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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 에도성 조선왕실의궤가 돌아온다 / 혜문(한겨레신문)_2011.4.22(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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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1-04-23 11:00 조회6,92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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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문 조선왕실의궤환수위 사무처장
일본 도쿄의 심장부에는 깊은 해자와 높은 성곽으로 둘러싸인 에도성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도쿠가와 막부가 자리한 뒤 역대 쇼군이 살았고, 메이지유신 이후 일왕이 거주하고 있는 일본 최고의 정치적 상징이다. 여기에는 뜻밖에 조선왕실의 주요 문서들이 대거 소장되어 있다. 1922년 조선총독부가 ‘조선시대 기록문화의 꽃’이라 불리는 ‘의궤’를 대량 빼돌렸기 때문이다. 이는 조선의 식민통치기구인 총독부가 일왕궁에 선물한 일종의 전리품이었다. 망국의 볼모처럼 잡혀온 의궤를 비롯한 주요 전적들은 8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아무도 모르게 유폐되어 있었다. 한국과 일본 모두의 기억 속에 까맣게 잊혀져 있었다.

다행히 2001년께 우리나라 서지학자들이 일본 궁내청에 조선왕실의궤를 비롯한 주요 문서들이 소장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해 세상에 그 존재를 알렸다. 그러나 반환운동의 당위성이 제기되거나 일본 정부에 문제를 제기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했다. 오히려 대부분의 학자들은 ‘조선총독부의 합법적 기증으로 반출된 문화재’라고 명명한 뒤, 반환운동은 불가능하다고 스스로 못을 박았다. 고명하신 학자들이 ‘합법적인 기증’이라고 하니 나머지 사람들은 ‘그저 그런가 보다’ 하는 생각에 다시금 까맣게 잊어가고 있었다.

2006년 강원도 오대산 월정사와 경기도 남양주 봉선사가 주축이 되어 도쿄대 소장 조선왕조실록 반환운동을 시작했고, 도쿄대도 ‘타당성 수용’ ‘학술교류 목적’이란 취지에서 실록 47책을 갑작스레 서울대로 ‘기증’했다. 우리는 반환운동의 당사자로서 ‘자기 것을 남에게 기증받는 것은 웃지 못할 코미디’라고 비평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증’이든 ‘반환’이든 물건만 오면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1965년 한-일 협정으로 청구권 문제가 종결되었으므로, 도쿄대는 조선왕조실록을 돌려줄 필요가 없는 상황이다. 실록 기증을 결정한 도쿄대의 양심에 깊이 감사한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일본 최고의 정치적 상징인 왕궁과의 싸움을 시작했다. 2006년 9월 월정사를 중심으로 한 불교계와 시민단체들은 힘을 모아 조선왕실의궤 반환운동을 시작했다. 경술국치 100년을 맞는 2010년이 되면 이 문제가 양국 외교현안으로 자리할 수 있으리란 확신이 있었다. 4년의 반환운동 동안 일본의 양심적인 국회의원·시민단체들이 호응해 주었고, 결국 예상대로 2010년 간 나오토 총리의 담화에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과’의 의미로 조선왕실의궤를 비롯한 1205책의 궁내청 도서를 한국으로 반환하는 내용이 포함되게 되었다. 나아가 이명박 대통령과 간 총리가 지난해 11월 한-일 도서반환협정에 조인함으로써 국회 동의만 거치면 우리나라로 돌아오는 것은 확정적이다.

그동안 자민당 보수우익 의원들의 반대로 국회 비준이 진행되지 못하고 있었으나, 22일 중의원 외무위원회가 한-일 도서반환협정 비준을 위한 절차에 착수했다. 아직까지 실행되지 못한 ‘반환 절차’가 개시된 것이다. 의궤는 이르면 6월 에도성의 성벽을 넘어 고향인 우리나라로 돌아올 듯하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입성해 에도막부가 시작된 이래 외부의 힘에 의해 한 번도 무너지지 않은 난공불락의 성벽이 이제 무너지려고 한다. 그 사이를 헤집고 조선왕실의궤가 꽃망울 터져오르는 봄날의 조국을 향해 숨가쁜 달음질로 오고 있다. 이것은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한 한·일 양심세력들이 일군 역사적 승리로 기억될 것이다.

혜문 조선왕실의궤환수위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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