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최육상 기자] '조선왕실의궤 환수위(공동의장 월정사 주지 정념·봉선사 주지 철안·국회의원 김원웅, 이하 환수위)'가 일본 궁내청이 소장하고 있는 '조선왕실의궤'의 환수를 위해 8일 오전 11시 30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일본을 상대로 '민사조정신청서'를 접수했다.
이는 문화재 반환을 위해 정부가 아닌 민간 차원에서 일본 황실과 정부에 법적조치를 취한 것으로 그 결과가 주목된다.
조선왕실의궤, 법원 통해 일본 정부에 반환 위한 법적조치
정념 스님은 오전 11시 법원 앞에서 가진 성명서 낭독에서 "2006년, 일본 도쿄대가 소장한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史庫本)'의 환수에 성공한 환수위는 실록 환수운동 과정에서 일본왕실이 '조선왕실의궤' 72종을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며 법적조치에 나선 배경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부당하게 빼앗긴 문화재를 되찾기 위한 민족의 열망을 담아 일본 궁내청 일왕궁에 보관되어 있는 조선왕실의궤의 환수를 위해 법적인 조치에 나서고자 합니다. 이것은 1965년 한일협정의 한계를 넘어 민간 차원의 청구권이 살아 있음을 공표하는 일이며, 우리나라 법원을 통하여 일본황실과 일본 정부에 약탈문화재 반환의 역사적 당위성을 공식적으로 전달하는 최초의 시도가 될 것입니다."
조선왕실의궤는 왕실의 주요 의식과 행사 준비 과정, 행정 처리 등 여러 의례내용의 처음과 끝을 그림과 글로 꼼꼼하게 정리한 것으로, 세계기록유산인 '조선왕조실록'과 더불어 조선시대 기록문화의 꽃으로 불린다. 조선왕실의궤는 지난해 3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 신청을 한 바 있지만, 일본과 프랑스에 있는 의궤는 신청 대상에서 빠져 있는 상태이다.
1965년 한일조약 "약탈문화재는 일본 소유로 인정한다"
김원웅 의원은 반환해야 할 의궤 중 특히 '명성황후 국장도감'에 주목하며 "명성황후 시해사건 뒤 일본은 '정부의 책임은 없다'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사과를 한 적이 없지만 밝혀진 자료에 의하면 일본정부가 개입한 것은 분명하다"며 "명성황후 시해를 사죄하는 의미에서라도 명성황후 국장도감 등 의궤를 즉각 반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말을 이었다.
"박정희 정권이 추진했던 1965년 한일조약에 '약탈문화재는 일본 소유로 인정한다'는 내용 이 있어 일본이 강탈해 간 문화재에 대한 환수가 어려운 실정이다. 하지만 이는 국제법이라고 할 수 있는 유네스코 협약(1970년 16차 총회에서 채택한 '문화재의 불법 반출입 및 소유권 양도 금지와 예방수단에 관한 협약')을 위반한 것으로, 환수위의 법적조치는 효력이 있다.
더욱이 명성황후의 국장도감이 보관돼 있는 곳이 일본황실의 보물창고라는 궁내청이다. 과거를 청산하는 상징적인 의미에서 명성황후의 국장도감을 포함한 의궤는 반드시 반환해야 한다. 협력관계를 꿈꾸는 한일 양국의 역사 인식이 이렇게 다르면 안 된다. 양국의 미래협력을 위해서 의궤를 반환할 수 있도록 법적조치와 함께 국제사회에 호소할 계획이다."
우리 문화재를 들여오는 게 반환이 아니고 기증?
김 의원은 이어 우리 문화재를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많은 불만을 드러냈다.
"오랜 기간 반환 운동을 벌였던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史庫本)'이 지난해 일본에서 우리나라로 돌아왔다. 그런데 일본은 반환이 아니라 서울대에 기증하는 것이라고 했다. 더구나 기가 막힌 것은 대부분의 언론들이 ‘기증’을 그대로 받아썼다는 것이다. 그게 어떻게 기증이냐?
문화재를 다루는 공무원들도 그렇다. 뭔가를 환수하려는 계획을 말하면 대뜸 '그게 오겠어요?'라고 묻는다. 약탈당한 우리 문화재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 자체에 문제가 있다. 또 환수위 이름을 정할 때, 인수위라거나 인도한다거나 등의 이야기가 나왔었다. 분명히 말하는데, 우리 것을 가져오는 것은 환수다."
한편, 환수위는 이번 조선왕실의궤의 반환에 북한의 '조선불교도연맹'도 동참과 지지의사를 밝혔다고 전했다.
지난 2월 8일과 3월 23일 금강산에서 2차례에 걸쳐 진행된 회담에서 "남북이 굳게 단합하여 지난 세기 일제가 강탈해간 문화재를 되찾아오기 위한 활동을 진행"하기로 합의하고 합의서를 체결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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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 국장도감의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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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있는 '명성황후 국장도감의궤' |
ⓒ조선왕실의궤환수위 | 환수위가 밝힌 자료에 따르면 현재 일본에는 '명성황후 국장도감의궤'와 '보인소 의궤' 등 총 72종의 조선왕실의궤가 있다.
명성황후 국장도감의궤는 1895년 10월 8일 일본공사 미우라 등 일제에 의해 계획적으로 잔혹하게 시해된 뒤 치러진 명성황후의 국장 기록을 모두 4권에 실었다.
명성황후의 국장은 시신이 불에 태워져 유해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 채, 입던 옷을 시신삼아 치러야 했다. 게다가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는 바람에 2년간 장례도 제대로 치르지 못했다.
의궤는 명성황후가 일본에 의해 시해당한 뒤, 2년 2개월간에 걸쳐 진행되며 유례없이 슬펐던 국장에 대한 기록을 담고 있다. 그래서 이 의궤는 조선시대 제작된 국장도감의궤 중 가장 길다.
현재 일본 궁내청 일황궁 서릉부에 보관되어 있다. 시해한 것도 모자라 국장 기록까지 빼앗아 가 명성황후를 두 번 죽인 꼴이 됐다.
한편 '보인소 의궤'는 고종 13년(1876년) 11월 경복궁에 불이 나 옥새가 소실되자, 그해 12월 담당 관청인 보인소에서 옥새와 인장 11과를 새로 만들면서 제작 과정 등을 기록한 보고서이다. 이 보인소 의궤는 옥새 제작에 관한 유일한 자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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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육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