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정동에서,, 조고각하(照顧脚下 : 발밑의 허물을 비춰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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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심법 작성일13-10-03 00:18 조회8,568회 댓글0건본문
[정동에서]조고각하(照顧脚下 : 발밑의 허물을 비춰봄) 입력 : 2013-10-02 21:24:01ㅣ수정 : 2013-10-02 21:24:01
자승 스님, 청안청락하신지요.
편지를 쓰려 하니 먼저 스님과의 인연이 생각납니다. 2년 전, 그러니까 2011년 12월, 스님을 비롯한 한국 6대 종단 대표들이 이웃종교의 성지를 순례하러 캄보디아를 방문했을 때입니다. 종교 담당기자였던 저는 그때 스님의 ‘낮은 행보’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조계종 총무원장으로 불교를 대표한 스님은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 의장이었는데도 권위를 내세우기보다는 겸손하면서도 섬기는 모습으로 이웃종교 지도자들을 대하였습니다. 앙코르와트 사원을 오를 때 연로한 이웃종교 지도자를 살피는가 하면 공식 행사장에서는 좋은 자리를 양보하곤 하셨지요. 프놈펜에서 열린 ‘킬링필드 희생자 추모제’ 때 기원문 낭독을 끝내 최고 연장자인 최근덕 당시 성균관장에게 사양하던 모습은 아름다웠습니다. 33대 총무원장 선거 때 획득한 91.5%의 득표율은 이러한 화합정신에서 나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뒤 스님 소식을 접한 것은 ‘조계종 승려 도박사건’ 때문이었습니다. 지난해 4월23일 장성 백양사 인근 호텔에서 승려 8명이 밤샘 도박을 했다는 사실이 경향신문에 처음 보도되면서 파문이 확산됐습니다. 당시의 기사를 찾아보니 경향신문은 그해 5월10일 ‘조계종 승려 8명, 호텔서 억대 밤샘 도박’ 제하의 1면 기사를 시작으로 26일 “자승, ‘재임에 관심 없다 … 내달 초 종단 쇄신안 공포’”에 이르기까지 보름여 사이에 무려 20여건의 기사를 쏟아냈습니다.‘승려 도박사건’은 폭로 과정에서 조계종의 계파·문중 간 암투가 불거지면서 바로 조계종단으로 비화했습니다. 총무원의 부·실장 등 집행부가 일괄사퇴하고 총무원장인 스님은 108배 참회 정진에 들어갔습니다. 그럼에도 사건이 진화되지 않은 것은 자승 스님을 겨냥하는 폭로와 소문이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그 여파로 선방의 수좌스님들이 처음으로 스님의 원장직 사퇴를 거론하기에 이릅니다. 물론 그 실상이 확인된 것은 많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종단의 수장으로서 면책될 수는 없었겠지요.
편지글에서 지난 얘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은 것은 당시의 기억이 생생하기 때문입니다. 그때 문화부장이던 저는 사건의 흐름을 지켜봤습니다. 그래서 저에겐 스님이 2012년 5월12일 조계사 대웅전에서 선언한 “(총무원장) 재임에 관심이 없고, 임기에도 연연하지 않겠다”는 말씀이 아직도 쟁쟁합니다. 또 한 달 뒤 스님은 중앙종회 의회에서 “소임에 대한 마음을 비웠다”고 말했습니다.
이제는 편지를 띄우는 연유를 짐작하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재임에 관심이 없”다는 공언을 뒤집고 총무원장 연임에 도전한 바로 그 점 때문입니다. 스님은 지난달 16일 조계종 종책 모임인 ‘불교광장’ 총회에서 제34대 총무원장 후보로 공식 추대됐습니다. 그날 스님은 기자들에게 “출마를 둘러싸고 논란이 있는 줄 알지만 변명하지 않겠다”고 말했다지요? 그러면서 “맺는 사람이 풀고 시작한 사람이 그 끝을 책임져야 한다”며 “약속을 지키지 못한 허물을 대신해 한국 불교를 반석 위에 올려놓겠다”고 했다지요?
도덕과 정직을 최고 덕목으로 내세우는 종교인이 할 말이 아닙니다. ‘거짓말을 하지 말라’(不妄語)는 신자도 지켜야 할 기본 계율인데, 250가지의 사미계를 지키겠다고 서약한 스님이 가벼이 여긴다면 어찌하겠습니까. 스님의 말씀은 식언을 일삼는 정치인의 궤변을 연상케 합니다. 33대 총무원장으로서 이뤄낸 스님의 공적을 몰라서가 아닙니다. 스님은 ‘자성과 쇄신결사운동’으로 한국 불교의 위상을 높였습니다. 승가교육체계를 개편하고 스님의 노후복지제도를 도입했습니다. 이웃종교와의 화합은 물론 쌍용차 해고자 문제,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등 어려운 이웃과 사회 문제에 적극 관심을 가진 점에는 모두들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공이 아무리 많아도 정직과 신뢰의 바탕이 없으면 공든 탑은 무너지게 마련입니다. 10일은 제34대 조계종 총무원장 경선일입니다. 지금쯤 유력 후보인 스님은 선거인들의 표 계산에 분주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총무원장은 스님들의 대표만이 아니라 조계종 사부대중, 나아가 한국 불교의 수장입니다. 그렇다면 조계사 주위 스님들의 얘기뿐 아니라 신도, 국민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저는 최근 “한국 불교를 위해 고민할지언정 승단을 위해 마음 쓰고 아파하지 말자. 스님들은 본래 그랬다”는 한 법사의 말을 듣고 놀랐습니다. “스님들에게 더 이상 불교의 개혁이나 자정은 기대할 수 없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듣습니다. 스님은 부처님, 불경과 함께 불교의 삼보입니다. 신자들이 스님을 외면한다면 불교가 제대로 설 수 없는 것은 자명합니다. 승단이 사부대중을 껴안지 못하고 독주한다면 점점 사회로부터 고립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선가의 용어 가운데 ‘자기 발밑의 허물을 비춰보라’는 뜻의 조고각하(照顧脚下)라는 말이 있다지요. 이 말을 스님께 전해드리고 싶네요. 출가 후 지나온 길을 회고해보면 최소한 연임에 연연하지는 않겠지요. 청안청락바랍니다.
편지를 쓰려 하니 먼저 스님과의 인연이 생각납니다. 2년 전, 그러니까 2011년 12월, 스님을 비롯한 한국 6대 종단 대표들이 이웃종교의 성지를 순례하러 캄보디아를 방문했을 때입니다. 종교 담당기자였던 저는 그때 스님의 ‘낮은 행보’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조계종 총무원장으로 불교를 대표한 스님은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 의장이었는데도 권위를 내세우기보다는 겸손하면서도 섬기는 모습으로 이웃종교 지도자들을 대하였습니다. 앙코르와트 사원을 오를 때 연로한 이웃종교 지도자를 살피는가 하면 공식 행사장에서는 좋은 자리를 양보하곤 하셨지요. 프놈펜에서 열린 ‘킬링필드 희생자 추모제’ 때 기원문 낭독을 끝내 최고 연장자인 최근덕 당시 성균관장에게 사양하던 모습은 아름다웠습니다. 33대 총무원장 선거 때 획득한 91.5%의 득표율은 이러한 화합정신에서 나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운찬 문화에디터
편지글에서 지난 얘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은 것은 당시의 기억이 생생하기 때문입니다. 그때 문화부장이던 저는 사건의 흐름을 지켜봤습니다. 그래서 저에겐 스님이 2012년 5월12일 조계사 대웅전에서 선언한 “(총무원장) 재임에 관심이 없고, 임기에도 연연하지 않겠다”는 말씀이 아직도 쟁쟁합니다. 또 한 달 뒤 스님은 중앙종회 의회에서 “소임에 대한 마음을 비웠다”고 말했습니다.
이제는 편지를 띄우는 연유를 짐작하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재임에 관심이 없”다는 공언을 뒤집고 총무원장 연임에 도전한 바로 그 점 때문입니다. 스님은 지난달 16일 조계종 종책 모임인 ‘불교광장’ 총회에서 제34대 총무원장 후보로 공식 추대됐습니다. 그날 스님은 기자들에게 “출마를 둘러싸고 논란이 있는 줄 알지만 변명하지 않겠다”고 말했다지요? 그러면서 “맺는 사람이 풀고 시작한 사람이 그 끝을 책임져야 한다”며 “약속을 지키지 못한 허물을 대신해 한국 불교를 반석 위에 올려놓겠다”고 했다지요?
도덕과 정직을 최고 덕목으로 내세우는 종교인이 할 말이 아닙니다. ‘거짓말을 하지 말라’(不妄語)는 신자도 지켜야 할 기본 계율인데, 250가지의 사미계를 지키겠다고 서약한 스님이 가벼이 여긴다면 어찌하겠습니까. 스님의 말씀은 식언을 일삼는 정치인의 궤변을 연상케 합니다. 33대 총무원장으로서 이뤄낸 스님의 공적을 몰라서가 아닙니다. 스님은 ‘자성과 쇄신결사운동’으로 한국 불교의 위상을 높였습니다. 승가교육체계를 개편하고 스님의 노후복지제도를 도입했습니다. 이웃종교와의 화합은 물론 쌍용차 해고자 문제,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등 어려운 이웃과 사회 문제에 적극 관심을 가진 점에는 모두들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공이 아무리 많아도 정직과 신뢰의 바탕이 없으면 공든 탑은 무너지게 마련입니다. 10일은 제34대 조계종 총무원장 경선일입니다. 지금쯤 유력 후보인 스님은 선거인들의 표 계산에 분주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총무원장은 스님들의 대표만이 아니라 조계종 사부대중, 나아가 한국 불교의 수장입니다. 그렇다면 조계사 주위 스님들의 얘기뿐 아니라 신도, 국민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저는 최근 “한국 불교를 위해 고민할지언정 승단을 위해 마음 쓰고 아파하지 말자. 스님들은 본래 그랬다”는 한 법사의 말을 듣고 놀랐습니다. “스님들에게 더 이상 불교의 개혁이나 자정은 기대할 수 없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듣습니다. 스님은 부처님, 불경과 함께 불교의 삼보입니다. 신자들이 스님을 외면한다면 불교가 제대로 설 수 없는 것은 자명합니다. 승단이 사부대중을 껴안지 못하고 독주한다면 점점 사회로부터 고립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선가의 용어 가운데 ‘자기 발밑의 허물을 비춰보라’는 뜻의 조고각하(照顧脚下)라는 말이 있다지요. 이 말을 스님께 전해드리고 싶네요. 출가 후 지나온 길을 회고해보면 최소한 연임에 연연하지는 않겠지요. 청안청락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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