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원사] "동아시아서 가장 이른 시기의 腰鼓, 세종시서 나왔다" (4월6일-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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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7-04-08 15:12 조회6,876회 댓글0건본문
백제사 연구자 박순발 교수, 최근 발간 '백제 연구'에 기고
"늦어도 5세기 후반으로 추정… 고구려 고분벽화에도 요고 나와
시바신 섬기는 인도 악기가 기원, 불교 전파와 함께 중국→한국"
지난 2010년 세종시 건설을 앞두고 한국고고환경연구소가 충남 연기군 나성리 유적을 발굴했다. 조사팀이 도랑을 파던 중 희한한 토기 한 점이 나왔다. 가운데가 잘록한데 양옆이 온전히 남아 있지 않아 정체를 알 수 없었다. 5년 만에 나온 발굴 보고서는 이 유물이 흙으로 만든 백제시대 요고(腰鼓)라고만 짤막하게 밝혔다. 요고는 장고와 비슷한 모양으로 가운데가 오목하고 양쪽에 넓은 울림통을 가진 타악기다.
박 교수는 "요고는 인도에서 부처에게 공양하기 위해 연주하는 전통 악기 중 하나로 불교의 전파와 함께 서역, 중국을 거쳐 한반도에 들어왔다"며 요고의 전파 경로를 밝히는 실물과 도상 자료를 소개했다.
◇인도, 중국 거쳐 5세기 후반 들어와
요고의 기원은 인도 시바(Shiva)신을 위해 연주했던 고대 타악기 다마루(damaru). 둔황 막고굴 벽화 중에 요고를 연주하는 그림이 200여건에 달한다. 요고가 한반도에 들어온 시점은 5세기 후반~6세기 초로 추정된다. 중국 남조→백제→일본으로 전파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일본에서 요고를 '오고(吳鼓)'로 부르는 데서도 뒷받침된다. 박 교수는 "고대 일본 열도에 유입된 문물 이름에서 '오(吳)'는 백제를 경유한 중국 남조(오나라)계 기원"이라고 했다.
나성리 요고는 일부만 출토됐지만 도상 복원 결과 전체 길이 약 45㎝로 추정된다. 가운데 허리가 원통형으로 잘록하고 양쪽으로 갈수록 둥글게 벌어지는 형태. 박 교수는 "출토된 맥락이나 미립자법에 의한 연대 측정 결과를 종합하면 늦어도 5세기 후반의 백제 요고"라며 "이 시기 요고는 중국에서도 유례가 없는 실물 자료"라고 했다.
◇진도 명량 바닷속에선 고려 도자기 요고
통일신라 이후 요고는 실물뿐 아니라 동종(銅鐘)이나 석탑 등에 조각된 도상(圖像)에서도 많이 보인다. 통일신라의 요고 실물은 2점. 경기도 하남 이성산성에선 형태가 온전한 목제 요고가 출토됐고, 충남 보령 진죽리 가마터에서는 흙으로 만든 요고 조각이 출토됐다. 박 교수는 "당대(唐代)에 서역악이 궁중 음악으로 수용되면서 요고는 불교 및 궁중 연회에서 빠지지 않는 악기로 자리 잡았다"면서 "같은 시기 통일신라 역시 요고가 필수 요소로 정착했다"고 했다. 감은사지 서탑의 사리함(보물 제366호·682년)에도 요고가 등장한다. 네 모서리에 각각 비파, 횡적(橫笛·관악기), 동발(銅鈸·놋쇠로 만든 타악기), 요고를 연주하는 기악상을 배치했는데, 특히 허리에 요고를 찬 사람이 무릎 꿇고 앉아 양손으로 두드리는 모습이 정교하다.
통일신라~고려 동종 가운데 요고를 새긴 것은 8점. 통일신라의 대표적 동종인 오대산 상원사 종(725년)에는 바람에 몸을 맡긴 비천이 요고를 연주하는 모습이 새겨져 있고, 경남 진주 연지사에서 주조한 동종(833년)에는 두 팔을 벌리고 요고를 두드리는 비천이 천의(天衣) 자락을 휘날리고 있다. 구례 화엄사 사(四)사자 삼층석탑(국보 제35호), 강릉 굴산사지 승탑(보물 제85호) 등 석탑·승탑 8점에도 요고상(像)이 남아있다.
고려시대에는 도자기로 요고를 빚었다. 2010년 이후 태안 마도, 진도 명량 앞바다 수중 발굴에서 잇달아 도자기 요고가 나와 화제가 됐다. 박순발 교수는 "고려시대 12~13세기까지 요고가 사용됐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기사원문보기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4/06/201704060016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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