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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및 의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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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포럼]조선왕실의궤와 문화분권(강원일보)_2011.05.3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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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1-05-30 09:42 조회8,14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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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를 되찾아 오기 위한 `제자리 찾기 운동'은 우리 선현들이 남겨준 문화유산을 귀하게 여기는 진정한 주인의식의 발로이다. 우리의 위대한 문화유산중 하나인 `조선왕실 의궤'는 유네스코가 지난 2007년 `팔만대장경'과 함께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한 바 있다. 그보다 10년 전인 1997년엔 일찌감치 조선왕조실록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조선의 정치, 경제, 사회와 서민들의 생활문화까지 기록한 500년 역사기록서는 세계가 극찬한 기록유산이다. 그 의궤의 오대산본이 일제가 연곡 진고개를 넘어 주문진항을 통해 약탈해간 지 89년 만에 돌아온다고 한다. 조선은 개국 초부터 실록과 의궤의 보존을 위해 춘추관, 충주, 성주, 전주 등 4대 사고(史庫)를 운영했다. 그러나 임진왜란으로 전주를 제외한 사고가 모두 불타 없어지자, 전주본을 대본 삼아 오대산을 비롯하여 태백산, 마니산, 묘향산 등에 새로운 사고를 만들었다.

의궤(儀軌)는 의식(儀式)과 궤범(軌範)을 합친 말로 의식의 모범이 되는 책을 말한다. 조선시대에는 왕세자 책봉이나 혼례, 장례와 같은 경조사, 궁궐 건축에 이르기까지 각종 행사를 기록하는 일을 의궤청(儀軌廳)까지 설치하여, 실록편찬과 함께 대단히 중요하게 다루었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임진왜란 이후에 서울의 춘추관을 제외하고 전국에 4대 사고를 별도로 설치한 목적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귀중한 문헌의 소실을 막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지방문화의 활성화와 학자들의 학풍 진작을 위하자는 뜻도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89년의 긴 세월만에 돌아오는 왕실의궤가 어디에 있어야 진정한 가치를 가질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실제 지난 2006년 조선왕조실록 오대산본 47책이 환국하였으나 규장각에 보관하고 있다. 당시 서울대 규장각 측은 환수된 조선왕조실록 오대산본을 연구목적으로 3년간 임시 보관키로 하였으나, 그 귀중한 인류유산에 `서울대 규장각 도서지인'이라는 도장을 찍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이번 기회에 서울대 규장각에 임시보관 중인 조선왕조실록 오대산본과 조선왕실의궤 오대산본은 반드시 오대산으로 되돌려주기를 강력히 촉구한다. 더구나 100여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일본의 궁내청 안에 서글픈 셋방살이를 하던 왕조실록과 의궤를, 다시 규장각의 수많은 고서 더미 사이에 가져다놓은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리하여 인류무형유산인 강릉단오제와 평창의 조선왕조실록과 의궤 오대산본, 그리고 인류무형유산 등재를 준비 중인 정선아리랑까지 그야말로 자랑할 만한 강원문화유산의 벨트화를 이뤄야 한다. 경이롭게도 이 세 도시는 동계올림픽을 개최하려는 후보도시들이다. 2018동계올림픽이 또 하나의 문화올림픽으로 주목받는 계기도 마련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1866년 병인양요 당시 강화도를 침공한 프랑스 해군장교 쥬베르가 “조선에서 감탄하면서 볼 수밖에 없고 프랑스인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것은 아무리 가난한 집이라도 어디든지 책이 있다는 사실”이라고 고백했다는 기록에 다시 주목한다. 우리 민족의 역사는 중앙의 한 박물관이 지켜온 것이 아니라 전국 방방곡곡이 옛 전통을 지키고, 보존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제 행정기관과 의회, 학계와 종교계, 시민단체를 비롯한 각계각층이 하나 된 목소리로 조선왕실의궤와 조선왕조실록이 원래자리인 `강원도'로 돌아올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할 때이다. 이를 계기로 문화올림픽 유치와 함께 지역문화의 새로운 르네상스를 꽃피울 수 있기를 고대한다.

최명희 강릉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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