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출가학교 동문의 <인연 이야기>
페이지 정보
작성자 선일 작성일15-01-13 12:25 조회9,221회 댓글0건본문
이 글은, 단기출가학교 총동문회 Daum 카페에 연재했던 글로서,
월정사 단기출가학교와의 인연이 시작된 지난 10년 동안의 제 삶을 돌아보고 싶어서 쓴 글입니다.
다녀가시는 분들 재미삼아 보시고 오늘도 좋은 날 되시길... ()()()
0. 출가
미국에서 돌아와 서울에 작은 집을 잠시 얻었다.
조촐한 사업을 계획하고 있었고, 소소한 공부도 할 겸,
국립도서관 가까운 예술의 전당 앞 어느 빌트인 원룸..
근본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니 몇 달이 지나도 방황이 계속된다.
이렇게 시간을 허비하며 지낼 수는 없다.
천주교 수도원도 찾아보고, 꽃동네 나환자촌도 연락해 보고..
(그러나, 어느 것 하나 마음이 진심으로 동하질 않는다.)
어느 때 부터인가 방 안에 들어앉아 멍하니 티비를 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불교TV 에 현각스님의 영어 법문이 나온다. (아~ 왜 이리 마음이 편하지?)
이른 새벽 산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또는 밤 늦게 도서관에서 돌아오면,
불교방송을 틀어놓고 하염없이 누워 있고는 했다.
2004 년 늦가을 어느날.. MBC 에서 무언가를 방영한다.
1 부는 놓치고 2 부를 보았는데,
(아 저 곳에 가야겠구나..) 비로소 마음이 움직인다.
며칠을 고민하다가, 무작정 월정사를 찾았다.
저녁 무렵 도착하여 버스 기사님에게 물어물어 민박촌에 잠자리를 정했다.
(이제사 알고보니, 19 기 혜원님이 운영하시는 민박집 바로 그 자리^^)
다음 날 아침을 간단히 먹고, 아스팔트 길을 걸어, 일주문을 지나, 전나무 숲길을 오른다.
늦가을 이른 아침.. 살풋이 안개 덮힌, 서늘한 전나무 숲길..
그 느낌은 여전히 잊을 수 없다.
종무소에 도착하여 이차 저차 말씀을 드리니,
동글동글한 권미숙보살님(당시 단기출가학교 소임)이 따끈한 차 한 잔을 내어주신다.
동글동글한 권미숙보살님(당시 단기출가학교 소임)이 따끈한 차 한 잔을 내어주신다.
스님께서 지금은 회의중이시니, 점심 공양 후에 스님과 상담 시간을 마련해 놓겠다 하셨다.
종무소를 나와 이리저리 거닐었다.
오후에 다시 찾아가니 스님 한 분이 반겨주신다.
별로 스님같지 않으신^^ 편한 인상에, 자상하게 얘기를 들어주시어 마음이 푸근하다.
"그렇게 하세요. 한 달간 수행하시고,
두 달이고 세 달이고 자원봉사 하시며 마음을 보살피다 가세요."
(나중에 알았지만, 당시 교무국장 소임 및 단기출가학교를 전담하고 계시던 동은스님이셨다.)
무얼 할 말이 많아 이렇게 글이 길어지는지.. ^^;;
해를 바꾸어 2005 년 1 월 3 일, 다시 진부터미널에 내려
(담배 끊은 기념으로) 시골^^치과에서 스케일링을 받았다.
치료중 기계가 자꾸 고장나서 시간이 지연된다. 지각이다 !!
택시를 타고 금강교 앞에 내려 뛰어갔다. 십여 분 늦었지만 다행히 두 말 없이 받아주신다. ()
2009. 12.19. 선일
1. 자자회 (自恣悔)
가끔씩 새로 인사를 나누는 동문 법우님들이 농담삼아 물어보시고는 한다.
수행하러 와서 연애 했느냐고..^^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고 만만의 콩떡이다. (아~ 십년전 유행어)
내게는 삶의 벼랑 끝에서, 하루 하루가 절박했던 시간들이다.
스님과 상담할 때도 말씀드렸지만, (불교에 대해 너무도 모르고 있었기에)
두어 달의 시간을 두고 마음을 정하고 싶었고,
수행 과정 내내.. 신(身)출가에 대해 제법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었다. 아무튼...
갈마를 하고, 하룻밤을 뜬 눈으로 지새고.. 다음날 삭발을 하고, 삼보일배, 적멸보궁..
며칠이 지나서야, 일과에 겨우 적응을 하여 어느덧 마음의 평온을 찾아갈 무렵이다.
저녁 공양 마치고 법륜전 자자회 시간.
70 여명의 행자님들이 벽을 등지고, 반원을 그리며 큰 법륜전에 빙 둘러 앉는다.
앞에는.. 동은스님, 주봉스님, 해욱스님, 선나스님, 현묵스님이 고요히 앉아 지켜보시고,
우리는 마이크를 돌아가며 잡고, 지난 며칠 자신의 생활을 살피며,
중앙에 나가 부처님 전에 참회의 삼배를 올린다.
순서가 돌아오는 사이 사이에 '나는 무슨 참회를 해야 하나' 설핏 고민하던 중..
여행자님 한 분이 마이크를 잡고 주저주저 한다.
고등학생? 은 아닌거 같고.. 대학 초년생쯤? 되어 보인다.
"양말이 없어서.. 세면장에 널려 있던 두꺼운 양말.. 하루 신고 가져다 놓았어요."
얼굴이 붉어져서, 금방이라도 울듯이 어쩔줄을 모르다가,
종종걸음으로 나가 부처님 앞에 삼배를 불안스레 올린다.
적광전 새벽 예불은 참 추웠다.
지금은 양쪽에 공기순환식 히터를 넉넉히 틀어주시지만,
5년전 그 겨울의 새벽, 냉골 법당에는 겨우 석유난로 두 개..
그것도 냄새와 소음 때문에 왠만하면 꺼놓고는 하셨다.
새벽 예불 끝나고 법륜전으로 이동할 때면, 발끝이 살짝 얼어 있고는 하던 기억..
자자회가 끝나고, 세면 마치고, 빨래 널어놓고 잠자리 펴면서 잠시 생각해 보았다.
'내 양말을 하나 그 행자님한테 줄까?'
그러나, 나름대로 꼼꼼하게 준비한다 했는데, 나 역시 양말에서 이미 문제가 생겼다.
평소에 겨울에도 추위를 별로 안타기에, 얇은 양말 세 개, 두꺼운 양말 두 개를 준비해 왔다.
아차.. 적광전 거친 카펫 위에서 절을 하니, 얇은 양말이 이틀만에 해져서 구멍이 난다.
이제 얇은 양말은 비상용으로나 쓸모 있을까, 여기저기 구멍이 뻥뻥 뚫어져 버렸고
두꺼운 양말 두 개로 겨우 하루걸이 연명하며 지내는 신세..
마음은 안타깝지만 내 것을 줄 수는 없다.
'내일 종무소 권보살님에게 부탁해 볼까?'
행자 신분으로 묵언하고 지내며.. 오지랍 넓게 남의 양말 하나 달라 하기도 아니다 싶다.
'어찌해야 하나..'
명등 소임자의 "소등하겠습니다" 한 마디에...
하루 내내 잠이 부족하던 새내기 행자는,
차거운 한겨울 달빛 고즈넉한 서별당 귀퉁이 잠자리에서
세상 모르고 어느덧 수면 삼매에 빠져 버린다. ()
2009. 12. 21. 선일
2. 꿈길과 버스안에서
목욕하러 가는 날이다.
깊은 겨울이면 오대천 물사정이 매우 안좋아져서, 때로는 밥 해먹을 물 조차 충분하지 않다.
한 달 쯤 목욕 안해도 설마 죽기야 하겠냐만.. ^^
단기출가학교를 진행하시는 사중의 입장에서는, 행자들의 위생과 건강도 돌보아야 하겠기에
그나마 월정사에서 가까운 근처 호텔(지금은, 켄싱턴플로라)로 단체 목욕하러 간다.
국립공원 매표소를 지나, 한 걸음 내려 오솔길로 접어든다.
오대산 호텔 가는 길이 꿈꾸는 듯 하였다.
싯구 속에, 그림 속에 들어간 듯.
그렇게 좋구나 한다.
혼자라면 아마 외로웠을 것을
많은 도반들이 있어
그 풍경이 정겹고 따듯하다.
사람은, 인연 때문에 아파하고
또 인연을 그리워하고...
싯구 속에, 그림 속에 들어간 듯.
그렇게 좋구나 한다.
혼자라면 아마 외로웠을 것을
많은 도반들이 있어
그 풍경이 정겹고 따듯하다.
사람은, 인연 때문에 아파하고
또 인연을 그리워하고...
무소의 뿔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같이,
흙탕물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같이
나도 그렇게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갈 수 있을까?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같이,
흙탕물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같이
나도 그렇게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갈 수 있을까?
(2005.1.13. 수행일기에서)
바윗돌 사이사이를 지나
꽁꽁 언 오대천 위에 미끄럼도 지쳐보고
모처럼의 바깥 바람에, 소풍나온 유치원 동무들^^ 처럼..
그렇게 꿈길을 따라 한 줄로 걸어간다.
목욕을 마치고, 버스를 타고, 개운한 맘으로 다시 월정사로 향했다.
조그만 시내버스에 70 여명이 탔으니 복작복작...
대행행자님이 사람들 틈을 비집고, 창밖을 빼꼼히 내다보며 한 마디 던진다.
"걸어오니까 좋든데.. 돌아가는 길두 걸어가자구요 !!"
조용... 누구도 반응이 없다.
묵언에 철저하던 때이기도 했지만, 말썽쟁이^^ 대행의 본색이 서서히 드러나던 무렵인지라..
마침 옆에 섰던 나는, 한 마디 거들어 본다.
"행자님, 담에 저랑 또 걸어요. 오늘은 공양 시간도 늦었고 하니까, 버스 타고 얼릉 올라가자구요."
발그레한 미소를 살짝 보여주고는,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던 대행...
버스는 어느덧 월정사 주차장에 도착했다.
금강교 앞에 내려서 (청량한 오대산 겨울 공기를 마음껏 느껴보다가)
이내 우리는 대열을 다듬고, 안행으로 줄지어 간다.
일불은, 결혼 후 나에게 말했었다.
그 때, 그 따듯하던 목소리가 누군지 참 궁금했다고.
(좋은 마음으로) 스치듯 건낸 다정한 말 한 마디..
이제와서 돌아보니, 과연 우리 부부의 인연의 끈이 되었는가 ? ^^
성 안내는 그 얼굴 참다운 공양구요
부드러운 말 한 마디 미묘한 향이로다
부드러운 말 한 마디 미묘한 향이로다
오늘은 율이의 세 돌 맞이 생일입니다. ^^
아름다운 인연 만들어주시고, 보듬어 주시고, 또한 넉넉히 사랑해 주시는
오대산 월정사의 모든 불보살님들께 진심으로 깊이 감사드립니다. ()()()
2009. 12. 25. 선일
3. 탁발 그리고 덧버선
수행 기간이라 뉴스를 듣지 못하여 전혀 몰랐지만..
동남아시아에 지진으로 인한 해일 피해가 극심하다 한다.
오늘은, 그 분들의 어려움을 위로하기 위해 (수행 일정을 조금 변경하여)
시내를 돌며 모금에 나서는 탁발이 있다.
강릉 월정사 포교당에서, 주지스님 등을 모시고
"동남아 지진/해일 피해를 위한 자비 탁발" 입재식을 가졌다.
건장한 청년(?)이라는 이유로, 바람이 몹시 부는 한겨울 날,
플래카드를 들고 일행을 뒤따라가는 소임을 맡았다.
강릉 시내 한복판의 재래시장을 지나간다.
족발과 순대 등등..
음식 냄새가 바람결에 요란하지만, 수행의 이력이 조금^^ 붙어서인지,
살생의 내음(?).. 우리 중생의 먹을 거리로 가득한 시장 좌판의 냄새가
약간은 낯설기도 하고 편치만은 않다.
두어시간 탁발을 다니다보니, 그럴싸한 점포의 주인들은 조금 인색하시지만..
거리에 물건을 벌려놓고 (추위에 옷을 감싸입고) 노점 장사하시는 아주머니들은
오히려 인정이 푸근하기도 하다.
아차...
내가 탁발 발우를 들었더라면,
그 행자님에게 양말 하나 사드릴 수도 있었겠구나 !
어찌하랴. 플래카드를 들고 뒤따라가니, 돈은 만져 볼 수도 없다.
앞에 가시던 행자님에게 (몇 번을 망설이다..) 조심스레 묻는다.
"저.. 꼭 필요한 게 있어서 그런데, 죄송하지만 이천원만 꺼내 쓰면 안될까요?"
흥성님이었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네. 그렇게 하세요~"
흔쾌히 대답해 주시는 행자님이 참 고마웠다. ()
그 행자님의 발우에 얹혀있던 이천원을 꺼내어, 시장 구석의 양말가게에 살짝 들어갔다.
양말 하나로는 남은 십여일을 지내기에 부족할꺼 같다.
마침 덧버선 두툼한 게 보인다.
"얼마에요?"
"이천원이요."
자비 탁발을 마치고 월정사에 돌아와 저녁 공양 시간이다.
공양을 마치고 내 그릇 설겆이를 하고 있는데, 저 짝 너머 그 여행자님이 계신다.
얼른 설겆이 마치고 공양간 문 앞에서 잠깐 기다린다.
행자복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덧버선을 내밀었다.
"이거 신으세요~"
"네?"
"제가 어떻게, 어떻게 구한거니까, 따듯하게 양말에 덧대어 신으세요."
"아.. 네.. 고맙습니다.."
며칠이 지난후 새벽예불 마치고 법륜전 참선 시간.
저 건너편에 앉아있는 그 행자님의 발에는 어느덧 그 덧버선이다.
마음이 좋다. ^^
부처님 고마워요. 나중에 꼬옥~ 갚을게요. ()
(지금도 추운 겨울이면 꺼내어 신는, 일불의 그 덧버선^^)
2010. 1. 1. 선일
4. 채공
채공 소임은, 바쁘기도 하고 참 재미있기도 하다.
처음 소임을 지정받을 때..
(단어들이 도무지 낯설어) 무슨 소임을 할까 망설이던 많은 행자님들은..
결국, 맨 끝에 남은 채공, 공양주 소임을 우르르 떠맡게 되었다.
원래, 절집에서 공양주 소임은 공양(밥) 준비를 책임지고,
채공 소임은 주로 나물 등 반찬 준비를 맡는다.
하지만 (수행자들을 배려하시어) 대부분의 공양 준비는,
공양간 보살님들과 자원봉사자 분들이 대신해 주셨다.
따라서 채공은 (아침, 점심) 발우 공양 찬상 준비와
(저녁 소임 시간) 주로 채소 다듬는 소임이 되었고,
공양주는 발우 공양이 끝난 후의 뒷정리와 설거지를 담당하는 소임이 되었다.
찬상 준비는 차라리 재미있다.
새벽 시간, 백팔참회문 중간에 살짝 나와야 하는 것은 약간의 아쉬움..
점심 준비로, 사시예불 올리는 동안 먼저 나올 수 있는 특권은 오히려 즐거움이기도 하다.^^
그러나, 공양 후 뒷정리와 설거지는 만만치 않다.
힘든 일이야 보람이려니 여기면 위로가 되지만,
도반들과 같이 전나무숲길에서 포행할 수 없음은 무엇보다 큰 안타까움이다.
설거지를 씩씩하게 잘 하시던 공양주 무행님^^은 특히 포행을 많이 아쉬워 하셨다.
자기 소임도 아닌데 설거지에 함께 애쓰시던 범일님..
그리고 여러 채공/공양주 소임 행자님 등등..
뽀얀 김 속에 아지랑이처럼 떠오르는 그 예쁜 얼굴들이, 지금도 참 많이 그리웁다.
(이번 글은 조금 길어질 것 같습니다.)
채공 소임을 맡고 있던 일법 행자님이 허리 통증으로 고생을 많이 하셨다.
수행 중간 중간에 옆에 앉아 등짝을 가끔씩 두드려 드리고는 하였는데,
증상이 더 심해져서 이제는 채공 소임 조차 힘겨워 보인다.
(비교적 쉬운 소임인) '수광전 지전'을 맡고 있던 행자님과 역할을 맞바꾸신다 한다.
공양간 책임이던 내게 말씀하시길래, 선나스님께 가서 전해드리고, 그렇게 바꾸기로 했다.
다음날 새벽.. 새로 오신 행자님이 누군가 싶어 궁금했더니, 바로 그 덧버선 행자님이다.
"채공으로 오셨네요?" 이 쪽에서 반갑게 인사 건네는데..
고개를 얼른 숙이고는 저리 도망가 버린다.
저녁 소임 시간, 공양간 바닥을 대걸레로 이리저리 밀고 다니다 보니..
자원봉사 선배님(2기 자각님^^)과 덧버선 행자님이 상 위를 행주로 닦으며 잠시 한담을 나눈다.
"진주요? 내는 경남 고성인데, 반갑네~ 중학교 선생님요? 보기엔 딱 고마 중학생인데.."
갈 길을 서두르는 듯 시간은 흘러... 어느덧 졸업식 날이다.
한 달이란 시간은 역시 너무도 짧았다.
(교무스님께 미리 말씀드린대로) 나는 두어달 남아 자원봉사를 더 하기로 했다.
여행자님들은 여럿이 남는데, 남자는 나 혼자다. - -;;
졸업식을 마치고, 이리 저리 어울려 사진도 같이 찍고..
반장 행자님이, "대관령 목장 근처에 같이 가서 함께 회식을 하자" 하신다.
(주봉스님께 말씀드리고) 오늘은 쉬고 내일부터 열심히 봉사하기로 하여
몇몇 도반들과 오랜만의 외식 나들이를 즐거웁게 다녀왔다.
(서울 올라가는 도반님의 차를 얻어타고) 매표소 지나 일주문에 내려달라 부탁하여,
아스팔트 길을 걸어 터벅터벅 오른다.
금강교 앞 주차장 매점을 지날 때 쯤..
저 앞에 그 덧버선 행자님이 버스를 기다리며 서 계신다.
반가운 마음에 종종 걸음으로 달려가 인사를 드렸다.
"가시는 길에 이렇게 또 뵙게 되네요."
어? 대뜸 눈길 위에서.. 내게 갑작스레 삼배를 하신다.
버스정류장에서 두 남녀의 기묘한 맞절..
"행자님~ 참.. 고마웠어요.." (이번에는 그래도 말씀을 잘 하신다.)
"함께여서, 저도 참 좋았습니다. 우리 인연 되면 다음에 또 만나요~"
버스가 도착하자, 덩치 큰 가방을 차에 올려드리고는
떠나가는 버스를 보며 합장 반배 하고,
찬 공기 한 숨 가득히 들이마시며.. 나는 이내 월정사로 발걸음을 향했다. ()
2010. 1. 10. 선일
9. 함께하는 수행의 길
연재가 완료되면 하편을 또 올리겠습니다. ()()()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