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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8장 사진으로 엮은 격동의 월정사 근현대사 (법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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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22-08-06 09:50 조회2,51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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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희찬 스님 탄신 100주년 맞아 ‘근대 오대산 삼대화상’ 발간
오대산 역사 생생히 포착한 사진과 관련 설명·자료 등도 수록 







눈 덮인 새하얀 도량에 60~70여명의 스님이 모여 있다. 첫 줄엔 안경 쓴 탄허 스님과 모자 쓴 일타 스님, 청담 스님과 만화 스님도 보인다. 그 뒷편으로 오조가사를 입은 월탄 스님이 있다. 언뜻 보면 평화로운 풍광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긴박한 사연이 숨어있다. ‘오대산 월정사 정화 기념사진’(1964), 이 한 장에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최근 민족사가 발간한 ‘근대 오대산 삼대화상.’
최근 민족사가 발간한 ‘근대 오대산 삼대화상.’

오대산의 근현대사 모습이 한 권의 책으로 고스란히 담겼다. 평창 월정사(주지 정념 스님)가 만화 스님 탄신 100주년을 기념해 최근 ‘근대 오대산 삼대화상’(민족사)을 내놨다. 삼대화상은 한암, 탄허, 만화 스님이다. 192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삼대화상의 주요 사진 458장을 정리했다.  

단순히 사진만 모은 건 아니다. 윤창화 민족사 대표와 중앙승가대 교수 자현 스님이 날카로운 안목으로 오대산의 사상·역사·문화를 깊이 있게 풀어내고 있다.

1964년 겨울 월정사는 비구와 대처간 쟁탈전이 극에 달하고 있었다. 1954년 시작된 정화운동으로 양측의 소송전이 시작된 것. 1차 소송은 비구측이 승소했다. 하지만 1964년 2차 소송에선 패소했다. 승소한 대처스님들은  그해 1월부터 비구측 대표 희찬 스님을 강하게 압박했다. 희찬 스님은 대처측 와운 스님에게 “하루만 시간을 더 달라”고 요청한 뒤 당시 상원사에서 좌선하고 있던 월탄 스님을 찾았다. 월탄 스님은 1960년 11월24일 일어난 ‘대법원 6비구 할복 사건’의 주인공 중 한 명이다. 희찬 스님 얘기를 전해 들은 월탄 스님은 택시를 타고 급히 서울로 향했고, 총무원장 법용, 종회의장 청담, 교무부장 행원 스님에게 긴박한 상황을 전했다. 

비구측 스님들은 마침 제1회 조계종 전국승니특별강습회로 동국대에 모여 있던 참이었다. 그날 밤 비구스님 150명을 태운 버스 3대가 밤새 달려 월정사에 도착했다. 사찰을 접수하고자 월정사를 찾은 대처스님들 하룻 밤사이 6~7배로 늘어난 비구측 스님들과 맞닥뜨리고 당황한다. 이들은 한나절 가량 충돌했고 대처측 스님들이 발길을 돌리면서 상황은 마무리 됐다.

비구측 스님들은 혹여나 돌발 상황을 대비해 일주일 가량 더 머물기로 했고, 동국대에서 시작된 강습회 무대가 월정사로 옮겨져 계속됐다. 당시 강습회에서 탄허 스님은 불교를, 일타 스님은 계율을, 청담 스님은 선학을, 서옹 스님은 선학 사상을, 관응 스님은 조계종사를 강의했다. 눈 덮인 새하얀 도량에서 찍힌 이 사진은 길고 긴 격동 끝에 남은 한 장면이다. 

한암, 탄허 스님을 이은 만화스님(1922∼1983)은 월정사 중창을 넘어 한암스님과 탄허스님의 가르침을 계승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민족사]
한암, 탄허 스님을 이은 만화스님(1922∼1983)은 월정사 중창을 넘어 한암스님과 탄허스님의 가르침을 계승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민족사]

만화 스님(1922∼1983)의 사진 뒤로 하나둘씩 늘어나는 전각을 세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월정사는 6·25전쟁 당시 전각이 모두 불탔다. 하지만 만화 스님의 원력으로 오대산은 제 모습을 빠르게 찾았다. 실제 사진에 담긴 만화 스님은 허름한 작업복 차림으로 도량과 암자를 직접 수리하거나 상량문을 쓰고, 대웅전 위에 올릴 기와를 위해 여주 기와공장을 답사하고 있었다. 월정사 주지 정념 스님은 책 서문에서 “한국전쟁이 끝나고 빠르게 복구되지 못한 유점사, 건봉사와 달리, 월정사와 오대산이 재건되고 안정될 수 있었던 건 만화 스님 덕분”이라며 “이런 점에서 만화 스님은 현대 오대산의 중창주”라고 밝혔다.

근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조계종 종정을 4차례나 지낸 한국 대표 선승 조계종 초대종정 한암 스님(1876∼1951). 일제의 친일 회유를 거부한 채 오대산 상원사에서 한국 선(禪)의 중흥과 발전에 전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민족사]
근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조계종 종정을 4차례나 지낸 한국 대표 선승 조계종 초대종정 한암 스님(1876∼1951). 일제의 친일 회유를 거부한 채 오대산 상원사에서 한국 선(禪)의 중흥과 발전에 전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민족사]

자료들이 차곡차곡 모이면서 2016년 9월 불거졌던 논란도 자연스레 해소됐다. 앞서 경허연구소는 “한암 스님으로 소개된 사진 속 인물은 사실 경허 스님”이라고 주장을 했지만 논란 속 주인공과 거의 같은 모습의 사진이 이번에 새롭게 공개된 것이다. 자현 스님은 7월19일 인사동에서 열린 출판 간담회에서 “논란이 된 인물과 이목구비·자세가 매우 흡사한 새로운 사진을 발견했다. 이 사진 뒤엔 상원사 석탑이 있다. 사진 속 주인공이 한암 스님이라는 사실이 명백해진 것”이라고 말했다. 

한암을 이은 탄허 스님(1913∼1983)는 유불도(儒佛道) 삼교에 능통했고 오대산 수도원을 세워 인재양성에 힘썼다. '신화엄경합론', '사교' 등 한국 불교 승가교육의 근간이 되는 전통 강원의 교재들을 완역·간행했다. [민족사]
한암을 이은 탄허 스님(1913∼1983)는 유불도(儒佛道) 삼교에 능통했고 오대산 수도원을 세워 인재양성에 힘썼다. '신화엄경합론', '사교' 등 한국 불교 승가교육의 근간이 되는 전통 강원의 교재들을 완역·간행했다. [민족사]

탄허 스님이 사진을 찍을 때 나오는 습관도 발견했다. 윤창화 대표는 “안경을 쓰고 안짱다리를 하고 있는 분이 탄허 스님”이라며 “탄허 스님은 앉아서 사진을 찍을 때 발끝을 안쪽으로 향하게 했다. 입은 일자로 다무는 것을 좋아하신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외에도 사진과 연관된 근대의 신문, 잡지, 책표지, 그림 등을 함께 담아 오대산 근현대사를 '퍼즐 맞추듯’ 빈틈없이 채웠다. 탄허 스님의 수도원 전모를 알 수 있는 신문기사의 수도원생 광고 모습, 동국역경원 연수생 입소식, 방산굴, 여석회, 화엄법회, 조지훈과 월정사에 담긴 일화도 재밌다. 조선불교근로보국대 월정사대, 월정사 축구부, 월정사 강원 사진은 이번에 처음으로 공개됐다. 

7월19일 서울 인사동에서 열린 ‘근대 오대산 삼대화상’ 출판 간담회. 원주 성불원장 현각 스님과 중앙승가대 교수 자현 스님, 월정사 향산 스님, 윤창화 민족사 대표가 책이 발간된 취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7월19일 서울 인사동에서 열린 ‘근대 오대산 삼대화상’ 출판 간담회. 원주 성불원장 현각 스님과 중앙승가대 교수 자현 스님, 월정사 향산 스님, 윤창화 민족사 대표가 책이 발간된 취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7월19일 서울 인사동에서 열린 ‘근대 오대산 삼대화상’ 출판 간담회. 원주 성불원장 현각 스님과 중앙승가대 교수 자현 스님, 월정사 향산 스님, 윤창화 민족사 대표가 책이 발간된 취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정주연 기자 jeongjy@beopbo.com

[1642호 / 2022년 7월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출처 : 법보신문(http://www.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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