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사자암] 번뇌와 집착 사라진 세상 찾아가는 순례자의 길(한겨레) 2014.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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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4-05-01 14:21 조회8,557회 댓글0건본문
번뇌와 집착 사라진 세상 찾아가는 순례자의 길 | |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 적멸보궁 사찰 탐방
적멸보궁(寂滅寶宮). 적멸이란 모든 번뇌가 사라진 고요한 상태로,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곳을 적멸보궁이라 일컫는다. 상원사, 정암사, 법흥사, 통도사, 봉정암 등 5대 적멸보궁 사찰을 찾아가는 길은 내 안의 어지러운 마음을 가라앉히는 여정이다. | |
이병학 기자 | |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 적멸보궁 사찰 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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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들머리 소나무숲길에서 탐방객 한 쌍이 돌탑을 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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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 흐드러진 오대산 상원사 적멸보궁 숲길
“업장 소멸을 위해서지요.” 지난 24일 오대산 상원사에서 중대 적멸보궁으로 오르는 길에 만난 한 스님이 말했다. 불자들이 적멸보궁을 순례하는 이유를 묻자 나온 대답이다. ‘업장’이란 자신이 지은 업으로 인해 나타나는 정신적·육체적 장애를 말하는데,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 순례를 통해 이를 없앨 수 있다는 말씀이다. “평생 적멸보궁 순례를 3번 하면, 업장 소멸이 이뤄진다”는 말도 있다고 한다. 순례 자체가 중요하다기보다, 산중에서도 외딴곳에 주로 자리잡은 적멸보궁을 오고 가는 동안 몸과 마음이 평온하고 건강해진다는 말일 게다.
상원사 적멸보궁은 아담한 정면 세칸짜리 건물과 그 뒤편에 세워진, 작은 사리탑으로 이뤄져 있다. 사리탑은 마애불탑이라고도 하는데, 앞면에 오층석탑이 돋을새김돼 있다. 자장율사가 상원사를 창건한 뒤 이 탑에 부처님 사리를 봉안했다고 한다. 적멸보궁 뒤쪽에서 좌우를 둘러보니 주변 산줄기들이 둥글게 적멸보궁이 선 중대(1200m) 산봉을 감싼 형국이다. 중대는 오대산의 동·서·남·북 그리고 가운데에 솟은 다섯 대(봉우리) 중 하나다. 오대산이란 이름도 여기서 나왔다.
적멸보궁 앞 작은 건물에서 안내도 하고 불사 접수도 하는 보살(여성 불자)이 말했다. “좋은 기운을 느끼는 곳이라 해서 고승들도 오고 신부·수녀들도 많이 오는데, 오는 것도 인연이 닿아야 합니다. 그렇게 벼르고 별러서 오려고 떠났다가도 아파서 못 오고, 일이 생겨서 취소했다는 이들도 많아요.”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좋은 인연이 있고, 좋은 기운을 얻어서란 말씀이다.
적멸보궁 못미처 숲길에 용안수라는 샘이 있다. 마시고 씻으면 눈이 맑아진다는, 고지대의 우물이다. 물맛을 보니 차갑고 깨끗하면서도 묵직한 맛이다. 상원사 적멸보궁 오르는 산길엔 이제 막 봄빛이 시작되고 있다. 개나리와 진달래와 산벚꽃이 산자락에 흐드러졌고, 층층나무·까치박달나무·고로쇠나무들은 여린 새순을 내밀기 시작했다. 나무들 발치엔 얼레지·홀아비바람꽃·산괴불주머니·물양지꽃 등 봄꽃들이 한창이다. 나무향기, 꽃향기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차분해지는 길이다.
상원사 적멸보궁 오르는 숲길을 제대로 즐기려면 월정사 앞 전나무숲길에서부터 시작해 월정사 지나, 옛 스님들이 계곡을 따라 오가던 ‘선재길’과 상원사~중대 적멸보궁 산길을 이어서 걷는 게 좋다(5시간). 적멸보궁을 찾는 이들은 보통 상원사 들머리의 국립공원관리소 주차장에 차를 두고 걸어올라(오솔길과 널찍한 소나무숲길 2코스가 있다), 상원사와 중대 사자암 거쳐 적멸보궁을 탐방하고 내려오는 왕복 2시간 코스를 이용한다.
강원 평창 오대산 상원사 적멸보궁 오르는 길에 만나는 중대 사자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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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창한 솔숲길 걸어 찾아가는 통도사 적멸보궁
경남 양산 영축산(영취산)의 ‘불보사찰’ 통도사는 적멸보궁 사찰 중 옛 모습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고색창연한 고찰이자, 가장 규모 큰 적멸보궁과 사리탑이 자리잡은 사찰이다. 경관도 빼어나다. 들머리 숲길에서부터 절집 좌우 산 전체가 온통 적송으로 가득 차 매우 아름다운 경관을 보여준다.
길가로 휘고 물길로 눕고 하늘로 뻗으며 우거진 통도사 들머리의 울창한 소나무 숲길부터 규모가 남다르다. 무엇보다도 이 숲길이 아름다운 건, 찻길과 완전히 분리된 도보용 숲길이라는 점, 수백년 자란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물길을 따라 빽빽하게 우거졌다는 점, 그리고 선인들 흔적이 즐비한 흙길이란 점 등이다.
차를 몰고 일주문 앞 주차장까지 들어오는 이들이 많지만, 걸어서 오르내리며 소나무 숲길을 산책하려는 이들은 매표소(통도사 산문) 앞 주차장에 차를 댄다. ‘무풍한송길’이란 이름이 붙은 이 길은, 지난해 양산시 쪽이 깔려 있던 시멘트 포장을 뜯어내고 마사토를 깔아 흙길로 복원해 편안한 마음으로 솔향 맡으며 거닐 수 있다. 산문에서 부도밭 앞까지 길이 1㎞, 폭 5m의 솔숲길이다. 길 양쪽으로 수백년 묵은 키다리 노송 수천그루가 상쾌한 솔바람을 내뿜어준다. 평일 이른 아침에 숲길을 걷는다면 솔바람 가득 찬 넓고 한적한 흙길과 물소리를 모두 마음에 담아 갈 수 있다.
솔숲길이 끝나고 차도와 만나는 지점 부근의 바위들엔 옛사람들이 새긴 이름들이 빼곡하다. 바위엔 영세불망비도 새겨져 있고, 조선 정조 때 도화서 화원이던 단원 김홍도와 김응환, 조선말 개화파 정치가이자 친일파였던 박영효, 개화파이자 울산의 부호였던 김홍조 등의 이름도 보인다.
통도사 적멸보궁은 대웅전이다. 통도사의 상징이기도 한 금강계단(스님들이 계를 받는 곳) 앞에 사면이 모두 정면처럼 보이는 대웅전 건물이 자리잡고 있다. 건물 사면에 모두 다른 현판을 걸었다. 남쪽에 금강계단, 동쪽엔 대웅전, 서쪽엔 대방광전, 북쪽에는 적멸보궁 현판이 걸려 있다. 대방광전과 금강계단 현판은 조선말 흥선대원군의 글씨라고 한다.
부처님 진신사리를 안치한 곳은 금강계단 한가운데의 불사리탑이다. 통도사 불교문화해설사 배정진씨는 “자장율사는 가져온 정골·치아·불사리 100과를 셋으로 나눠 통도사와 울산 태화사, 경주 황룡사 목탑에 보관했다”고 말했다. 탐방객들은 대웅전 안에 들어가 대형 유리창을 통해 금강계단을 바라보며 참배하거나, 금강계단 불사리탑 주변을 돌며 소원을 비는 기도를 올린다. 통도사 경내의 옛 정취를 맛본 뒤엔 부도밭 옆길로 올라 숲길 산책을 즐기거나, 차를 타고 돌며 자장암, 서운암 등 주변의 암자 순례를 해볼 만하다.
평창 양산/글·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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