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사자암] 신비스런 인연과 적멸보궁 (3월3일-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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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7-03-06 12:38 조회6,899회 댓글0건본문
아들 녀석의 가출로 인하여 다니기 시작한 오대산 적멸보궁은 우리 두 내외에게 많은 변화를 가져오게 하였다. 종교관은 물론이고 믿음이라고 하는 보이지 않는 신뢰가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 생활 형태마저 바꾸어 놓았다.
일주일의 결산은 보궁을 다녀오는 것으로 모든 것이 마감되는 듯했다. 토요일이나, 일요일은 아예 모든 약속이나 일들을 뒤로 미룬 채 보궁에서의 참배가 늘 우선순위를 차지하곤 했다. 새벽에 승용차로 한 시간을 간 뒤에 산길로 다시 사십 분 정도 걸어 올라가는 보궁의 참배는 평범한 믿음을 가지고는 지킬 수 없는 힘들고 고된 일이었다.
보궁을 다니기 시작하고 얼마 만에 아들 녀석이 돌아오기는 했지만, 마음속에 응어리진 아버지와의 감정은 누그러트리지 못한 채 어색한 부자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아들의 마음을 바로잡아 줄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거듭하면서 한없이 나약한 인간의 허약함에 한계를 느끼게 되었다. 내가 뭘 잘못했단 말인가, 아니면 전생에 아들과 지니고 있던 모진 악연의 고리를 여태 끊지 못하고 다시 만났단 말인가?
일상이 되다 시피한 보궁의 참배는 육체에게는 강인함을 주었고 마음속엔 응어리진 업석(業石)을 깨트리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108배의 절로 삿되고 어리석은 중생이 저지른 모든 죄업을 부처님께 빌고 또 빌었다. 비 오듯 쏟아지는 땀방울은 그간 지은 죄의 인과응보처럼 온몸을 적시고 있었지만, 오랜 가뭄 끝에 내리는 단비와도 같았다.
그렇게 다니기 시작한 몇 년이 지난 2003년도 11월 초겨울이었다. 서설이 산길을 덮어놓고 찬 기운이 귓전을 스치는 새벽 어둑어둑한 산속은 아직도 여명이 이르다며 플래시 불을 밝혀가며 올라가게 하였다. 한참을 올라가다 문득 앞서가던 아내에게 내 염주를 챙겼냐고 물은 것이다. 아내는 뭔가를 만져보는 듯하더니 “아니 잊어버리고 그냥 왔네” 하면서 무안하다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할 수 없지 그냥 가야지 뭐” 하면서 가던 길을 재촉하기에 이르렀다.
염주가 필요한 건 108배를 할 때 손에 꼬옥 쥐고 절 한번 할 때마다 염주 알을 한 개씩 돌리면서 108번의 숫자를 세는 의미가 있기에 염주가 없으면 절의 숫자를 셀 수 없다는 결론이었다. 염주가 없으니 108배를 했는지, 아니면 덜 했는지 난감하다고 생각했지만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하여 한 5분 정도 올라가는데 앞서가던 아내가 “이게 뭐지” 하면서 눈 위에 떨어져 있는 것을 집어 드는데 보니까 염주였다. 정말로 신기할 수밖에 없었다. 챙겨오지 못한 염주 얘기가 끝 난지 불과 5분 만에 그 깊은 산 새벽어둠이 채 가시지도 않은 눈 덮인 소로 길에 염주가 떨어져 있다니 신비스러움에 한동안 가던 길을 멈추고 서로 얼굴만 쳐다보며 열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잠시 후 서로 의아해하며 가던 길을 향해 계속하여 걷던 중, 염주가 발견된 장소에서 불과 한 30m 정도 되었을까 그곳에는 염주색깔과 같은 단주가 하나 또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이게 무슨 소름 끼치는 일인가. 기가 막힐 일이 연속해서 벌어진 것이다. 신비스러움에 전율이 느껴졌다. 첨단과학이 세상을 바꾸고 있는 21세기에 이런 신비스런 일이 벌어지다니, 우연이라고 치기에는 너무도 신기하고 또 신비했다.
보궁 참배를 마치고 상원사에 들러 정념 주지 스님께 이 사실을 말하였다. 정념 스님은 오대산 중에는 그런 인연이 가끔 일어난다면서 열심히 기도한 덕이라고 말해 주었다. 오랜 세월 우리만 간직하고 있기에는 너무나 신비한 이 사실을 이제는 세상에 밝히고 싶었다. 적멸보궁은 어렵고 힘들 때 찾아 성심껏 기도하면 반드시 인연의 응답이 오는 등불과 같은 성지(聖地)가 틀림없는 것 같다.
[불교신문3278호/2017년3월4일자]
유 상 민 평창 법장사 신도회장
기사원문보기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156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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