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행복하고 높은 세계로 가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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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양평 작성일16-06-29 21:53 조회9,831회 댓글0건본문
거룩하신 석가모니부처님의 말씀으로 부촉되어지는
순일선원 정기법회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부처님께서 금강경을 통해 전해주고자 하신
심오한 법(가르침)의 정수를 현재 남아있는
1)산스끄리뜨 본과
2)구마라즙 스님의 한역본과
3)현장 스님의 한역본, 그리고 현장스님께서 저본으로 삼으신
4)남아있지 않은 산스끄리뜨 본까지를 망라하여
순일스님께서 깊은 사마디에 들어 드러나는 반야로 보시고
참 행복과 궁극의 평화에 이르는 전 여정을
쉽고 상세하게 풀어 펼쳐주십니다.
양평선원에서는 오는 6월 12일(일)부터
매주 둘째, 셋째, 넷째 일요일 정기법회를 마친 후
불해님 안내로 새롭게 오프라인 경전독송 모임을 갖습니다.
[홈페이지 www.soonil.org 참조]
금강경 유통본 12 [여기서 행복하고 높은 세계로 가려면]
뽓타빠다 경에 마지막에 여기서 의도하지 않으리라 의도하지 않으리라
뽓타빠다 경에 마지막에 여기서 의도하지 않으리라 의도하지 않으리라
의도가 소멸하면 지멸에 이르른다. 존재도 소멸하지요. 의도가 사라지니까
존재를 초월하는 겁니다. 신도 초월해 뻐리는 겁니다.
모든 세계를 초월한 것이다. 단멸이 아니다. 우리 이 공부 왜 합니까?
깨달을려고? 추상적인 얘기지요.
부처님께서 이 공부 왜 하는지 사성제에서 맨 첨에 서두에서 얘기하셨습니다.
괴롭기 땜에... 괴로움을 없애고 궁극의 행복이 되기 위해서...
뭐 궁극이 되자. 궁극이 드러난다. 깨달음 이건 다 다른 단어들이고 해탈...
실지로 해탈의 내용이란 뭐냐? 애초에 출발은 해탈하기 위해서? 아니에요.
괴로움을 없애고 행복이 나날이 커지고 궁극의~
불멸과 궁극의 지복이 되기 위해서...
그걸 다른 용어로 하니까 뭐 해탈이요. 뭐 이런 용어들이지요.
그래서 지금 부처님께서 궁극까지의 주신 여정이 뭐냐 하면 궁극만 있는 게
아니라 부처님이 주신 여정은 [예불문]에 있듯이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다. 처음은 지금 사람세계 여기서 좋아야 되고 중간도 좋고는
죽은 다음에 위로 가야지 밑으로 가서는 안 되고 나날이 천상을 가고
끝도 좋다. 끝에는 해탈이다.
이 모든 여정이 한마디로 하면 괴로움은 점점 작아지고 행복은 점점 커지는
이게 우리가 하는 공부입니다. 이 공부를 위해서 끝판만 얘기하는 게 아니라
지금 할 수 없이 끝판까지 얘기했어요. 이게 세상에서 한 2000년 동안 이해가
안 된 얘기기 때문에 누군간 남겨야 되니까 할 수 없이 그냥 한 얘기고 잊어
먹으셔도 되요. ‘끝판은 난 모르겠다.’하면... 잊어 먹으셔도 되는데 순일이가
하려는 얘기는 끝판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부터 나날이 이 괴로움이
적어지고 행복해지는 길은 비우는 길이다. 그 얘길 드릴려고 한 겁니다.
버려가는 길이다.
-법문녹취:두려움 없는 자유님
http://www.soonil.org/board.php?board=darmaaudio&menu=05&tname=법문오디오&command=body&no=124
순일선원 정기법회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부처님께서 금강경을 통해 전해주고자 하신
심오한 법(가르침)의 정수를 현재 남아있는
1)산스끄리뜨 본과
2)구마라즙 스님의 한역본과
3)현장 스님의 한역본, 그리고 현장스님께서 저본으로 삼으신
4)남아있지 않은 산스끄리뜨 본까지를 망라하여
순일스님께서 깊은 사마디에 들어 드러나는 반야로 보시고
참 행복과 궁극의 평화에 이르는 전 여정을
쉽고 상세하게 풀어 펼쳐주십니다.
양평선원에서는 오는 6월 12일(일)부터
매주 둘째, 셋째, 넷째 일요일 정기법회를 마친 후
불해님 안내로 새롭게 오프라인 경전독송 모임을 갖습니다.
[홈페이지 www.soonil.org 참조]
금강경 유통본 12 [여기서 행복하고 높은 세계로 가려면]
뽓타빠다 경에 마지막에 여기서 의도하지 않으리라 의도하지 않으리라
뽓타빠다 경에 마지막에 여기서 의도하지 않으리라 의도하지 않으리라
의도가 소멸하면 지멸에 이르른다. 존재도 소멸하지요. 의도가 사라지니까
존재를 초월하는 겁니다. 신도 초월해 뻐리는 겁니다.
모든 세계를 초월한 것이다. 단멸이 아니다. 우리 이 공부 왜 합니까?
깨달을려고? 추상적인 얘기지요.
부처님께서 이 공부 왜 하는지 사성제에서 맨 첨에 서두에서 얘기하셨습니다.
괴롭기 땜에... 괴로움을 없애고 궁극의 행복이 되기 위해서...
뭐 궁극이 되자. 궁극이 드러난다. 깨달음 이건 다 다른 단어들이고 해탈...
실지로 해탈의 내용이란 뭐냐? 애초에 출발은 해탈하기 위해서? 아니에요.
괴로움을 없애고 행복이 나날이 커지고 궁극의~
불멸과 궁극의 지복이 되기 위해서...
그걸 다른 용어로 하니까 뭐 해탈이요. 뭐 이런 용어들이지요.
그래서 지금 부처님께서 궁극까지의 주신 여정이 뭐냐 하면 궁극만 있는 게
아니라 부처님이 주신 여정은 [예불문]에 있듯이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다. 처음은 지금 사람세계 여기서 좋아야 되고 중간도 좋고는
죽은 다음에 위로 가야지 밑으로 가서는 안 되고 나날이 천상을 가고
끝도 좋다. 끝에는 해탈이다.
이 모든 여정이 한마디로 하면 괴로움은 점점 작아지고 행복은 점점 커지는
이게 우리가 하는 공부입니다. 이 공부를 위해서 끝판만 얘기하는 게 아니라
지금 할 수 없이 끝판까지 얘기했어요. 이게 세상에서 한 2000년 동안 이해가
안 된 얘기기 때문에 누군간 남겨야 되니까 할 수 없이 그냥 한 얘기고 잊어
먹으셔도 되요. ‘끝판은 난 모르겠다.’하면... 잊어 먹으셔도 되는데 순일이가
하려는 얘기는 끝판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부터 나날이 이 괴로움이
적어지고 행복해지는 길은 비우는 길이다. 그 얘길 드릴려고 한 겁니다.
버려가는 길이다.
-법문녹취:두려움 없는 자유님
http://www.soonil.org/board.php?board=darmaaudio&menu=05&tname=법문오디오&command=body&no=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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