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지금은 여여(如如)하십니까.”
하얀 눈으로 온통 뒤덮인 오대산. 물소리도, 새소리도 멈춘 산사는 혜거 대종사의 마지막 길을 애도하듯 고요 속에 잠겼고, 오직 스님과 불자들의 염불 소리만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스님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기 위해 모인 사부대중은 혜거 대종사의 유지를 이어 ‘화엄세상 구현’에 앞장설 것을 다짐했다.
불교경전을 현대어로 번역하는 역경불사에 매진하고 강남 도심 포교를 이끌며 전법에 매진한 여산당 혜거 대종사의 49재가 12월 22일 오대산 월정사 적광전에서 엄수됐다.
49재에는 조계종 원로회의장 자광 대종사, 월정사 회주 현해 대종사, 월정사 선덕 각수·삼보·원행 스님, 주지 정념 스님, 포교원장 선업 스님, 상좌대표 무애 스님, 한마음선원 이사장 혜수 스님, 한마음선원 주지 혜솔 스님과 탄허불교문화재단, 금강선원 등 사부대중 300여 명이 동참했다.
월정사 무이 스님과 혜안 스님의 집전으로 49재가 거행되는 동안 동참대중은 헌화와 헌다를 한 뒤 삼배를 올리며 혜거 대종사의 원적을 추모했다.
문도대표로 월정사 회주 연암 현해 대종사는 생전 혜거 대종사와의 인연과 일화를 회고했다. 현해 대종사는 “오대산에 눈이 많이 온 걸 보니, 1968년 혜거 스님과 같이 출장 가면서 대관령 눈 속을 걸어간 일이 문득 생각난다. 당시 스님께선 오히려 저의 건강을 걱정하셨는데, 오늘에 이르니 스님은 흔적이 없고, 나만 이 자리에 섰다”며 “비록 스님께선 탈각하고 안 계시지만, 스님이 세우신 원력은 그대로다. 부디 속환사바하시어 금생에 하다만 원력불사를 이루길 바란다”고 밝혔다.
동참대중에게 일일이 감사를 전한 원로회의장 자광 대종사도 추모 시를 읊으며 “속환사바하여 전법도생해 주시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월정사 주지 정념 스님은 “간밤 눈이 내려 산중이 쓸쓸하기 그지없다. 혜거 대종사께서 홀연히 탈각하시고 사바를 하직하시니 이 산중도 슬픈 곡조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애도했다. 이어 스님은 “49재는 혜거 대종사의 크신 원력과 수행 정신을 마음 깊이 되새기는 시간”이라며 “탄허 스님을 뜻을 이어 역경불사와 도심포교에 매진했던 대종사의 원력을 후학들이 잘 계승하고 발전시켜 나가길 바란다”고 전했다.
상좌스님들은 대종사의 생전 가르침인 ‘화엄사상’ 계승을 약속했다. 상좌스님을 대표해 무애 스님은 “혜거 대종사께서는 많은 연구를 거듭해 ‘화엄경’의 요체를 간결하고 명확하게 정리한 ‘화엄경 소론찬요’를 발간하셨다”며 “스님의 원력대로 내년까지 26권 전권 발간을 마치겠다”고 강조했다.
49재는 금강선원 가가합창단의 ‘스승님의 노래’ ‘임종게’ 음성공양과 위패를 태우는 소지의식으로 마무리됐다.
앞서 혜거 대종사의 화엄경 소론찬요 22·23권 봉정식도 봉행했다. 현대인의 눈높이에 맞춘 간결하고 명확한 ‘화엄경’ 주석서는 내겠다는 혜거 대종사의 원력으로 2016년부터 출간이 시작됐다. 군더더기 없는 직역을 특징으로 하는 화엄경 소론찬요는 ‘화염경’의 묘체를 밝혀줄 최고의 주석서로 평가받는다. 전 26권 발간을 목표로 했으나, 5권을 남기고 대종사는 원적에 들었다. 이에 상좌스님들은 혜거 대종사의 49재에 맞춰 22권과 23권을 발간했고, 2025년 탄허 스님 열반일(음력 4월 24일)에 맞춰 나머지 3권도 추가 발간해, 전권 발간을 마칠 계획이다.
현대불교신문/ 김내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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