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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불이 지나간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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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국화꽃향기 작성일14-03-26 01:35 조회8,630회 댓글0건

본문

들불을 태우려면
먼저 싹을 피웠으리라.
봄을 기다려
비에 젖었으리라.
바람이 왔다 가고
햇살 좋은 날
꽃망울을 피웠으리라.
씨는 날 리우고
존재로 말라 시들었으리라.
그리하여 불처럼
불처럼 타올랐다.

혼자 마르기에는
버거웠던 들판에
서로 보태어 부 등 껴 앉고
불의 신열을 깨웠으리라.
그리고 봄,
들불이 자지러지고
그 재 속에서
생명은 한 줌 싹을 피우고
다시 피어났으리라.
지상에 모든 생명을 태우고
태워버렸지만
흙 속에 살아 꿈 트는 어린싹은
태우지 못하였다.

싹을 피우기 전에
지상에서 지워진 어둠
그 어둠을 불살라
먼저 지우고 간 들풀에 싹을
피웠으리라.
한낱 대치어 없음 지나가는 일들은
생을 말리는 허무에서 시작하였으리라.
보이는 것만으로
세상의 이치를 일깨울 수는 없는 노릇
생명은 쉬지 않고
DNA로 혈통을 이어 왔으리라.
봄은 들불이 지나고
비로소 꽃을 피우는 들꽃이다.

들꽃이 불처럼 피어나거든
들불이 지나간 그 자리에
봄이 찾아온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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