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정사 세계종교평화포럼의 불편한 성찰 (불교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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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26-05-31 09:29 조회62회 댓글0건본문
- 조현성 기자
- 승인 2026.05.30 14:48
“평화를 말하기 전 전쟁에 협력한 역사부터 직시해야”

십자군전쟁에서 태평양전쟁까지, 종교는 과연 평화의 편에 서 있었을까.
30일 오대산 월정사 화엄루에서 열린 ‘2026 오대산 세계종교평화포럼’은 이 불편한 질문을 정면으로 꺼내 들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본사 월정사와 화엄선연구소, 아시아종교평화학회, 대전환포럼이 공동 주최한 포럼은 ‘전쟁의 시대, 월정사 세계종교학자들의 대화’가 주제였다.
포럼은 단순한 평화 선언의 자리가 아니었다. 종교가 왜 반복적으로 폭력의 편에 섰는지, 종교가 전쟁을 막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지, 그리고 평화는 어디에서 시작되는지를 묻는 집단적 자기반성의 장이었다.
발표자들은 십자군전쟁과 30년전쟁, 태평양전쟁, 로힝야 난민 사태 등을 통해 종교가 평화를 실현하기보다 국가주의와 민족주의, 제국주의의 언어로 전쟁을 정당화했던 역사부터 성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화엄선연구소장 향산 스님은 개회사를 통해서 “인류는 전쟁의 위험과 기후위기, 혐오와 단절이라는 복합적 위기 속에 살아가고 있다. 문명은 발전했지만 인간의 마음은 불안과 갈등 속에서 방황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스님은 “이러한 시대일수록 종교는 대립과 배제가 아닌 생명과 공존, 자비와 연대의 가치를 밝히는 등불이 돼야 한다. 대화와 경청은 평화의 시작이고, 나와 남이 둘이 아니라는 연기와 자비의 화엄정신이 오늘의 세계 속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고 했다.

■ 종교도 국가주의 앞에 무너졌다
이찬수 교수(가톨릭대)는 주제발표 '증오의 이유'에서 전쟁을 특정 국가나 지도자의 책임으로 환원할 수 없는 복합적 구조의 산물로 분석했다.
이 교수는 제1차 세계대전을 사례로 들며 민족주의와 제국주의, 국가주의, 경제적 이해관계, 구조적 폭력이 얽혀 전쟁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종교 역시 이러한 구조에서 자유롭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 정교회와 독일 개신교, 프랑스 가톨릭은 모두 같은 그리스도교 전통에 속해 있었지만 각국은 자신들의 전쟁을 ‘정당한 전쟁’이자 ‘거룩한 전쟁’으로 포장했다는 설명이다.
이 교수는 종교가 국가와 민족에 종속될 때 사랑과 자비는 사라지고 전쟁 수행 논리가 종교적 언어로 둔갑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현실 권력에 종속된 종교를 ‘표층종교’, 사랑과 자비를 실제 삶 속에서 구현하는 종교를 ‘심층종교’라고 구분했다.
이 교수는 르네 지라르의 욕망 이론을 활용해 인간의 욕망과 모방, 경쟁이 집단 갈등과 전쟁으로 확대되는 과정을 설명하며 “종교인이기 때문에 평화를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평화를 실천하는 이가 진정한 종교인”이라고 강조했다.
■ “십자군전쟁은 종교전쟁 아니었다”
홍미정 교수(단국대)는 '십자군 전쟁과 이슬람의 평화'를 통해서 십자군전쟁에 대한 통념을 뒤집었다.
홍 교수는 십자군전쟁이 단순한 기독교와 이슬람의 종교전쟁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당시 예루살렘과 시리아 지역에는 무슬림과 유대인뿐 아니라 그리스정교회, 시리아정교회, 아르메니아교회 등 다양한 종교 공동체가 공존하고 있었다. 십자군은 무슬림뿐 아니라 현지 기독교인과 유대인까지 학살하고 추방했다.
제4차 십자군이 예루살렘이 아닌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고 라틴제국을 건설한 사실은 ‘성지 회복’과 ‘기독교 형제 구원’이라는 명분의 허구성을 보여준다고 홍 교수는 분석했다.
홍 교수는 십자군전쟁이 종교전쟁이라기보다 정치적 야망과 지정학적 이해관계가 종교의 언어를 통해 포장된 패권전쟁이었다고 평가했다.
■ 종교 절대주의가 만든 파국, 30년전쟁
이병성 교수(연세대)는 '30년 전쟁'에서 유럽 30년전쟁을 통해 종교 절대주의가 낳은 비극을 조명했다.
1618년부터 1648년까지 이어진 30년전쟁은 가톨릭과 개신교 갈등에서 시작됐지만 점차 국가 이익과 권력 균형을 둘러싼 정치전쟁으로 변질됐다.
가장 상징적인 사례는 가톨릭 국가 프랑스가 같은 가톨릭 세력인 합스부르크에 맞서 개신교 국가들과 손을 잡은 장면이다.
이 교수는 이를 통해 전쟁의 성격이 종교에서 국가 이익으로 이동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그는 전쟁의 폐허 속에서 탄생한 베스트팔렌조약을 주목했다. 종교 관용과 국가 주권, 내정 불간섭, 다자 협상이라는 원칙은 이후 근대 국제질서의 토대가 됐다.
이 교수는 30년전쟁이 종교 절대주의와 광신주의가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낳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고 평가했다.
■ “악마의 교학” 전쟁 축복한 일본불교
원영상 교수(원광대)는 '지옥의 사자가 된 불교'를 통해서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불교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원 교수는 일본불교가 전쟁에 침묵한 것이 아니라 천황제 국가주의와 군국주의를 적극 지지하며 전쟁 수행에 협력했다고 지적했다.
정토진종은 아미타불 신앙과 천황제를 결합했고, 선종은 참선과 무사도, 죽음의 미학을 결합해 군국주의를 정당화했다는 것이다.
원 교수는 이를 ‘전시교학’이라고 규정하며 “악마의 교학”이라는 표현까지 사용했다.
그러면서 본래 깨달음과 해탈을 위한 불교 교리와 선어가 전쟁 수행 논리로 변질됐고, 일살다생과 무아, 수처작주 같은 불교 개념들이 살인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활용됐다고 비판했다.
원 교수는 불교가 국가권력과 결합할 때 언제든 전쟁의 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고 경고하며 불교의 본령인 아힘사와 불살생 정신의 회복을 강조했다.

■ “고통은 왜 선택적으로 기억되는가”
문유정 외래교수(동국대)는 '연기의 그늘'에서 로힝야 난민 문제를 통해 국제사회의 침묵을 비판했다. 그는 “고통이 기억될 권리는 누구에게나 동등한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가자지구의 비극은 세계적 관심을 받지만 로힝야 난민의 고통은 국제정치와 미디어의 프레임 밖으로 밀려나 있다는 것이다.
문 외래교수는 로힝야 사태를 단순한 민족 분쟁이 아니라 식민주의와 민족주의, 종교 편견, 국제정치, 디지털 혐오가 중첩된 ‘연기적 폭력 구조’로 분석했다.
특히 페이스북을 통한 혐오 콘텐츠 확산이 집단 폭력의 촉매가 됐다는 점을 지적하며 탐진치가 디지털 공간에서 집단적으로 증폭된 현대적 사례라고 설명했다.
문 외래교수는 주권과 국경 중심의 베스트팔렌 체제가 난민과 소수자의 고통을 보호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닌다고 비판하며 연기법과 보살도를 국제윤리의 대안으로 제시했다.
■ “전쟁은 결국 탐진치의 문제”
정상교 교수(금강대)는 주제발표 '전쟁, 욕계의 숙명인가'에서 전쟁의 근원을 인간 마음에서 찾았다.
정 교수는 전쟁을 영토나 자원, 종교, 민족,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탐욕과 분노, 무지라는 탐진치의 집단적 발현으로 규정했다.
그는 고대 인도와 중국, 그리스에서부터 세계대전과 현대 분쟁에 이르기까지 전쟁은 반복돼 왔으며 종교 역시 그 과정에서 전쟁을 막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정상교 교수는 평화를 단순히 전쟁 부재 상태로만 보지 않았다. 한국의 높은 자살률과 미국의 총기 사망 문제 역시 전쟁에 준하는 비평화 상태라고 해석했다.
따라서 평화는 단순히 총성이 멈춘 상태가 아니라 탐진치가 약화되고 불탐·부진·불치의 마음이 길러지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불교가 막연한 도덕론이 아니라 실제 마음을 관찰하고 전환하는 수행을 통해 평화를 구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기도가 총성이 되지 않도록”
발표자들이 다룬 시대와 사례는 달랐지만 결론은 하나의 지점으로 모였다.
십자군전쟁과 30년전쟁, 태평양전쟁, 로힝야 난민 사태에 이르기까지 종교는 평화를 말하면서도 반복적으로 전쟁의 편에 섰고, 때로는 침묵했으며, 때로는 폭력을 정당화했다.
포럼은 ‘기도가 총성이 되지 않도록’을 주제로 한 평화 메시지를 채택하며 마무리됐다.
포럼은 전쟁의 시대에 종교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묻기에 앞서 종교가 과거 무엇을 잘못했는지부터 돌아보자는 자기성찰의 자리였다. 평화를 말하기 위해서는 먼저 전쟁에 협력했던 역사를 직시해야 한다는 것. 그것이 이날 오대산 월정사에서 발표자들이 공통으로 던진 가장 불편하면서도 가장 절실한 질문이었다.
불교닷컴/조현성기자
출처 : https://www.bulkyo21.com/news/articleView.html?idxno=64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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