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재불입지처(三災不入之處) (강원도민일보)_2010.10.13(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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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0-09-15 17:07 조회8,192회 댓글0건본문
이 이야기는 도교적이고, 이보다 앞서 ‘삼국유사’를 엮은 고려 고승 일연(一然)에게서 오대산은 이미 불교적 분위기를 갖게 된다. “나라 안의 명산 가운데서 불법이 길이 번창할 곳은 오대산이다”고 예언했기에 그렇다. 고승 사명대사 유정(惟政)에 이르러 오대산은 또 한 번 이미지 변신을 한다. 유정은 영감암(靈鑑庵)에 머물며 “이곳이 오대산의 중심이고 삼재불입지처(三災不入之處)다”라고 주장한다. 이에 따라 조선 조정에서 사고를 영감암 곧 현재의 오대산 사고지에 세우게 된다.
물, 불, 바람. 삼재가 들지 않는다는 오대산의 사고에 보관된 ‘조선왕조실록’이 300여 년 간 안전하게 지켜지다가 1914년에 일본으로 강제 반출되는 비운을 맞는다. 천재(天災)는 능히 견딜 수 있었으되 인재(人災)는 피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오대산 사고엔 ‘실록’만이 아니라 ‘의궤’도 있었다. 지난 4 년 간 불교계는 ‘일본 왕실도서관’에 보관 중인 명성황후 장례에 관한 기록인 ‘명성황후 국장도감의궤’와 국새를 새로 제작한 사실을 기록한 종합보고서 ‘보인소의궤’의 환수 작업을 추진해 왔다. 간 나오토(菅直人) 일본 총리가 반환을 결정한 지금 조선왕실의궤는 삼재불입지처인 오대산의 ‘선원보각’에 되돌려져야 한다. 2006년 환국 ‘실록’의 서울대 직행 같은 일이 벌어져선 안 된다.
이광식 논설위원
misa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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