환수위를 발족하고 ‘반환운동’을 전개하려고 했을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를 비웃고 있었다. 어떻게 감히 한국의 단체가 대일본제국의 지성, 도쿄대를 상대로 싸움을 시작한 단 말인가. 계란으로 바위치기에 불과할 것이다. 이런 시각이 대부분의 문화운동가, 언론, 심지어 우리 정부관료들에게 까지 팽배해 있었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 진실은 언제나 상상할 수 없는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그리고 혼이 담긴 계란은 얼마든지 바위를 깰 수도 있다는 것을 ”

2. 실록이 되돌아 온 뒤, 우리 ‘환수위’ 사람들도 모여서 저녁회식을 했다. 이런 저런 말끝에 누군가가 ‘ 실록 반환에 대해 우리나라 사람은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다. 실록 반환운동의 주류가 누구였는지 알아주는 사람은 도쿄대 밖에 없다 ’고 해서 다함께 웃었다.

환수위의 활동에 비웃음을 보냈던 힘있는 (?) 사람들은 ‘조선왕조실록’이 돌아오게 되자 모두 한결같이 ‘환수위’의 활동을 폄하했다. 그들의 요지는 모두 “자신들의 노력”이 실록반환에 큰 힘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공을 다투는 모양으로 비추어 지는 것이 싫고, 나아가 굳이 그들의 주장을 꺾고 싶은 생각도 없어서 가만히 지켜 보고만 있었다. 그런 와중에서도 하나 마음에 걸렸던 것이 있다면, 반환운동을 함께했던 동지들에게 아무것도 해드릴 것이 없어 안타까운 마음뿐이었다.

" 조선왕조실록이 어떻게 돌아왔는지를 기록하는 것도 실록의 정신에 부합하는 일일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

‘환수위’의 맏형격이 되어 사람들의 의견을 조정하고 격려해 주던 송기자님께서 자리를 끝마치며 한 말이 메아리처럼 귓전에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 공을 내세워 자랑하는 일이 아니고, 허풍선이들의 과장을 머쓱하게 하려는 의도가 아닌 기록을 위한 기록, 그것이야말로 ‘실록을 적어내려간 사관의 정신’이 아닐까?

만약 후대에 ‘실록반환’의 경과를 물어 올지도 모르는 누군가를 위해, 함께 고뇌하며 어깨를 걸었던 무명의 동지들을 위해, 그리고 실록이 추구해 왔던 사실로써의 기록을 위해 반환운동의 경과를 남겨두어야 하지 않을까?

사실 그런 많은 것들이 내 머릿속에 지난 몇 달간 머물러 있었다. 몇달을 생각 끝에 나는 결국 “도쿄대가 왜 실록을 돌려주게 되었는가?”라는 물음에 답하기로 했다.

따라서 이글은 아무런 계산없이 ‘민족적 정의’을 추구했던 자랑스런 동지들에 대한 전언(轉言)이며, 뭉툭한 연필을 꾹꾹 눌러가며 공책에 써내려간 어린아이의 과제물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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