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및 심사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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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2-01-04 09:45 조회9,361회 댓글0건본문
■ 시조 당선작
암자에 홀로 앉아
박 상 주
날 좀 때려주오
천년고찰 범종 치듯
안으로
다져놓은
전탑(塼塔)언어 청태(靑苔)눈물
빈 골짜
다 쏟아 붓고
나비 되어 가련다
■ 시조 당선소감
못다 한 말, 심장 속에 한 장 벽돌로 구워냈다아침에 비둘기 떼가 한바탕 원무(圓舞)를 추며 하늘을 쓸더니, 오후에 기쁜 소식이 날아들었다.
‘암자에 홀로 앉아’라는 작품이 불교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는 것이다. 기쁘나 슬프나 무언의 대화를 주고받던 앞산이 씩 웃으며 고개를 끄떡인다. 이미 처녀시집까지 펴낸 아내가 큰 눈을 반짝이며 축하의 손을 내민다.
사람이 살다보면 어찌 할 소리 다하고 흘릴 눈물 세상에 다 보일 수 있겠는가. 사람은 저마다 밤이 되면 못다한 말 덩이 덩이를 한숨으로 이겨서 뜨거운 심장 불 속에 넣어 한 장의 벽돌로 구워낸다.
그리고 그 벽돌을 차곡차곡 마음 한 기슭에 쌓아올려 전탑(塼塔)을 세우고 그 전탑 위로 혼자 흘린 눈물은 이끼로 피어나고 그 위로 날아든 풍경(風磬)소리는 푸름을 더해간다. 하루가 저물어 갈 때 들려오는 산사(山寺)의 범종(梵鐘)소리는 숙연한 기분을 자아낸다.
둥! 종이 울리고 한 동안 그 파동은 지속되다가 웅! 웅! 맥놀이를 거듭하다 서서히 종소리는 사라진다. 그리고 다시 종소리가 울려온다. 마치 중생들이 생로병사(生老病死) 속에 억겁 생(億劫 生)을 거듭하며 쌓아온 모든 번뇌덩이를 모아 빈 골짝으로 쏟아버리듯. 곡마단 천막 안에서 무대가 보이지 않아 발뒤꿈치를 치켜들던 키 작은 소년같이, 아직 낮은 등고선에 머물고 있는 작품을 당선작으로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법화경> ‘화성유품’의 ‘변화성(變化城)’으로 잠시 자리를 마련해 주신 그 배려와 믿음이 헛되지 않도록 정상(頂上)을 향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백양산 선암사 저녁종소리가 멀리서 들려온다. 누가 날 때려주기를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머리를 쳐본다. 어릴 적 심어둔 별 하나가 동지 밤을 치른 겨울 하늘에 돋고 있다.
■ 시·시조 심사평 (고은 시인)
청각·시각 대비 살려낸 ‘묘경’
‘보시(1)-지렁이’의 담담한 고백체 서술이 인상적이었다. ‘눈물자국’도 덜 설명적이었으면 하는 아쉬움과 함께 제쳐두기 아까웠다. ‘회화나무’의 단단한 솜씨도 그랬다.
‘나를 흔드는 기억들’도 일상의 신산스러움을 냉철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런 작품들을 지나서 마지막으로 남은 세 작품이 시부분 ‘세월에 告함’ ‘분원의 강덴 노을의 소각장이 있다’와 시조부문 ‘암자에 홀로 앉아’였다.
그런데 이것들은 각각 다른 몇편과 함께 보내온 것이어서 그것들을 읽는 동안 그 실력의 속내가 밝혀지는 경험을 했다.결국 시조부문 ‘암자에 홀로 앉아’를 당선작으로 삼았다.
당선작 시조는 종소리와 ‘청태눈물’이라는 청각 시각의 대비를 살려내는 묘경을 이루었다. 다만 ‘때려라’라는 거센 표현이 산사 환경을 작위적이게 했다. 하지만 기승전결이 썩 좋았다. 아쉽게 된 시쪽은 중후한 음조 위에 참신한 언어구사를 한 작품이다. 그러나 한두군데의 휴지부가 거슬리는 현학취미를 자아내고 말았다.
편집국 벗들의 갑작스러운 부탁을 면전에 사절하기가 쉽지 않아서 이 심사를 맡았다. 바야흐로 흑룡의 새해 <불교신문> 창간시대의 인연을 떠올리며 낯선 선자가 되어 보았다.낙선의 작자들은 더 연마하기 바라고 당선자는 이번의 수준을 뛰어넘는 내일을 지향하기 바란다. 산중이 진언 ‘향상일로(向上一路)’가 왜 있겠는가.
[불교신문 2781호/ 1월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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