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마거사(維摩居士)... 미륵보살(彌勒菩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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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청정7 작성일15-08-14 17:26 조회9,420회 댓글0건본문
불법승 삼보에 귀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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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거사(維摩居士)한테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얻어맞았습니다.
미륵보살(彌勒菩薩)이 누구입니까?
미륵보살(彌勒菩薩)은 미래에 부처가 되기로 수기(受記)를 받으신 분입니다.
석가모니(釋迦牟尼) 다음 세상(世上)에서 중생구제(衆生救濟)를 하기 위해서
지금 인간세계(人間世界)를 내려다보고
언제 내려갈까를 궁리(窮理)를 하다가
언제 내려가겠다고 결정(決定)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 내려갈까?” 하고 생각을 이렇게 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나라 조각상(彫刻像) 중에서 무엇이 있습니까?
미륵반가사유상(彌勒半跏思惟像)이 있습니다.
그 모습이 선정(禪定)의 선미(禪味)를 음미(吟味)하고 있다고
해석(解釋)하는 방법(方法)도 있지만
또 하나가 무엇이냐 하면
언제 내려가서 중생들을 제도(濟度)할까 하고 궁리(窮理)를 하고 계신 것입니다.
미륵(彌勒)같이 다음 세상(世上)에 부처가 될 것을 수기(受記)를 받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반드시 후계자(後繼者)를 설정(設定)해 놓고 열반(涅槃)에 드십니다.
미륵(彌勒)은 그 중에서 하나입니다.
부처님께서 아지타(Ajita)라는 비구(比丘)에게 수기(受記)를 주셨습니다.
이마에다 마정수기(摩頂受記)를 주셨습니다.
이마에다 손을 얹고
“너는 오는 세상에 부처가 될 것이니 이름을 미륵(彌勒)이라 하리라.”
용화수(龍華樹)라고 하는 나무 밑에서 성도(成道)를 해서
한 삼회에 걸쳐서 설법(說法)을 해서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의 모든 중생들을 다 제도(濟度)시킬 것이다.”라며
수기(受記)를 주셨습니다.
그렇게 수기(受記)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수기(受記)를 받은 보살(菩薩)은 어디에 태어납니까?
수기(受記)를 받은 보살(菩薩)은 도솔천(兜率天)에 태어납니다.
그 도솔천(兜率天)에는 보살(菩薩)이 태어나는데
한 번 태어나면 부처가 되는 보살(菩薩)을
일생보처보살(一生補處菩薩)이라고 합니다.
일생보처보살(一生補處菩薩)이라고 하니까
여러분들이 성불(成佛)하지 못했으면 미륵(彌勒)이 올 때를 기다려야 됩니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초기불교(初期佛敎)에서는 소승법(小乘法)에서는
한 시대에 하나의 부처가 나옵니다.
한 시대에 두 부처가 못나옵니다.
동시대에 부처가 같이 출현(出現)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다려야 됩니다.
그래서 남방(南方)에서는
수행(修行)하는 목적(目的)이 부처가 되려고 하지 않습니다.
무엇이 되려고 합니까? 아라한(阿羅漢)이 되려고 합니다. 부처는 못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처되기가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삼 아승기겁(三 阿僧祇劫)을 육바라밀(六波羅蜜)을 닦아야 됩니다.
보살(菩薩)이 성불(成佛)을 하려면
일생동안 한번도 욕도 하지 않고
한번도 미워하지 말고
한번도 탐욕(貪慾)도 일으키지 말고
한번도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말아야 됩니다.
삼 아승기겁(三 阿僧祇劫) 동안을 그냥 중생들을 위해서 살아야 됩니다.
달게 살아야지 불평불만(不平不滿)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병으로 죽어도 웃으면서 죽어야 되고
누가 흉기(凶器)를 휘둘러도
“그래 휘둘러라. 휘둘러라.”라고 하며 웃으면서 죽어야 됩니다.
“휘두르지 마. 휘두르지 마. 나 억울해.”라고 하면 성불(成佛)을 못하는 것입니다.
극단적(極端的)인 이야기가 아니라
육바라밀(六波羅蜜)의 성불수행(成佛修行)이라는 것이 그렇게 힘든 것입니다.
어느 정도인지 아십니까?
미안합니다. 예를 들어서 그럴 일은 없지만
산길을 홀로 가는 짐승을 아주 무지막지(無知莫知)한 사냥꾼들이 잡아서
나무에 발을 묶어서 돼지처럼 매달아서 지고 가서
그리고 숲 속에 던져 놓은 다음에
양날로 된 톱으로 사지를 쓸면서 킬킬거리며 재미있다고 웃는다고 합시다.
끔직하지요?
끔직한데 그 짐승을 보살로 가정을 해서
“그 때 만약에 그 사람들에 대해서
원한심(怨恨心)을 품거나 슬퍼하거나 비통(悲痛)해하거나
절망(切望)을 하게 되면 너는 여래(如來)의 제자(弟子)가 아니다.”라는 말이
상윳따니까야(Saṃyutta Nikāya)에 나옵니다.
“너는 여래(如來)의 제자(弟子)가 아니다.”라고
출가(出家)하신 스님들한테 부처님께서 훈계(訓戒)를 하신 것입니다.
“너희들이 길을 가다가 그렇게 무지막지(無知莫知)한 일을 당하더라도
다만 아픔만 존재(存在)할 뿐 마음에 조금이라도 원한심(怨恨心)을 갖고 있다면
그대는 여래(如來)의 제자(弟子)라고 하지 마라.”라고
부처님께서 상윳따니까야(Saṃyutta Nikāya)에서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니까 부처님 같으신 분은
얼마나 철저(徹底)하게 하셨으면 그렇게 말씀을 하셨겠습니까?
그러니까 부처님은 무섭다는 이야기입니다.
당신은 삼 아승기겁(三 阿僧祇劫)을 그렇게 사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실제(實際)는 진리(眞理)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정상적(正常的)인 삶이
그렇게 살아야 되는 것이 정상적(正常的)인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생이 살아가는 이 모습은
부처님께서 보실 때는 전부 다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世上)을 살아가는데
고통(苦痛)이 닥쳐오면 원망(怨望)하고
욕을 조금만 들어도 눈을 부릅뜨고 그렇지 않습니까?
손해(損害)를 요만큼도 안 봅니다.
뭐 남편, 부부간에도 그렇고 자식간에도 그렇고
사랑하는 것 같지만 이해관계(利害關係)만 얽히면 어떻게 됩니까?
이해관계(利害關係)만 거기에 들여 밀면
다 원수(怨讐)가 됩니다.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렇게 힘이 드는 것입니다.
그런 분이 미륵보살(彌勒菩薩)입니다.
미륵보살(彌勒菩薩)로 보살도(菩薩道)를 많이 했으니까
부처님의 수기(受記)를 받으신 것입니다.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이렇게 수기(受記)를 받으셨는데
도솔천(兜率天)에 누가 나타났느냐 하면
신통(神通)으로 유마거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유마거사(維摩居士)가 나타나서 무엇이라고 했느냐 하면
“미륵보살(彌勒菩薩)님
당신이 수기(受記)를 받았다고 하는데 도대체 언제 받았습니까?
법(法)에는 과거(過去) 현재(現在) 미래(未來)가 없거늘
어떻게 과거(過去)에 수기(受記)를 받을 수가 있습니까?
어떻게 미래(未來)에 성불(成佛)한다는 말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깨달음 속에는
과거(過去) 현재(現在) 미래(未來)가 없는데
이 진리(眞理) 자체(自體)가, 진리(眞理) 자체(自體)에는
과거(過去) 현재(現在) 미래(未來)가 없는데
어떻게 미래(未來)에 성불(成佛)이라는 이야기가 나옵니까?
그리고 모든 법(法)과 일체(一切)의 모든 법(法)과 모든 중생이 본래부터 진여(眞如)이거늘
어떻게 따로 미륵(彌勒) 당신만 성불(成佛)한다고 할 수 있습니까?”라는
이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모든 법(法)이 진여(眞如)라는 말은
모든 법(法)이 본래(本來)부터 열반(涅槃)을 이루었고
모든 것이 열반(涅槃)을 이루었다는 것은
모든 법(法)이 본래(本來)부터 부처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법(法)이 본래(本來)부터 부처이거늘
중생이 본래(本來)부터 이미 성불(成佛)을 했거늘
어떻게 당신만이 “나는 미래세(未來世)에 부처가 된다.”고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대승(大乘)에서 말하는
이 성불(成佛)의 개념(槪念)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는 것입니다.
“모든 중생들이 당신과 더불어 똑같이
여래(如來)로부터 이미 수기(受記)를 받은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모든 법(法)이
본래(本來)부터 열반(涅槃)이라 이미 수기(受記)를 받은 것이니
어찌 미륵(彌勒) 당신만이 성불(成佛)을 할 것이라는 그런 생각을 하느냐는 이 말입니다.
그래서 그 유마경(維摩經)에서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아무 소리를 못합니다.
미륵(彌勒)에 대한 유마경(維摩經)의 사상(思想)은 무엇이냐 하면
유마경(維摩經)은
진여사상(眞如思想)입니다.
일체법(一切法) 진여(眞如)입니다.
모두가 다 성불(成佛)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대승(大乘)에서는
미혹(迷惑)한 중생이 본래(本來)부터 생멸(生滅)이 없고
중생이 본래(本來)부터 이대로가 진여(眞如)라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이대로 진여(眞如)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
탐진치(貪瞋癡)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진여(眞如)를 깨치지 못하면
탐진치(貪瞋癡)를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왜 탐진치(貪瞋癡)를 갈애(渴愛)를 일으키느냐 하면 앞에서 말했듯이
왜 갈애(渴愛)와 집착(執着)을 일으키느냐 하면
진여(眞如)를 모르기 때문에
갈애(渴愛)가 일어나고 집착(執着)이 일어나서
여기서 탐진치(貪瞋癡)가 생겨서
갖가지 번뇌(煩惱)가 생기고 고통(苦痛)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진여(眞如)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면
마음의 근원(根源)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진여(眞如)로 돌아간다는 것은
열반(涅槃)을 성취(成就)한다는 것은 무슨 뜻이냐 하면
마음의 본성(本城)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진여(眞如)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진여(眞如)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면
생멸(生滅)이 거짓임을 깨달아야 됩니다.
출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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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불하십시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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