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산사고본 문화재 제자리찾기 대토론회 /기조강연/ (강원일보)_2010.12.08(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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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0-12-08 09:00 조회7,978회 댓글0건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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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이 종적 기록이면 의궤는 횡적 기록으로 특히 성리학에 기반한 예치주의 엿볼수 있어 |
의궤는 횡적 기록으로
특히 성리학에 기반한
예치주의 엿볼수 있어
■정옥자 서울대 명예교수
조선왕조실록은 왕명의 출납을 매일 기록한 승정원일기를 비롯해 사초, 조보, 시정기 등의 기록을 왕의 사후 날짜별로 모은 종합적인 통치기록이다.
임진왜란 전 춘추관과 전주, 충주, 성주 등 4곳의 사고에서 보관했으나 임진왜란 때 대부분 불타 소실되고 전주본만 남게 됐다. 전주본을 다시 네부로 찍어 평창 오대산, 봉화 태백산, 무주 적상산, 강화 정족산 등으로 옮겼다.
평창 오대산본은 일본으로 약탈됐다 대지진으로 불타고 남은 일부가 지난 2006년에 돌아온 것이다.
실록은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만큼 방대하고 연속성이 있다는 것에서 의미가 있다. 조선왕조 500년의 방대한 기록이 실록에 있다.
조선왕실의궤는 왕실과 국가의 의식과 의례를 기록화로 남긴 책자로 임시위원회격인 도감을 설치해 행사관련관청에서 인원을 차출해 의식을 집행했다.
조선후기는 예치를 지향했으며 의식과 절차 등을 중요시했다. (국가의 의식이나 의례를)항구적이고 반복적으로 사용할 필요가 있어 의궤를 만들었으며 건축사, 복식사, 어휘사까지 모든 정보를 망라한 종합 자료의 보고이다.
조선은 지식을 기반으로 한 문화국가였으며, 통치행위인 기록을 통해 투명성과 공공성을 확보하고 백성의 신뢰를 이끌어 냈다.
조선왕조실록이 종적 기록이라면 조선왕실의궤는 횡적 기록으로 상호 보완적 성격을 갖는다. 유학 특히 성리학에 기반한 예치주의를 입체적으로 엿볼 수 있다.
전통문화의 보고인 조선왕조실록과 조선왕실의궤는 한류의 원천이며 평화의 시대, 문화의 시대에는 우리의 역사와 전통이 세계를 이끌어 나가는 선도적 역할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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