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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정사 문화유산 콘텐츠 현실적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강원일보)_2011.10.1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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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1-10-17 08:39 조회8,31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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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오대산불교문화축전 월정사 성보박물관 개관 12주년 기념 학술세미나가 지난 13일 월정사 대법륜전에서 정념 주지 스님, 원행 부주지 스님 및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평창=김효석기자


오대산은 조선왕조실록과 조선왕실의궤 등을 보관했던 기록문화의 보고(寶庫)이다. 2006년 반환된 조선왕조실록과 18일 일본총리 방한 때 일부 반환되는 것을 시작으로 연내 반환이 예상되는 조선왕실의궤 역시 오대산 사고에 보관되던 소중한 우리의 문화유산이다.

하지만 현재 조선왕조실록은 규장각에서 보관하고 있고 왕실의궤의 보관처도 확실히 정해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월정사 등 민간의 환수 노력으로 돌아오는 문화재가 제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 당위성을 널리 알리고 이를 학문적으로 체계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에 따라 강원일보사와 월정사 성보박물관은 제8회 오대산불교문화축전과 성보박물관 개관 12주년을 기념해 조선왕조실록과 왕실의궤를 구체적으로 분석하여 이미지화하고 디자인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기 위해 지난 13일 오후 월정사 대법륜전에서 `오대산 조선왕조실록·왕실의궤 기록문화와 디자인'을 주제로 학술세미나를 개최했다.

 `오대산 왕실의궤 기록문화와 디자인' 세미나
정 념 “불교문화 최고의 성지로서 풍부한 문화 잘 전승될 수 있도록 가꿔나가야”
김덕용 “콘텐츠 제작 원천자료인 `문화원형' 그 자체로서는 상품화 개발 어려워”
황인규 “오대산 신앙은 자장율사가 中 오대산 신앙을 강릉 오대산 이식하며 전개”
김승호 “오대산 설화 중국설화 바탕 창작·전파됐지만 신라의 고유적 특성 구비”


특별강연
△고승관 홍익대 명예교수

■발제자
△ 김덕용 홍익대 조형대학 교수
△ 김무봉 동국대 국문과 교수
△ 황인규 동국대 역사교육과 교수
△ 김승호 동국대 국어교육과 교수

■토론자
△ 태경 스님 월정사 성보박물관 학예실장
△ 박용식 경상대 국문과 교수
△ 이규대 강릉원주대 사학과 교수
△ 류희승 성균관대 강사

■사회
△권혁순 논설실장

특별강연-불전에 나타난 일반 숫자와 그 의미
△고승관 홍익대 명예교수= 불교에서 표현할 수 없는 가장 많은 수나 그런 시간을 말할 때 쓰는 `아승기'는 예전에는 시간성과 공간성을 같이 썼다.

인식된 시간이라는 것은 연, 월 등 시간성으로 계산되는 인식된 용어라고 한다. 또 느끼는 것은 시간의 개념이 없어지면서 공간성으로 가게 된다. 전부가 철학적인 것이 된다. 시간과 공간이라고 하는 것은 우주의 근원이고 만물의 바탕이다. 시간과 공간에 대해 연구하려고 많이 노력을 했지만 그것을 완벽하게 풀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많은 철학자가 분, 리, 모, 사, 홀, 미, 섬, 사, 진, 애, 묘, 막, 모호, 준순, 수유, 순식 등 작은 수에 대해서 연구를 거듭해 왔다. 교수들에 의하면 10의 마이너스(-)34승 이하까지는 내려갈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과학이 발전하면서 앞으로 쓸 수 있는 숫자의 한계는 점차 풀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화엄경에 나타나는 `불가설불가설전(不可說不可說轉)'은 기존의 큰 수에 비해 훨씬 큰 개념의 수이다. 불가의 깨달음의 공덕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를 나타내기 위한 수이기도 하다.

사람은 시간 속에서 태어나 살고 시간 속에서 죽는다. 불전이 알려주고 있는 과학적, 철학적, 미학적 글들을 읽으면, 불전의 숫자가 품고 있는 의미와 같이 더욱 정진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제1주제 문화원형의 콘텐츠 개발과 디자인
△김덕용 홍익대 조형대학 교수= 문화는 전파, 공유, 고립되어 존재하지 않고 학습, 축적, 적응 메커니즘으로 변화하고 있다. 최근 마케팅을 위해 문화적 요소를 활용하는 문화마케팅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고 있다.

특히 문화가 돈이 된다는 사실에 집중하고, 문화적인 요소의 발견과 함께 이를 개발하고 활용해 각 지역의 브랜드로 육성하는 문화산업이 급속하게 부상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조선왕조실록의 콘텐츠에서 아이디어를 빌려온 `왕의 남자'의 경우, 입장료 수익 840억원, 해외 판권료 200억원, 고용효과 2,000명 등 친근성이 있고 현대의 취향이 맞아야 한다고 비용체감 법칙에 따라 수확체증 효과가 발생하는 고부가가치 산업이라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문화콘텐츠의 제작을 위한 원천자료인 `문화원형'은 그 자체로서 상품화 개발이 어려운 소재이기 때문에 현실적인 시각에서 상품을 개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영국 스코틀랜드 지방에서 부족 및 가문의 상징으로 쓰이던 전통문양인 타탄체크의 경우 이를 변형시키고 세련화하는 일련의 과정을 거쳐 명품 이미지를 지닌 이른바 `명품'을 탄생시킨 대표적인 문화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또 백제문화 콘텐츠 개발 사례가 보여주듯 백제문화가 지역문화이기 이전에 국가의 전체 문화라는 사실과 무령왕릉의 문화콘텐츠적 가치를 포착해 디자인 소스를 개발하고 이를 상품화하는 과정 등은 조선왕조실록과 왕실의궤 등 오대산 문화유산을 콘텐츠화하는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제2주제-오대산 세조 어첩과 훈민정음
△김무봉 동국대 국문과 교수= `오대산 상원사 어첩'과 `오대산 상원사 중창 권선문' 등 두 본의 첩장을 두 가지 이름으로 부르는 것은 2건의 권선문이 같은 첩에 나란히 실려 있기 때문이다.

신미의 권선문에는 원문의 말미에 작성일로 보이는 연기가 있어서 작성 연대(세조 10년(1464년) 12월18일)를 아는데 별 문제가 없다. 하지만 어첩에는 아무런 표지가 없다.

상원사의 중창불사를 하면서 소요되는 재원 마련을 위해 의발 등을 내놓았다는 사연을 세조가 듣고 감동하여 불사를 돕고자 물자를 지원하라는 윤명을 내렸다. 이에 신미가 감사의 뜻을 담아 권선문을 썼다. 물자가 현장에 당도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고, 이때가 바로 실록에 보이는 성화 1년인 을유년으로 보았다. 불사는 그해 3월에 시작해 이듬해에 끝난 것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신미의 권선문과 세조의 어첩은 작성 시기가 서로 다를 수밖에 없었고, 이런 이유로 첩장의 편철 순서도 신미의 글이 먼저 실린 것으로 보인다.

언해본과 한문본으로 별도 조성한 이유는 읽어야 할 사람들이 한자보다는 새로 창제된 문자에 더 익숙할 수도 있다.

각각 다른 이가 다른 시기에 쓴 두 건의 권선문이 같은 첩장으로 조성된 이유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나중에 한 사람이 새로 필사한 후 첩장으로 만들어서 보관해 온 것이다.


제3주제-조선시대 오대산사와 고승
△황인규 동국대 역사교육과 교수= 오대산 신앙은 신라의 자장율사가 중국 오대산 신앙을 강릉 오대산으로 이식하면서 전개되었다. 자장은 불교를 홍포하기 위하여 국통에 있으면서 전국의 승관제를 주도, 부처님 진신사리를 봉안하였다. 그후 오대산에 두 왕자 보천과 효명 형제가 상원사의 전신인 진여원을 짓고 문수보살을 공양한 이후 오대의 기틀이 이루어졌고 경덕왕대 신효거사에 의해 오류성중의 오만보살신앙으로 정립되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말해줄 기록은 거의 없다. 다만 숭유억불 시대인 조선 초 세조와의 인연으로 상원사가 중창되면서 오대산사의 신앙이 부각되어 알려져 있을 뿐이다. 이는 분명 관련 기록의 영세함 때문이 아닌가 한다.

오대산사는 원간섭기 오대산 사적의 집록, 고려 말 나옹과 여말선초 오대산사의 중창, 세조대 삼화상의 상원사를 비롯한 오대산사 중창을 통해 문수신앙이 부각되었으며, 대표적인 왕실 국가사찰이었다. 조선 중기 청허휴정과 문도, 특히 사명유정에 의해 왕실 국가의 사찰이 설치 운용되었으며, 그후 휴정의 제자 편양언기의 몬도인 환적의천과 풍계명찰 등이 오대산사의 불교를 주도하였으며, 근현대 불교 고승 한암과 탄허, 이종욱 등으로 이어지게 된다.


제4주제-오대산 설화의 신라적 성립과 전개 양상
△김승호 동국대 국어교육과 교수= 신라 이래 전승된 설화들을 보면 산악은 더 이상 산신만이 관장하는 영역으로 이야기되지 않는다. 각처 명산은 불보살이 주재한다는 점을 부연함으로써 신라의 산들은 불교 영지로서 관념되는 시기를 맞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불교적 영험성을 간직하고 있는 초기의 명산서화들이 의외로 중국설화와 유사성이 많다는 점에서 영산설화가 애초 신라 내에서 자생적으로 발화한 것이라기보다는 외래적 영향하에 생겨난 것으로 판단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특히 삼국사기 소재 오대산 설화의 내용, 형식, 모티브 등을 살펴보면 당나라 설화의 유입 흔적이 역력하다.

하지만 중국설화를 바탕에 두고 창작 전파된 설화라 하더라도 신라 고유의 설화적 특성을 구비하고 있다는 점을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다.

자장은 중국 청량산 감응담을 먼저 접한 설화 운반자로서 인물과 배경 정도만 변개시켜 신라설화로 이식해 나가는 핵심적 역할을 담당했을 것이다.

중국 당나라 청량산에서 문수를 친견하고 귀국한 후 명주 오대산에 들어와 문수를 친견함으로써 당과 신라 두 곳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한 특별한 인물로 남게 되었다.

오대산 성지설화는 자장시대를 지나면서 신라 각처의 명산을 성소화하는 서사적 전범 구실을 했다고 믿는다. 오대산 설화가 신라 각처의 산악과 사찰의 영험성을 고취하는 또 다른 설화를 파생시키는데 이바지했음을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제1주제 토론
△태경 월정사 성보박물관 학예실장 = 발표자는 문화와 마케팅을 묶어 문화마케팅이라고 정의하고, 유물이 박물관에 있으면 역사와 문화이지만 유물을 문화콘텐츠로 만들면 `문화산업'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또 문화란, 문화적 요소의 발견과 개발·활용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생태학적 변화를 통해 진화해야 하며 문화의 대량 소비, 소비의 평등화, 재미가 문화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월정사 문화유산을 콘텐츠화하기 위해서는 종교적 요소를 대중화하여야 하며, 쉬운 접근과 재미·친근성이 있어야 한다는 점에 대해 숙고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제2주제 토론
△박용식 경상대 국문학과 교수= 김무봉 교수의 글을 통해 `오대산 상원사 어첩'에 대해 상세히 알게 됐다. 특히 어첩을 쓴 시기에 대해서는 신미의 권선문과 세조의 어첩은 작성 시기가 서로 다를 수밖에 없었고, 그런 이유로 첩장의 편철 순서도 신미의 글이 먼저 실린 것이라는 논의는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그래서 어첩이 작성된 시기도 을유년 2월20일경이라고 볼 수 있다고 본다. 또한 언해본과 한문본을 별도로 조성한 이유도 정음에 대한 이해와 문자 사용의 당사자들을 고려한 것이라는 논의도 적절하다고 본다.

제3주제 토론
△ 이규대 강릉원주대 사학과 교수= 산사의 자취와 산사의 담론을 더듬어서 정연하게 정리하여 현세에 반추하는 작업은 역사학의 나아갈 방향이면서 우리 모두의 과제이다.

발표문은 오대산 각 사암의 중창불사와 고승들의 법맥을 추적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논제에서는 조선시대로 한정하여 이 시대에 비중을 두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지만 실은 고대사회로부터 조선시대 말기까지 관련되는 기록과 자료를 망라하고 있어 동학들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그동안 지지부진하였던 고려시대의 상황을 일정하게 언급하여 그 분야의 해결을 위한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고 본다.

제4주제 토론
△류희승 성균관대 강사= 본지수적(本地垂迹)설은 오랫동안 신불관계의 기저를 이루는 것으로 일본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일본에 불교가 전래되었을 때는 부처가 일본의 신과 같은 범주로 여겨졌다. 그런데 인도, 중국이라는 최고의 고대문화 속에서 발전된 불교는 일본의 고래의 신들보다 우위에 서게 되었다. 일본의 신들은 부처에 종속되었는데 세 가지 형태가 있었다고 추정된다. 신은 아직 깨달음에 이르지 못하고 헤매는 부처의 구제가 필요한 존재라는 사고방식과 신은 불법을 수호한다는 사고방식, 그리고 신은 사실은 부처가 중생 구제를 위해 모습을 바꿔서 나타난 것(본지수적)이라는 사고방식이다. 오대산 설화 이외에 본지수적 사상에 대한 더욱 포괄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퇴우 정념 스님= 좋은 발표와 토론을 해주셔 감사드린다. 이번 세미나는 문제 제기적인 측면에서 좋은 세미나라고 생각한다. 세미나를 통해 법통 문제나 설화적 문제 등이 한편으로는 정리된 부분도 있고 문제제기와 더불어 학문적인 가치를 부여하는데 있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좀 더 정리된 모습으로 나타날 과제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오늘 세미나의 의미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오대산은 삼국유사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민족의 성산이다. 또 불교문화 최고의 성지로서 다양한 문헌과 풍부한 자료들이 보관되던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자부심으로 앞으로 기록문화를 중심으로 좀 더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어 내고 그런 자료 속에서 정말 풍부한 문화가 잘 전승될 수 있고 가꿔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정리=오석기기자 sgtoh@kw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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