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은사] [Why][막말 시대의 묵언] 3.3㎡ 좁은 방에 갇혀 석달간 홀로 묵언정진 '無門關' 수행… 일기로 펴낸 동은 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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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3-07-27 08:30 조회8,772회 댓글0건본문
[Why][막말 시대의 묵언] 3.3㎡ 좁은 방에 갇혀 석달간 홀로 묵언정진 '無門關' 수행… 일기로 펴낸 동은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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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더 지독한 '감옥'은 없다
사람 못보고 말도 못하고 아파도 홀로 견뎌야 하니…
이보다 더 좋은 '수양처'는 없다
홀랑 벗고 혼자 춤춰도 되고 공부 않고 뒹굴어도 좋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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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만 끊는 것이 아니다. 한 명이 겨우 누울 수 있는 3.3~6.6㎡(1~2평) 남짓한 방. 누군가 들어가면 밖에서 자물쇠로 문을 잠가 버린다. 뚫린 것은 하루 한 번 밥이 드나드는 구멍뿐이다. 며칠이든 몇 년이든 정해진 기간 동안 방 밖을 나갈 수 없다. 사람 구경은커녕 철마다 피는 꽃도, 이따금 내리는 비도 즐길 수 없다.
감옥 같은 이런 곳에 자발적으로 갇히는 사람들이 있다. 불교의 수행법 중 하나인 '무문관(無門關)'이다. 무문관은 '문이 없는 문의 빗장'이라는 뜻의 독특한 말이다. 2002년 여름 한철(5~8월) 전남 강진 백련사에서 무문관 수행을 하면서 쓴 일기를 엮어 '무문관 일기'라는 책을 쓴 동은 스님(삼척 천은사 주지)에게 "무언가를 끊어내는 수행"에 대해 물었다. -
동은 스님<사진>은 "수행을 하다보면 공부가 미치지 못해 답답함을 느낄 때가 있다. 다른 데 얽매이지 않고 수행을 하고 싶을 때 무문관을 찾게 된다"며 "수행 중에 밖으로 나가고 싶다든지, 말을 하고 싶다든지 하는 다른 마음이 불쑥불쑥 생기더라도 무문관은 환경이 자제시켜줘 깊이 몰입할 수 있다"고 했다.
스님들은 참선 등 수행을 하다보니 대부분 평소에도 말수가 많지 않다. 그래도 말을 억지로 못하게 하는 셈이니 묵언수행이 불편하지 않을까.
동은 스님은 절집에 들어가면 처음 배운다는 '도본무언(道本無言·도는 본래 말이 없다)'으로 답했다. "염화미소 같은 부처님 가르침을 보면 말 한마디 들어간 게 없어요. 요즘은 말이 많은 시대지요. 어디서든 말 한마디에 시비가 붙습니다. 모든 화의 근본은 말이니, 말을 줄이는 게 수행엔 도움이 돼요."
무문관 수행 전 스님은 3년간 불교잡지 편집장과 대학원 공부를 했다. 그 때문에 "3개월간 무문관 수행을 하면서 3년간의 '외도'를 업장 소멸(모든 업과 죄를 없애는 것)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수행한답시고 일기를 쓰는 것이 애초 공부와 한참 동떨어진 일이지만, 처음으로 '갇혀버린' 공간에 지내며 사람으로서, 수행자로서 일어나는 단상들을 담담히 적어보기로 했다"며 "다른 스님들 욕먹이는 일이 될까 책을 내는 데 주저했다"고도 했다.
스님은 "내가 스스로 말을 하지 않다보니 오히려 침묵과 적막의 힘도 알게 됐다"고 했다. "가끔 우는 매미 소리만이 적막에 싸인 숲을 흔들지만, 숲은 미동도 하지 않고 자욱한 안개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이렇게 적막에 싸인 숲은 어떤 때는 경이롭기까지 하다."(무문관 일기 중) 동은 스님은 "묵언이 꼭 나를 위한 행동만도 아니다"고 했다. '심한 말로 옆방의 개미 기어가는 소리까지 들린다'는 무문관에서는 "내가 내는 사소한 소리까지도 무문관의 적막을 깨트려 옆방 스님에게 방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묵언은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스님의 무문관 일기에는 '대화'라는 표현이 많이 등장했다. "(무문관에 들어오기 전에) 혼자 만행 다니면서 노을이(자동차 이름)하고 참 많은 대화를 나눴다. 때론 화풀이도 했다가, 어떨 땐 하소연도 하고, 힘든 일을 해내고 나면 핸들을 어루만지며 애썼다고 칭찬도 해주고…." "무릎이 시원찮으니 절을 하다가도 신호가 오면 즉시 그만 해야 한다…아주 천천히, 무릎과 대화를 하면서 온 정성을 다해 절을 할 수 있는 데까지 하고 나면 온몸에 땀까지 난다."
말을 하지 않기에 사람 말을 모르는 사물이나 동식물과도 소통할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제가 혼자 무문관에 앉아서 소리를 내며 중얼중얼했겠습니까(웃음). 대화라는 표현은 비유이지만, 이심전심이란 말이 있잖아요. 무정이든, 유정이든 마음을 주고받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뜻은 통합니다."-
- 무문관 수행 중이던 동은 스님이 볼펜으로 슥슥 그려 벽에 붙여뒀던 미소불. / 동은 스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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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과 별장 사이…감사함 느껴
오로지 혼자 지내야 하는 무문관이 좋기만 할까. 분명 무문관은 좋은 수양처이지만 감옥일 수도 있다. 동은 스님은 무문관을 별장과 감옥에 비유한 일기를 같은 날 동시에 썼다.
"여기는 강진만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멋진 무문 별장! 가끔 맛난 반찬이라도 배달되면 그날은 실컷 먹고 공부도 하지 않고 뒹굴기만 해도 된다. 그렇다고 눈치 볼 사람도 전혀 없다. 홀랑 벗고 춤을 춰도 구경할 사람 없다. 아! 무문 별장이여,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여기는 사방이 꽉 막힌 '무문 감옥'. 지독하게 고독한 독감방. 점심과 저녁은 식은 밥이다. 석 달의 유기수이니 망정이지 무기수라면 끔찍할 정도다. 여기서는 철저하게 고독과 친해지지 않으면 살아낼 수 없다. 사람도 볼 수 없고, 말도 할 수 없고, 아파도 혼자 견뎌내야 하고, 슬픔도 혼자 바라봐야 한다. 아! 무문 감옥, 이보다 지독할 순 없다."
동은 스님은 "두 가지 생각 모두 무문관에 대한 솔직한 마음"이라고 했다. "어떻게 보면 무문관이 감옥과 비슷하죠. 누구라도 평소에 하던 행동에 제재를 받으면 우선 힘들죠. 그런데 신기한 게 갇혀 있고 부족하고 답답하니 오히려 감사한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엄청나게 도를 닦은 사람들만 이해한다는 부처님 말씀 아니냐"고 슬쩍 눙을 쳤다. "요즘엔 일반인들도 무문관 수행을 할 수 있는 곳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무문관 수행이든 묵언 수행이든, 뭔가를 끊어내는 수행을 하고 난 사람들은 '정말 감사함밖에 남는 게 없다'고 해요. 늘 당연히 내 곁에 있어 감사함을 몰랐던 것이 사라지는 경험이니까요."
그는 2004년부터 5년간 강원도 평창 월정사 단기출가학교장을 지냈다. 한 달간 삭발을 하고 예비 행자 생활을 체험하는 프로그램이다. 정식 출가를 염두에 둔 참가자도 있었고 '치유'를 위해 찾으러 온 사람도 있었다. "무엇이든지 너무 넘치는 시대이다보니 오히려 부족한 것에서 무언가를 찾으려는 마음이 있어요. 지금은 소박하게 살고 싶은 사람도 다른 사람 시선 때문에 '내가 부족한 건가, 뒤떨어진 건가'를 계속 고민하게 되고, 만족함을 모르죠. 급속히 발전하는 물질세계를 정신세계가 못 따라잡는 데서 오는 공허함이 큰 것 같아요."
수행 중 머리를 다쳐 병원 신세를 지느라 어쩔 수 없이 무문관을 잠시 나오기도 했던 스님은 수행 내내 늘 편한 마음만은 아니었다고 한다. 수행 20여일째에 쓴 일기 제목은 '지금 당장 여기서 하고 싶은 것들'이다.
스님은 '지금 듣고 싶지만 들을 수 없는 소리'로 "재래시장의 왁자지껄한 삶의 소리들, 해인사 새벽 예불 소리, 아버지 보리타작하던 도리깨질 소리, 어머니가 가끔 들려주시던 멋진 가곡들, 먼저 간 친구가 좋아하던 노래"를 꼽았고, '지금 당장 여기서 하고 싶은 것들'로 "문을 활짝 열고 싶다, 맨발로 마당을 거닐고 싶다, 일직선으로 백 보만 걷고 싶다, 큰절 부처님 얼굴 한번 보고 싶다"고 했다. "무문관은 좁으니 네 걸음만 걸으면 다시 반대 방향으로 돌아야 해요. 평소엔 직선으로 쭉 걸을 수 있으니, 전혀 감사함을 느껴본 적 없는 일이었죠."
무언가를 비워내는 수행에 대해 동은 스님은 "답답함을 느끼기에 역설적으로 감사함을 느끼는 과정"이라고 했다. 이 마음은 수행 내내 이어졌다고 한다. "여기 앉아 있으니 고맙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 제불 보살님, 주지 스님, 공양을 배달해주는 스님, 공양주 보살님, 농부, 노동자, 나무와 풀, 기둥과 서까래…."(무문관 일기 중)
끊어내고 아픔마저 혼자 견디는 무문관 수행을 하다보면 겸손해진다고도 했다. "내가 아무리 살고 싶어 발버둥쳐도 큰절에서 올라오는 물길이 끊기고, 밥마저 해주지 않는다면 나는 죽을 날만 기다리는 '갇혀 있는' 동물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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