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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묵담 작성일13-06-07 12:41 조회8,50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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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복자[遺腹子]

“(명사): 자신이 태어나기 전에 이미 아버지를 여읜 자식

6월은 호국 보훈의 달, 어제는 현충일이고 25일은 한국전쟁이 일어 난지 63년이 되는 날이니 조국을 많이 생각하는 달입니다.

우리 세대는 봄이면 힘들게 넘겼다는 보리 고개도 모르고 자랐지만, 전쟁이야기는 어릴 때부터 많이 들었던 체험담이자 63년 전 우리 집 실제사건을 재구성 했습니다.

 

지금도 큰 형님이 고향집을 지키고 가구수는 100호가 되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입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우리아버지는 군입대 나이가 되어서 아버지 동네친구 10명이 함께 입대했다고 합니다. 그 당시는 결혼하신 아버지는 어머니와 한 두 살 된 큰 형님과 적은 형님을 남겨두고 입대를 했다고 합니다. 육군훈련소가 지금은 논산에 있지만 그 당시는 제주도에서 일주일인가 총 쑤는 방법만 훈련 받고 바로 전선에 투입해서 전쟁에 참가했고, 특히 한국전쟁 중에 가장 치열했다는 중부전선 백마고지(강원: 철원) 전투에 참가했다고 합니다. 더 아이러니한 상황은 그 고지 전투에서 고향친구인 손 계수어른을 만났다고 합니다. 그 어른은 전투에 살아서 내려오는 중이고 아버지는 전투에 투입되는 중간에 만나서 아버지가 그 곳 상황을 물어보니 친구분은 아버지 물음에 아무 말도 못하고 한숨만 푹 쉬었다고 합니다.” 아버지 친구는 살아서 내려오는 중이고 아버지는 고지에 올라가면 생명을 장담을 못하니 친구에게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어서 한숨을 쉬었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도 다행히 살아서 무사히 제대하고 나서 고향으로 귀환 하셨고 우리누님과 나와 동생이 태어나서 다섯 형제가 되었습니다.

특히 가슴 아픈 일은 63년 전 우리 아버지와 함께 같이 입대한 아버지 친구분 10명중에 7명이 전사 또는 행방불명이 되시는 가슴 아픈 사연과 전쟁 후에 마을 전체가 슬픔에 잠겼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 형님 친구분이 유복자가 많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더 가슴이 아팠습니다.

 

세월이 흘러 30년 후에 내가 입대를 했고, 우리 아버지가 목숨 바쳐 지켜낸 백마고지가 바로 보이는 철원(6사단: 청 성 부대)에서 철책근무 포함해서 31개월 보름을 군 생활 했으니 지금도 그곳만 생각하면 아물지 않은 상처처럼 가슴이 아려옵니다.

그 곳에는 도피 안사라는 조그마한 절이 있습니다. 내가 군 생활 할 때는 민통선 안이라 군 법사가 그 절을 관리했고 부처님 오신 날 이면 가서 행사도 했습니다.

제대 후에 그 곳을 다시 찾았을 때는 정식으로 조계종 스님이 직접 주석하시고 불사도 많이 해서 옛날처럼 고즈넉한 멋은 없지만 가끔 생각이 납니다.

지금도 남과 북이 서로 적으로 대치하고 서로 으르렁거리고 있지만 전쟁만은 일어나서는 절대 안 된다는 사실을 국민모두가 깨달았으면 합니다.

특히 옛날 임진왜란부터 이름없는 민초들과 우리아버지와 같은 친구분들의 고귀한 희생이 있었기에 대한민국이 있지 결코 위정자들이 만든 나라가 아니라 생각합니다.

 

추신: 아무튼 조국을 많이 생각게 한 6!!!

6월 정기법회가 (622~23)가 월 정사에서 있고, 5주차(630) 군 장병 법회가 호국 연 화 사에서 있습니다. 그리고 정기법회 때 김정희 전임 회장님이 다른 모든 선약을 제쳐두고 6월 정기법회에 참석하시기로 약속을 하였습니다.

공직에서 퇴임 후에 미얀마까지 가서 오랫동안 수행도 하시고 지금도 한치 흐트러짐 없이 수행자로 사시는 모습을 보면 많이 존경스러웠는데, 이번에 선 우회 도 반들과 좋은 시간을 갖기로 약속을 했으니 어느 법회보다 유익한 시간이 되리라 기대합니다.

2013-06-07, 남한산성 밑에서 묵 담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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