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大乘)과 소승(小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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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청정7 작성일15-07-19 18:29 조회7,654회 댓글0건본문
불법승 삼보에 귀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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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한(阿羅漢)은 이 세상(世上)이 더러워서 다시 오지 않습니다.
더럽고 고통(苦痛)스러워서 이 세상(世上)에 안 옵니다.
아라한(阿羅漢)은 이 세상(世上)이 지겨워서 수행(修行)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맨날 소승(小乘)에서는
계속해서 태어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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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대승(大乘)에서는
뭐 태어나면 어떠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염생사(不厭生死)라고 합니다.
그런데 소승(小乘)에서는 생사(生死)를 싫어합니다.
소승(小乘)에서는 생사(生死)를 싫어해서 생사(生死)를 끊고 열반(涅槃)에 드는데
대승(大乘)에서는 불염생사(不厭生死)로 생사(生死)를 싫어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생사자체(生死自體)가 생사(生死)가 본래(本來)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生)이라고 하나 생(生)이 아니요
죽음이라고 하나 죽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태어났다고 하나 진실(眞實)에 있어서는 태어난 것이 아니요
죽었다고 하나 진실(眞實)에 있어서는 죽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태어나고 죽는 모습 그대로가 열반(涅槃)입니다.
생사(生死)가 그대로 열반(涅槃)이라는 것입니다.
생사(生死)가 그대로 열반(涅槃)이니까 이것을 버려도 되고 안 버려도 된다는 것입니다.
생사(生死)가 있어도 좋고 안 있어도 좋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때에 따라서 어떤 사람들이 나를 보기를 원한다면
일부러 부모의 태중(胎中)에 들어가서 또 낳는 것입니다. 무엇인가를 남겨 둡니다.
그런데 소승(小乘)의 아라한(阿羅漢)들은 아무것도 남겨 두지 않습니다.
마음 가운데에서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다 잘라 버립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단 하나를 남겨 놓으십니다.
자비(慈悲)와 원(願)을 남겨 놓으십니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것이 다 열반(涅槃)이신데
마음에서 부처님의 의식(意識)에서
중생을 교화(敎化)하고자 하는 원(願)을 가지고 열반(涅槃)에 드시다가
어떤 중생들이 부처님 뵙기를 간구(懇求)하거나
고통(苦痛)을 벗어나기 위해서 간구(懇求)하면
그 고통(苦痛)을 벗어나고자 하는 중생의 발원(發願)과 저번 시간에 이야기를 했듯이
부처님께서 남겨 두셨던 원(願)이 연결(連結)이 되어서
그 중생한테 부처님께서 나오십니다.
그것이 대비방편(大悲方便)입니다. 대비수고(大悲受苦)라고 합니다.
대자대비(大慈大悲)이기 때문에
일부러 나고 죽는 고통(苦痛)의 세계로 오시지만
부처님께서는 일부러 몸을 받고 오셨지만
부처님께서는 고(苦)를 고(苦)로 보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부처님을 흉기(凶器)로 상해(傷害)를 입힌다고 할지라도
부처님께서는 아무런 개의(介意)가 없으십니다.
그대로가 열반(涅槃)이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어디에서 갈라지느냐 하면
심체(心體) 즉 마음의 도리(道理)에서 갈라집니다.
그래서 대승(大乘)에서는 결과적으로 이 세상(世上)을 버리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세상(世上)을 버리지 않습니다.
진정한 수행자(修行者)는 열반(涅槃)을 이루었다고 할지라도
이 세상을 버리고 완전한 반열반(般涅槃 parinirvāṇa)에 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늘 올 수 있는 힘을 갖춥니다.
그것이 화신(化身)입니다.
출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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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불하십시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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