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이매진] 물 두드리는 소리와 걷는 수타사 산소길_연합이매진(2017.08.09.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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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7-08-16 10:36 조회7,157회 댓글0건본문
(홍천=연합뉴스) 이창호 기자 = 제주도에 올레길, 지리산에 둘레길이 있다면 강원도에는 산소길이 있다. 강원도 18개 시·군이 청정 삼림자원을 활용해 조성한 걷기 전용길이다. 산이 많아 굽이굽이 구절양장으로 이어진 홍천에는 수타사 계곡의 맑은 물줄기와 녹음 짙은 생태숲을 만날 수 있는 수타사 산소길이 있다.
공작산(887m) 자락인 노천리에서 수타사까지 약 12㎞에 이르는 계곡에서는 소여물통과 닮았다고 해 이름 지어진 소(沼), 용이 승천한 굴이 있다는 용담, 여럿이 앉아도 자리가 남는 넓은 암반을 만날 수 있다. 원시의 자연림이 사철 내내 빼어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계곡 안에 천년고찰 수타사가 있어 수타사 계곡이라 불리는데, 수타사 산소길은 사계절 아름다운 계곡과 동행하는 숲길이다.
공작산은 산 정상에서 바라보면 홍천군 일대가 한눈에 들어오고, 홍천읍에서 바라보면 거인이 하늘을 향해 누워 있는 형상을 한 모습이다. 한국지명총람에 "골짜기가 깊고 기암절벽으로 된 봉우리들이 하늘을 찌르듯 겹겹이 솟아 있는 모습이 공작새와 같다 하여 공작산이라 한다"고 돼 있다.
수타사 산소길은 1코스 소길(수타사∼출렁다리∼수타사), 2코스 신봉길(용담∼신봉), 3코스 굴운길(신봉∼굴운), 4코스 물굽이길(신봉∼노천) 등 총 4개 코스가 있다. 수타사 산소길 하면 대개 1코스를 말하는데 대부분의 사람은 수타사 주차장을 기점으로 삼아 수타사와 공작산 생태숲을 지나 출렁다리와 용담을 거쳐 수타사 주차장으로 다시 돌아온다. 총 거리는 5.2㎞에 불과하지만 느릿한 걸음으로 3시간 내외 걸린다.
이만영 숲해설가는 "수타사 산소길은 천년 고찰 수타사와 월인석보, 계곡과 어우러진 오솔길, 깊은 숲을 골고루 체험할 수 있는 힐링 명소로 매년 40만 명 이상이 찾고 있다"며 "여름도 좋지만 화사한 가을 단풍이 크고 작은 소와 바위, 물과 어우러지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고 말한다.
◇ 월인석보 등 볼거리 풍성한 수타사
수타사 산소길은 수타사 앞 공작산 생태숲에서부터 시작되지만, 출발지는 수타사 주차장이다. 주차장에서 숲길로 들어서면 숲해설안내소다. 미리 신청하면 공작산 생태숲과 산소길에 대한 숲 해설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이곳에서 수타사까지의 500m 숲길에는 부도밭이 있다. 7기의 부도 중 홍우당 부도(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5호)는 기단 상단석의 연꽃과 하단석의 안상이 인상적이다. 홍우당은 광해군 때인 1611년 태어나 숙종 15년인 1689년 입적한 승려다. 그의 다비식 때 네모난 사리 한 알과 둥근 은색 사리 두 알이 나와 이를 봉안한 것이다.
찰옥수수, 쌀, 인삼, 한우와 함께 홍천의 5대 명품인 잣 조형물과 수타교를 따라 수타사 입구의 공작교를 건너면 왼쪽이 수타사고 오른쪽이 공작산 생태숲이다. 수타사 일주문 격인 사천왕상을 지나면 흥회루(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72호)가 나온다.
법당인 대적광전(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7호)을 마주 보고 있는 흥회루는 설법을 위한 강당이나 수륙재 같은 불교행사를 거행하던 장소로 활용되었는데 단층 누각으로 여느 사찰처럼 누 아래로 드나드는 것이 아니라 옆으로 돌아가야 한다. 동종(銅鐘, 보물 제11-3호)과 대적광전의 팔작지붕은 탐방객의 발걸음을 잠시 멈추게 한다.
성보박물관인 보장각에 전시된 월인석보(보물 제745-5호)는 수타사의 역사적 가치를 높인다. 세종이 지은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과 세조가 수양대군 시절 지은 '석보상절'(釋譜詳節)을 합해 세조 때 편찬한 월인석보는 한글로 지은 최초의 불경이다. 1970년대 초 복원 공사를 하던 중 월인석보 제17권과 18권이 사천왕상의 복장유물로 발견됐다. 권17은 전부가 완전하고 권18은 제87장 하부가 없어졌으나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특히 권18은 현재 유일본으로 남아 있다.
고즈넉한 천년사찰 수타사는 신라 성덕왕 7년(708)에 원효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창건 당시는 우적산 일월사(日月寺)였으나 조선 선조 2년(1569) 지금의 자리인 공작산으로 옮기면서 수타사(水墮寺)로 바뀌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인조 14년(1636)에 복원·중수됐다가 수타사 스님들이 절 옆의 용담에 빠져 익사하는 일이 잦자 '수타사'(壽陀寺)라는 새 한자 이름으로 고쳐 부르게 됐다고 한다.
◇ 날랜 걸음보다는 느릿느릿하게
수타사 경내를 빠져나오면 공작산 생태숲(163㏊)이다. 옛날 수타사에서 경작하던 논이 있던 자리다. 2003년부터 6년간 54억원을 들여 조성한 생태숲은 홍천군 자생식물 유전자원보존과 산림생태계 연구의 중심지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생태숲은 자생화원, 수생식물원, 계류, 생태관찰로, 숲 속 교실 등 다양한 공간으로 나뉘어 있는데 기념촬영 장소로 인기를 끌고 있는 연꽃단지 위에 놓인 목재 덱을 지나면 바로 한두 사람이 지날 정도로 좁다란 오솔길이 나온다. 이 길에서 수타사를 내려다보면 절터가 공작이 알을 품은 '공작포란지지'(孔雀抱卵之地) 형국임을 알 수 있다.
장맛비가 그친 이후의 산소길은 말 그대로 산소를 듬뿍 발산한다. 숲 속의 흙길을 걷다 보면 공기가 청량하다. 산소를 마음껏 들이마신다. 숲해설을 들으며 귀롱나무, 층층나무, 물푸레나무, 말채나무, 졸참나무, 복자기나무 등을 다시 본다.
이만영 숲해설가는 "우근자라고 불리는 복자기나무는 국내에서 자생하는 30여 종의 단풍나무 가운데 색깔이 가장 곱고, 층층나무는 이름 그대로 꽃이 층마다 흐드러지게 핀다"며 "숲은 알고 보는 것과 그냥 보는 것이 천양지차"라고 설명한다.
생태숲에서 600m쯤 자박자박 걷다 보면 오른쪽으로 울창한 산림이, 왼쪽으로는 계곡 물이 산을 껴안고 흐른다. 산의 옆구리를 돌고 돌아가는 오솔길은 높고 낮음의 편차는 거의 없다. 이 길은 원래 수타사 아래 사하촌 주민들이 논에 물을 대던 수로를 복개한 것이다. 그러니 경사가 완만할 수밖에 없다.
숲길은 계곡을 끼고 이어지고, 걷는 내내 계곡의 물소리가 따라온다. 물과 암반, 숲에 취해 걸음을 자주 멈추다 보면 수타사 계곡의 최고 절경인 귕소에 닿는다. 위에서 내려다본 계곡 생김새가 아름드리 통나무를 파서 만든 소여물통과 같다. 장맛비가 온 탓에 물이 불어 물살 또한 힘차다. 귕은 소여물통을 일컫는 강원도 사투리다.
소에서 몇 걸음 옮기면 반환점인 출렁다리다. 다리를 건너지 않고 북쪽으로 1㎞쯤 더 올라가면 신봉마을과 108개의 돌탑무리로 유명한 동봉사다.
폭 1.5m 길이 45m의 출렁다리를 건너 계곡을 따라 수타사로 되돌아온다. 오던 길에 비해 제법 높낮이가 있는데 옛날 동면의 신봉리 주민들이 홍천읍내로 장을 보러 다니던 옛길이다. 출렁다리에서 100여m 가면 귕소로 내려갈 수 있다. 자연 그대로의 절경이다. 숲길을 소란스럽게 하는 건 골짜기 아래서 들려오는 물소리뿐이고, 계곡의 넓은 암반이 걷는 길에 재미를 더한다. 애초에 절 이름을 왜 '물이 두들기는 절'이라는 의미의 '水墮寺'라고 지었는지 이해가 된다.
행여 미끄러질까 봐 발걸음을 다시 숲길로 옮긴다. 숨을 깊이 들이마시자 머리가 맑아지고 숲의 향기가 폐 속 깊숙이 스며든다. 가볍게 내딛는 발걸음은 이내 용담에 이른다. 용담은 명주실 한 타래를 풀어 넣어도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었다는 곳으로 이 소의 박쥐굴을 통해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지금은 굴이 메워져 있지만, 그 굴이 수타사 대적광전과 연결됐다는 얘기도 있다. 안전요원은 물이 소용돌이쳐서 한 번 빠지면 못 나온다며 가까이 접근하는 것을 막았다. 예부터 전해오는 이야기를 듣고 상상해보는 것 역시 수타사 산소길의 즐거움이다.
수변 관찰로를 따라 주차장으로 느릿느릿 걷는다. 수려한 계곡과 물소리, 깊은 숲에 취해 걸음을 자주 멈추게 되는, 그렇게 걷다 보면 마음이 평안해지는, 바로 수타사 산소길이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8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chang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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