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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조선왕실의궤의 초라한 귀국(경향신문)_2011.12.1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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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1-12-20 13:09 조회7,64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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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조선총독부가 일본 궁내청으로 빼돌렸던 조선왕실의궤 등 1205책의 문화재가 90년 만에 환국했다. 인천공항에 의궤를 실은 컨테이너가 안착하는 순간, 나는 좀 울컥했다. 2006년 이후 40여차례의 일본방문을 통해 얻은 결과물이 눈앞에 펼쳐진 감개무량함과 초라한 환영행사에 대한 씁쓸함이 마음속에 교차했다.

지난해 경술국치 100년을 맞아 일본총리는 담화를 통해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과’의 의미로 ‘조선왕실의궤 등의 도서’를 한국으로 인도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1965년 한·일협정으로 사실상 정부가 반환을 공식요청할 수 없는 상황에서 불교계를 중심으로 민간에서 일궈낸 ‘현대판 의병운동’의 승리였다. 게다가 일본 최고의 정치적 상징인 궁내청, 이른바 천황궁을 상대로 얻은 성과였다. 나는 조선왕실의궤 환국에 대한 제의를 여러 곳에 전달해 왔다. 우선 의궤 환수에 대한 경과를 <의궤, 되찾은 조선의 보물>이란 책으로 엮고, 일본어판을 준비해 왔다. 일본 정부의 발표대로 선의에 입각한 ‘일본의 자발적 결정’만이 아니라 우리 민족이 지속적인 운동을 벌인 결과 ‘조선왕실의궤의 반환’이 성사된 것을 알리고 싶었다. 의궤를 싣고 돌아온 항공사에 일어판 제작 후원을 요청했으나 돈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 당했다. 경복궁 국민 환영행사, <열린음악회>와 같은 축하공연도 제의했다. 지난 8월 이후 KBS 측과 수차례 접촉을 하고 경복궁 장소승인신청서를 냈지만 문화재청과의 이견으로 환영행사는 끝내 무산되고 말았다.

앞서 지난 봄에 돌아왔던 외규장각 도서에 대해 생각이 미쳤다. 외규장각 238책은 완전한 소유권의 반환이 아닌 5년 단위 임대형식에 불과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을 제외한 다른 곳에 전시할 경우 프랑스에 허가를 받아야 하고, 5년 뒤에는 다시 프랑스로 되돌아간다는 단서 조항이 달린 불완전한 임대였지만, 정부는 대대적인 환영행사를 벌였다. 고가의 운반비와 보험비를 우리 정부가 부담해서 이동해 왔고, 10억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해 대규모 환영행사를 벌이며 외규장각 도서의 반환을 축하했다. 이번에 돌아온 조선왕실의궤 1205책은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소유권의 완전한 반환일 뿐만 아니라 운반비와 보험비 등도 거의 일본이 부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환되는 문화재의 수량도 한·일협정 이후 최대 규모로 컨테이너 14개에 달하는 분량이었다. 게다가 일본 총리의 사과라는 역사적인 의미까지 곁들여진 것을 생각하면 외규장각 도서에 못 미칠 바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행사규모를 대폭 축소하겠다는 입장이었다.

나는 돌아오는 조선왕실의궤에 무안해지고 말았다. 혹시 반환을 주도한 사람이 정부인사가 아니어서, 별 다른 지위가 없는 사람이어서 이런 대접밖에 받지 못하는 걸까. 선두에 섰던 사람이 승려라서 축소평가하는 것일까. 이런 생각에 자괴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진심으로 괴담이기를 바라지만, 일본 정부가 대대적인 환영행사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국민환영행사가 축소될 수밖에 없다는 말이 들린다. 정부 인사들은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를 위해, 그리고 또 다른 문화재 환수에 성공하려면 조용히 일을 처리해야 한다고 한다. 그럴 법도 하지만 제대로 된 행사 한번 없이 넘어가는 ‘민족적 경사’를 보면서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것은 왜일까. 설마 우리 정부가 일본 눈치 보느라 ‘잔치’도 맘대로 하지 못하는 신세는 아니겠지?

<혜문 조선왕실의궤환수위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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