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병합 100년 맞춰 ‘명성황후 국장의궤’ 돌아오지만 …(중앙일보)_2010.11.09(화) > 조선왕조실록 및 의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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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병합 100년 맞춰 ‘명성황후 국장의궤’ 돌아오지만 …(중앙일보)_2010.11.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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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0-11-09 09:45 조회8,32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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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문화재가 돌아오나

일본에 의해 시해된 명성황후의 국장(國葬) 모습을 기록한 국장도감의궤의 표지(왼쪽). 오대산상(五臺山上)은 이 의궤가 오대산 사고(史庫)에 소장돼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가운데 사진은 명성황후의 국장 모습이 기록된 국장도감의궤의 내부 모습. 총을 메고 칼을 찬 병사들이 호위하는 모습과 가마 행렬 등 국장 당시의 모습이 입체적으로 그려져 있다. 오른쪽은 고려와 조선시대 왕들의 교양도서였던 ‘경연’, ‘경연’은 일본이 이번에 돌려주기로 한 반환 대상에서는 제외됐다.

일본 정부가 8일 조선왕조의궤 등 식민지 시대에 한반도에서 반출된 도서 1205책을 돌려주기로 한국정부와 합의한 것은 어느 정도 예정된 시나리오였다. 이명박 대통령과 간 나오토(菅直人) 일본 총리는 11일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이어 이번 주말(13, 14일)에는 일본 요코하마(橫濱)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을 한다. 이 자리에서 뭔가 결과물을 내놓기 위해 양국 정부는 그간 문화재 전문가와 함께 반환 대상 목록을 정리해왔다. 특히 일본 국회에서 연내 관련 조약의 비준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양국 정부로서는 지난 8월 10일의 한·일 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간 총리가 밝힌 ‘간 담화’의 정신을 살리기 위해서 뭔가 연내에 합의를 맺어 둘 절박함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반환 대상을 두고는 상당한 논란이 일 전망이다. 한국 정부는 일본 궁내청이 보관하고 있는 조선왕조의궤(儀軌) 167책을 전부 돌려받게 됐다고 주장했지만 그러나 이는 조선총독부가 기증한다는 도장이 찍힌 ‘조선총독부 기증인’ 도서 79종 286책의 일부에 불과하다. 또 제실도서(帝室圖書)와 경연(經筵)은 아예 빠졌다. 현재 일본에는 6만1409점의 문화재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관련기사 보러가기

 외교부 관계자는 “제실도서의 경우 반출 경위가 명확하지 않은 데다 일본 왕실에서도 제실도서라는 도장을 찍기 때문에 도장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한반도에서 유래한 도서로 보기 힘들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말했다. 한국 전문가들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인정했다는 것이다. 그는 또 “경연도 식민통치 이전부터 일 왕실에 있던 것으로 간 총리가 밝힌 ‘일본의 식민지 지배 기간 중 조선총독부를 경유해 반출된 도서’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식민지시대에 조선총독부 등을 통해 반출 됐다는 ‘명백한 추정’이 가능한 것이라도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 반환 대상에 포함시켰다는 것이다.

그동안 한국 내에는 이번 반환 대상으로 조선왕조의궤, 의학·관습·군사(軍史) 등을 소개한 제실도서, 역대 임금이 신하들과 받던 교양 강좌 책자인 경연 등 크게 세 가지가 거론 돼 왔다. 그러나 이번 반환 대상에는 제실도서와 경연이 빠진 대신에 일궁내청 보관이 확인되지 않고 있던 규장각 반출 도서 938책과 증보문헌 비고(增補文獻備考) 99책, 대전회통(大典會通) 1책이 포함돼 어느 정도 모양새는 갖추게 됐다는 분석이다. 특히 문화재 반환의 ‘상징적 존재’였던 명성황후 국장 모습을 담은 ‘국장도감의궤’가 포함된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하지만 문화재 반환의 표현이 ‘반환’이 아닌 ‘인도’로 결정된 것은 다소 미흡한 부분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한국으로서 아쉬운 점이지만 일본 측이 인도라는 표현을 쓰는 걸 강하게 요구했다”고 말했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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