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탈 문화재 ‘광복’의 날은 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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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0-03-13 08:58 조회9,511회 댓글0건본문
약탈 문화재 ‘광복’의 날은 언제일까 | ||||||||||||||||||||||||||||||||||
<조선왕실의궤> 등에 대한 민간 차원 환수 노력 계속돼… 일본에서도 최근 반환 논의 활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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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서 대표적인 문화재가 바로 <조선왕실의궤>이다. 이는 조선 시대 왕실의 주요 의식과 행사의 준비 과정 등을 상세하게 적고 그림으로 만든 문서이다. 의례가 되풀이되는 왕실에서 의례의 본보기를 만들고 후대에 전하기 위해 체계적으로 정리한 기록 문건으로 현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어 있다. 원래는 강원도 오대산 월정사 사고 등에 보관되어 전해오던 것인데, 1922년 조선총독부가 일본 궁내청으로 불법 반출했다. 현재 일본 궁내청 서릉부 황실도서관에 명성황후 국장 과정을 기록한 <명성황후국장도감> 등 79종 2백69책과 제실 도서 38종 3백75책과, 역대 국왕들의 교양 강의용 책인 경연 서적 3종 17책 등이 보관되어 있다. 조선왕실의궤환수위원회(이하 환수위) 등 민간 단체들은 <조선왕실의궤>를 환수 대상 1호로 꼽고 있다. 김의정 환수위 공동의장(조계종 중앙신도회 회장)은 지난 2008년 9월 환수위 대표단을 이끌고 일본 천황궁에 가서 직접 의궤를 열람했다. 김의장은 지금도 의궤를 처음 보았을 때의 감정을 잊지 않고 있다. 그녀는 “국내에서도 못 보는 의궤를 일본에서 보니까 감격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속이 상했다. 왜 우리 문화재가 일본 천황궁에 있어야 하는지 화가 치밀어올랐다. 꼭 찾아서 제자리에 갖다 놓아야겠다는 생각이 굴뚝 같았다”라고 말했다. 환수위는 그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일본 정부에 의궤 반환을 요청했다. 그때마다 일본은 지난 1965년에 체결된 한·일협정을 내세웠다. 당시 한국 정부에 반환한 1천4백32점의 문화재를 끝으로 “더 이상 문화재 반환에 대한 논의를 하지 않겠다”라는 것이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이다. 한국 정부도 문화재 반환 논의에 대해 소극적인 입장을 피력해왔다. 역시 한·일협정이 걸림돌이 된 것이다. 1965년 한·일협정 이후 우리 정부의 반환 노력은 소극적 하지만 당시 한·일협정은 졸속 협정이었다. 당시 일본이 반환한 1천4백여 점의 문화재 중에 100여 점을 제외하면 도무지 문화재라고 볼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런데도 일본은 한·일협정을 체결하면서 단서 조항으로 ‘일본이 약탈한 것이 아니며 반환의 법적 근거가 의심스럽지만, 한국 독립의 선물로서 일부를 증여한다’라고 못박았다. 이를 그대로 해석하면 ‘반환할 필요성은 없지만, 우는 아이에게 젖을 준다는 생각으로 인심을 썼다’라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문화재제자리찾기 사무총장이자 조선왕실의궤환수위 사무처장인 혜문 스님(봉선사 승려)은 “조계사 앞에 있는 체신박물관에 가보면 한·일협정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거기에는 한·일협정으로 반환된 문화재 중 우정 관련 반환 문화재가 전시되어 있다. 짚신, 우체부 모자, 막도장, 우체국 간판, 이런 것들이다. 일본 정부 관계자들에게 한·일협정 당시 반환했던 문화재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줄 필요성이 있다”라며 분개했다. 환수위측은 한·일협정이 문화재 환수의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보고 있다. 이미 국제법에 ‘강제로 약탈한 문화재는 돌려주어야 한다’라고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난 1970년 11월14일 제16차 유네스코 총회에서 채택된 ‘문화재의 불법 반출·입 및 소유권 양도의 금지와 예방 수단에 관한 협약’을 그 근거로 들고 있다. 환수위 공동의장이자 월정사 주지인 정념 스님은 “당시 유네스코 총회에서는 ‘외국 군대에 의한 일국의 점령으로부터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발생하는 강제적인 문화재의 반출과 소유권의 양도는 불법으로 간주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일본 궁내청에 보관 중인 왕실의궤는 이 유네스코 협약에 위반되는 불법 반출 문화재로서 당연히 제자리인 오대산 사고로 돌아와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월정사에서는 일본국을 피고로 하여 의궤 반환 소송을 진행 중이다. 일본이 의궤를 반환해야 할 논리적인 또 하나의 근거는 지난 1992년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 일본은 영친왕의 부인 ‘이방자 여사의 복식’을 양도한 적이 있다. 이때의 선례에 비춰 의궤를 한국 정부에 돌려달라는 것이다. 북한과 일본의 수교도 변수가 된다. 남한은 한·일협정에 의해 청구권이 사라졌지만, 북한은 아직 일본과 수교 이전이어서 청구권이 살아 있다. 이런 기조에서 2002년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당시 일본 고이즈미 총리 사이에 합의된 평양 선언에 ‘문화재 반환 문제’가 언급되어 있다. 이 문제를 진전시키기 위해 남북한은 지난 2008년 평양 선언을 통해 ‘문화재 반환에 관한 남북한 공동합의서’를 체결하기도 했다. 정권 교체된 일본 정부의 전향적인 결단 기대 올해는 국내외 정세 등을 따져볼 때 문화재 반환에 호기가 되고 있다. 우선 자민당에서 민주당으로 정권이 교체된 데 따라 일본 정부의 전향적인 결단을 기대할 수 있다. 정부와 국회, 민간 단체 그리고 언론 등에서도 일본 약탈 문화재 반환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 2월11일 서울에서 열린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서는 문화재 반환 문제가 논의될지가 한·일 양국 간에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이때 우리 정부의 공식적인 반환 요청이 제기되지는 않았지만, 우회적으로 여론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8년 한·일 외무회담을 통해서도 외교부장관이 국내 사정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반환을 요구한 바 있다.
지난 2월26일에는 이정현 한나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조선왕실의궤> 반환 촉구 결의안’이 국회 본회의를 만장일치로 통과했다. 이에 앞서 지난 2006년 17대 국회에서도 <조선왕실의궤> 반환을 요구하는 결의안이 채택되었었다. 이번 결의안은 <조선왕실의궤>의 반환이 민간 차원이 아니라 국회 차원으로 옮겨갔다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 정부에 대해서는 의궤 환수를 위해 일본 정부와 적극적인 협상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이정현 한나라당 의원은 “우리 문화재가 해외에 얼마나 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파악된 문화재도 반환 문제에 대해 지지부진하다. 올해는 경술국치 100주년을 맞이해서 <조선왕실의궤>를 환수하는 해가 되어야 한다. 그런 취지에서 반환 촉구안을 발의했다. 오는 4월 초에 일본을 방문해서 일본 의원들을 만나 의궤 반환에 적극 협조해줄 것을 당부하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국내의 주요 언론사들도 사설 등을 통해 일제히 ‘문화재 반환’을 촉구하는 등 <조선왕실의궤> 반환 문제가 핫이슈로 부각했다. 그렇다면 열쇠를 쥐고 있는 일본의 반응은 어떨까. 일본에서도 지난 2월 오카다 카쓰야 외교장관의 한국 방문을 전후해 <조선왕실의궤> 반환 문제가 주요 뉴스로 다루어졌다. 일본의 유력지인 아사히·도쿄 신문 등 32개 언론사가 이 문제를 집중 보도했다. 그렇다고 일본 내의 ‘관심’이 곧바로 ‘반환’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넘어야 할 걸림돌이 첩첩이다. 의궤 반환 문제를 지속적으로 다루고 있는 츠키야마 에이지 도쿄 신문 서울특파원은 “일본 언론들이 주요 이슈로 의궤를 다룬 것은 외교장관의 한국 방문 기간에 이 문제가 논의될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의궤가 궁내청에 있기 때문에 반환 여부 등은 국회에서 의원들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한국이 원하면 반환해야 한다는 것은 기본적인 생각이지만, 의궤 반환이 자칫 다른 문화재 반환 요구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일본 정부가) 부담스럽게 생각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2007년 4월 중의원 문부과학위원회에서, 5월 참의원 외교방위위원회에서 의궤 반환에 대한 대정부 질의가 있었으며, 일본 정부는 ‘개별적 사례로 대응하겠다’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같은 해 일본의 시민단체인 일조협회도 후쿠다 총리에게 <조선왕실의궤>의 조속한 반환을 요청하는 서한을 발송했었다. 조선왕실의궤환수위는 최근 ‘일본 외무대신에게 <조선왕실의궤>의 반환을 요청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하고, 의궤를 즉시 반환할 것을 촉구했다. 남북한 불교 단체는 현재 반환 운동이 진행 중인 <조선왕실의궤>의 반환이 성사되면 해외 약탈 문화재 가운데 가장 격이 높은 ‘오구라 컬렉션’(아래쪽 상자 기사 참조)에 집중할 방침이다. 경술국치 100년을 맞는 올해가 ‘문화재 광복 원년’이 될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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