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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재불입지처(三災不入之處) (강원도민일보)_2010.10.13(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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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0-09-15 17:07 조회8,19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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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조 때 한무외(韓無畏)라는 인물이 당대의 천재 교산 허균(許筠)에게 신선이 되는 연단법(鍊丹法)을 전해주고 스스로 신선이 되어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지만, 한무외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 수 없다. 다행히 이중환의 ‘택리지’에서 그의 흔적 일부를 발견하게 된다. “오대산 다섯 축대(五臺)마다 암자 하나씩 있는데, 중대에 부처의 사리를 간직했다. 상당부원군(上黨府院君) 한무외가 이곳에서 선도를 깨치고 시해(尸解)하였는데, 연단과 복지(福地)를 꼽으면서 오대산이 제일이라 했다.” 한무외가 “시해하였다”는 것은 곧 도통해 몸만 남겨 두고 혼백이 빠져나가 신선이 됐다는 얘기다. 신선이 될 수 있을 만큼 영험한 곳이 오대산이라는 것이 지리학자 이중환이 하고 싶은 말이었다.

이 이야기는 도교적이고, 이보다 앞서 ‘삼국유사’를 엮은 고려 고승 일연(一然)에게서 오대산은 이미 불교적 분위기를 갖게 된다. “나라 안의 명산 가운데서 불법이 길이 번창할 곳은 오대산이다”고 예언했기에 그렇다. 고승 사명대사 유정(惟政)에 이르러 오대산은 또 한 번 이미지 변신을 한다. 유정은 영감암(靈鑑庵)에 머물며 “이곳이 오대산의 중심이고 삼재불입지처(三災不入之處)다”라고 주장한다. 이에 따라 조선 조정에서 사고를 영감암 곧 현재의 오대산 사고지에 세우게 된다.

물, 불, 바람. 삼재가 들지 않는다는 오대산의 사고에 보관된 ‘조선왕조실록’이 300여 년 간 안전하게 지켜지다가 1914년에 일본으로 강제 반출되는 비운을 맞는다. 천재(天災)는 능히 견딜 수 있었으되 인재(人災)는 피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오대산 사고엔 ‘실록’만이 아니라 ‘의궤’도 있었다. 지난 4 년 간 불교계는 ‘일본 왕실도서관’에 보관 중인 명성황후 장례에 관한 기록인 ‘명성황후 국장도감의궤’와 국새를 새로 제작한 사실을 기록한 종합보고서 ‘보인소의궤’의 환수 작업을 추진해 왔다. 간 나오토(菅直人) 일본 총리가 반환을 결정한 지금 조선왕실의궤는 삼재불입지처인 오대산의 ‘선원보각’에 되돌려져야 한다. 2006년 환국 ‘실록’의 서울대 직행 같은 일이 벌어져선 안 된다.



이광식 논설위원

misa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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