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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또 어디로 가나(경향신문)_2012.02.10(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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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2-02-11 08:58 조회8,04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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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법인 된 서울대·문화재청 유물 관리·소유권 공방

서울대 규장각에 보관 중인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만큼이나 기구한 운명을 가진 문화재도 흔치 않다.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소실-복원-일제강탈-반환에 이르기까지 한국사의 굴곡과 궤를 같이했다. 조선왕조 600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실록은 1973년 국보 151호로 지정됐다. 그 분량만 2077책에 달하는 방대한 책이다. 1913년 일본에 강탈당한 지 93년 만에 규장각으로 돌아왔다.

조선왕조실록이 다시 새 거처를 찾아야 할지도 모를 운명에 놓였다.

서울대 법인화 과정에 문화재청과 서울대가 보유문화재의 소유·관리권을 놓고 공방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 규장각에 보관 중인 조선왕조실록 10일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이 대학 한국학연구원 소속 연구원이 조선왕조실록 오대산본을 점검하고 있다. 조선왕조실록 오대산본은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넘겨졌다가 반환운동 등에 힘입어 2006년에야 서울대 규장각으로 되돌아왔다. | 박민규 기자 parkyu@kyunghyang.com


정부는 “서울대가 국립대 시절 보유한 문화재는 기본적으로 국유재산”이라며 “이를 선별한 뒤 위탁 관리하겠다”는 입장이다. 서울대는 그러나 “기증받은 문화재의 경우 서울대 소유로 볼 여지가 있다”고 맞서고 있다.

조선왕조실록 오대산본의 경우 원보관지였던 월정사도 반환을 주장하고 있어 더 복잡해지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의 수난사는 1592년 임진왜란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실을 막기 위해 서울·전주·충주·성주 4곳에 나눠 보관됐던 실록은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전주본만 남고 모두 소실됐다. 다행히 남은 전주본을 바탕으로 선조 36~39년(1603~1606)에 걸쳐 복간작업이 진행됐다. 복원된 실록은 태백·정족·적상·오대산 4곳에 분산돼 20세기 초까지 전해져 내려왔다.

그러나 일제강점기를 맞아 다시 수난을 맞았다. 조선총독부는 태백산본·적상산본은 경성제국대학(서울대 전신)을 통해 직접 관리했지만 오대산본 788책을 1911~1913년 일본으로 반출했다. 당시 도쿄대 소속 교수가 “연구에 필요하다”며 요구했기 때문이다.

조선왕조실록 오대산본.


일본으로 간 오대산본은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 불길에 휩싸여 대부분 사라졌다. 화마를 피한 27책만 1932년 경성제국대학 도서관으로 넘겨졌다. 경성제대 도서관이 보관해온 태백산본·정족산본은 광복 이후 서울대 규장각이 이어받았다. 적상산본은 한국전쟁 때 북한이 가져갔다. 이후 조선왕조실록 오대산본은 돌아온 27책을 제외하고는 모두 사라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1970년대 중반 일본 유학생들 사이에 “조선왕조실록이 아직 도쿄대 도서관에 더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서울대 최승희 교수(국사학과)를 비롯한 교수들이 이 문화재에 관심을 갖게 됐다.

1980년대 후반 도쿄대 유학생이던 배현숙 계명문화대 교수가 도서관에서 실록의 실체를 확인했다. 중종실록 29책, 선조실록 7책, 성종실록 9책과 추가로 선조실록 1책을 찾아냈다.

한국 정부는 1965년 한일협정 당시 “더 이상의 문화재 반환 요구를 포기하겠다”고 서명한 상태였다. 정부 차원의 반환작업이 시작됐지만 한일협정이 앞길을 가로막았다.

정부 반환작업이 막히자 민간이 나섰다. 과거 오대산본을 보관해온 월정사 혜문 스님을 중심으로 2006년 3월 ‘조선왕조실록 환수위원회’를 구성한 뒤 일본과의 협상에 나섰다. 학술교류협정을 맺은 서울대에 기증할 수 있다는 도쿄대의 의사에 따라 정운찬 당시 서울대 총장과 이태수 대학원장이 일본으로 건너가 같은 해 5월31일 협상을 마무리지었다. 양측의 실무협상을 거쳐 오대산본이 한국에 돌아온 것은 2006년 7월이다. 돌아온 오대산본은 다른 기록물과 마찬가지로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 보관됐다.

서울대학교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도깨비기와, 빗살무늬토기, 주먹도끼, 굽다리접시(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 서울대 박물관 홈페이지


서울대는 조선왕조실록뿐 아니라 다양한 국보급 문화재를 갖고 있다. 대동여지도와 각종 고지도, 미술품, 구석기시대 주먹도끼를 비롯한 다양한 유물을 보유한 문화재의 보고다. 규장각이 갖고 있는 기록문헌만 24만6000점에 달한다. 국보 7점, 보물 8종, 고도서 18만여책도 있다. 과거에는 서울대가 국립대학이었기 때문에 서울대가 보유 자산과 국유재산을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서울대가 법인으로 전환되면서 이들 자산의 소유·관리권에 갈등의 여지가 생겼다. 이 중 조선왕조실록과 대동여지도 같은 지정문화재는 문화재법에 따라 국유재산으로 지정되게 돼 있다. 그러나 관리권은 조정의 여지가 있다.

문화재청은 “서울대가 소장하고 있던 모든 재산은 국유재산”이라며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서울대는 법인화 과정에 전면 무상양도를 주장했지만 현재는 한발 물러서 위탁 관리 방식으로라도 학술연구의 지속성을 보장받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기증문화재에 한해서는 “국립대 시절이라도 국유자산과 구분되는 서울대 고유 재산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여기에 조선왕조실록 오대산본을 국내로 가져오는 데 앞장섰던 환수위도 월정사나 고궁박물관으로 가야 한다는 입장이라 복잡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반환 당시 문화재는 민족의 자존심 문제였다. 그러나 문화재의 사용처를 결정하는 지금은 ‘사회가 문화재를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가’라는 화두를 던지고 있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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