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것은 지켜야 한다고 어릴 때부터 어머니께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조선왕실의궤를 다시 제자리에 가져다 놓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문화재 환수운동을 했습니다.” 차(茶) 문화를 복원한 명원 김미희 선생의 차녀 김의정 조계종 중앙신도회장이 문화재 환수 활동을 시작한 배경을 털어놓았다. 경술국치 100년을 맞아 조선왕실의궤 환수 활동을 해 온 조계종 중앙신도회는 일본 총리의 의궤 반환 발표를 이끌어 냈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협상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시민단체의 승리였다. 김 회장은 일본 정부의 반환 의사를 이끌어냈지만, 반환 절차는 정부간 협의에 의해 진행되기 때문에 지금은 공식적으로 조선왕실의궤 반환 절차에 관여하지 않고 있다. 김 회장은 2005년 조계종 역사상 첫 여성 중앙신도회장에 당선됐다. 그 이후 첫 사업이 신도회관 건립이었고, 다음이 약탈 문화재 환수 운동이었다. 반환 협상을 이끌어 낸 데는 김 회장을 비롯한 문화재환수위원회의 활동이 주효했다. 김 회장의 반환 요구는 문화적이었다. “반환 협상은 문화적인 울림을 전달하려 했습니다. 이미 1960년대 우리 정부는 일본과 식민지 보상금 협상을 끝내 정치적으로 풀기 어려운 시점이었습니다. 그래서 문화적인 요구를 했습니다.” 문화적 요구는 “문화재를 잠 재우지 마라”는 것으로 표현했다. “처음에는 전쟁 통에 문화재가 파괴되지 않도록 잘 보관해 준 점은 고맙게 생각한다고 운을 뗐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훌륭한 문화재를 연구하고 활용하지 않고 창고에서 낮잠만 재운다는 것은, 또 다른 문화침탈이라고 설득했습니다.” 김 회장이 일본 방문길은 늘 일본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일본 의원들이 움직였다. 오키나와 출신 의원이 함께 했고, 궁내청과 일본 여야 의원, 시민단체와 가교 역할을 카사이 의원이 했다. “이번에는 잘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NHK는 한국에서부터 일본 출장길을 동행했고, 아사히신문은 조선왕실의궤 반환 운동을 자세히 소개해 일본 정부를 움직였습니다.” 문화재 환수 운동을 벌이면서 특이한 점은 차 문화를 이용했다는 점이다. 다례(茶禮)는 일본에서도 통했다. 그리고 북한을 문화재 반환 운동에 끌어들였다. “예절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점에서 문화적 소통이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문화재를 돌려받는다는 것에 한민족이 일치 돼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정치적으로 불편한 것을 종교적으로 풀었습니다. 남북한이 함께 문화재 반환을 요구했습니다.” 조선왕실의궤 환수 활동은 문화에서 시작해 문화로 마무리됐다. 그 문화적 배경에는 ‘차 문화’가 있다. 김 회장은 모친 김미희 선생의 호를 딴 명원문화재단 이사장이면서, 쌍용그룹 김성곤 창업주의 딸이다. 물려받은 유산과 재산을 털어 문화재 환수 운동을 지원한 김 회장의 배경에는 차 문화가 있었다. 김 회장은 “문화재 환수는 옛 것을 지키고자 하는 다도인의 예절과 종교의 사회적 책임이 만들어 낸 결과물입니다”라고 말했다. 김성배 기자 sb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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