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오대산본 소장처로(강원도민일보) 2013.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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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3-12-31 10:08 조회9,177회 댓글0건본문
조선왕조실록 오대산본 소장처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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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계사년 한해도 오늘로 끝이다. 숨가쁘게 달려온 한해의 끝자락에 서면 보람과 아쉬움이 교차한다.
언제나 그렇듯이 지나간 날들을 되돌아 보면 보람보다 아쉬움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은 인지상정일까? 지나간 한해의 아쉬움을 되새기며 문득 문화재와 지역의 정체성에 대해 떠올려 본다. 문화재의 사전적 의미는 ‘문화 활동에 의하여 창조되어 그 가치가 높다고 인정되는 유형·무형의 축적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우리 지역에도 선조들이 남긴 찬란한 문화유산과 문화재들이 지역의 가치를 더욱 빛내고 지역의 정체성과 지역민들의 자긍심을 높이는데 큰 역할을 해 오고 있다. 그러나 한해가 저물어 가는 지금에도 100년전 오대산을 떠났던 조선왕조실록 오대산본과 왕실의궤는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조선후기 5대 사고였던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산1 오대산 중턱의 오대산 사고는 6·25전쟁 때 소실됐다 지난 1992년 사고와 선원보각을 복원했으나 정작 이곳에 보관했던 조선왕조실록과 의궤는 아직 돌아오지 못한 채 타지에 머물고 있다. 오대산 사고에 보관했던 조선왕조실록 788책은 지난 1913년 일제에 의해 일본으로 강제 반출된 후 1923년 관동대지진 때 대부분 소실되고 남은 47책이 월정사를 중심으로 한 ‘조선왕조실록 환수위원회’의 끈질긴 노력으로 지난 2006년 국내로 돌아왔지만 아직 서울대 규장각에 보관된 채 원 보관처인 오대산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국보 151호로 지정된 조선왕조실록은 지난 1997년 훈민정음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에 등재돼 우리의 기록문화를 세계에 각인시키는 소중한 문화자원이 됐다. 그러나 우리지역의 소중한 문화재가 100년이 넘도록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하고 타지를 떠도는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조선왕조실록과 왕실의궤가 국내에 반환되고 이어 조선왕조실록 및 왕실의궤 제자리찾기 범도민추진위원회가 구성돼 원 소장처인 오대산으로 반환운동을 벌이고 있지만 문화재청과 서울대는 이렇다할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특히 오대산 사고가 있는 평창은 2018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동계올림픽에 참가하는 세계인들을 대상으로 우리의 찬란한 기록문화유산을 보여주고 참된 문화올림픽을 구현하기 위해서도 조선왕조실록과 의궤는 오대산으로 돌아와야 한다. 조선왕조실록과 의궤 오대산본이 제자리로 돌아와야 하는 또 다른 당위성은 약탈문화재의 원위치 복구라는 유네스코의 협약과 권고에 따라 또 다른 약탈문화재의 반환을 촉진하는 효과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오대산본이 제자리인 오대산으로 돌아오는 것에 맞춰 이를 전시하고 보관할 수 있는 전시관과 수장고,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 활자만들기와 책만들기 등을 체험하는 체험관을 갖춘 디지털 세계기록문화유산 정보화 전시관도 건립해야 한다. 문화재는 제자리에 있을 때 그 가치가 더욱 빛을 발하게 되고 지역민들의 정체성 확립과 자긍심 고취에 더 없이 큰 힘을 발휘하게 한다. 조선왕조실록과 의궤 오대산본이 제자리로 돌아와야 하는 당위성이 여기에 있다. 이제 우리지역의 소중한 문화자산인 조선왕조실록과 의궤가 제자리를 되찾는 일에 모두 함께 나서야 할 때다. 물론, 조선왕조실록 및 의궤 제자리찾기 범도민추진위가 중심에 서서 이끌겠지만 평창군민, 나아가 강원도민 모두 이 일은 남의 일이 아닌 나의 일, 우리의 일로 적극 앞장서고 함께 동참하는 것이 필요한 때이다. 올해가 지나면 조선왕조실록 오대산본이 고향 오대산을 떠난지 한세기를 넘기게 된다. 또 한해를 보내며 더 늦기 전에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가 우리지역에 되돌아 오는데 너와 나 없이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힘을 모아 나가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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