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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당 지옥도 내 마음대로…우주는 내가 만드는 것 (9월9일-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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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6-09-09 16:37 조회6,650회 댓글0건

본문

불교신문 1980년 3월23일자

‘이 달의 설법’ 삶과 죽음

   
어려서부터 유학을 공부했던 탄허스님은 출가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세수 24세 때부터 승려연합수련소에서 중강(中講)으로 <금강경(金剛經)>, <기신론(起信論)>, <범망경(梵網經)> 등을 강의했다. 이후 열반에 들기까지 많은 후학을 양성하고 집필을 멈추지 않았다.

도인은 굳이 오래 살려 하지 않아

죽는 것을 헌 옷 벗는 것이나

한가지로 생각하니 때 묻은 옷을

오래 입으려고 하겠는가 

 

한반도의 젊은이라면 3천만

5천만의 잘못을 나의 잘못으로

즉 나 하나의 잘못은 3천만

5천만에 영향 미친다 생각해야

 

무슨 문제에 부딪히더라도

당황 않도록 준비하며 살 일 

이 세상에 사람으로 태어난 자(者)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두말 할 것도 없이 삶과 죽음일 것이다. 즉 생사(生死) 문제야 말로 그 무엇보다 앞선 궁극적인, 그리고 이 세상에서 몸을 담고 살아가는 동안 기필코 풀어내야할 중심문제이다.

인간의 생사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종교가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우리 불교에서는 생사문제를 쉽게 말해서 이렇게 해결한다. 즉 마음에 생사가 없다고. 부연하면, 마음이란 그것이 나온 구녁이 없기 때문에 죽는 것 또한 없다. 본디 마음이 나온 곳이 없음을 확연히 갈파한 것을 ‘도통(道通)했다’고 말한다. 우리 자신의 어디든 찾아보라. 마음이 나온(生) 구녁이 있는지. 따라서 나온 구녁이 없으므로 죽는 구녁도 없다. 그러니까 도(道)가 철저히 깊은 사람은 이 조그만 몸뚱아리를 가지고도 얼마든지 살수가 있다. 그렇지만 어린 중생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며 천년만년 살고 싶어 하지, 도인·성인은 굳이 오래 살려 하지 않는다. 죽는 것을 헌 옷 벗는 것이나 한가지로 생각하고 있으므로 굳이 때 묻은 옷을 오래 입으려고 하지 않는다. 오래 오래 살고 싶다는 것은 뭇 중생들의 우견(愚見)일 따름이다.

도를 통한 사람은 몸뚱아리를 그림자로 밖에 보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삶은 간밤에 꿈꾸고 다닌 것이나 같이 생각한다고 할까. 간밤 꿈꾸고 다닌 사람이 꿈을 깨고 나면 꿈속에선 무언가 분명히 있었긴 있었으나 헛것이듯 그렇게 삶을 본다. 이와 같은 것이어서 이 육신을 굳이 오래 가지고 있으려 하지 않는다. 벗으려고 들면 향 한 대 피워놓고 향 타기 전에 마음대로 갈(죽음) 수도 있다.

   
불교신문 전신 대한불교 1980년3월23일자(824호) 2면에 실린 탄허스님 ‘이달의 설법’.

일반적으로 중생에겐 나서 멸함이 있고(生住異滅), 몸뚱이엔 나고 죽음(生老病死)이 있으며, 1년에 봄·여름·가을·겨울(春夏秋冬)이, 세계엔 일었다가 없어짐(成住壞空)이 있으나 앞서 말한 대로 도인(道人)에겐 생사가 붙지 않는다. 혹자는 그 도인도 죽는데 어찌 생사가 없느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겉을 보고 하는 소리일 따름이다.

옷 벗는 것 보고 죽는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이 ‘옷’을 자기 ‘몸’으로 안다. 그러니까 ‘죽는다’. 그러면 도인이나 성인은 무엇을 자기 몸으로 생각하는 것일까. 몸 밖의 몸, 육신 밖의 육체를 지배하는 정신, 좀 어렵게 말하면 시공이 끊어진 자리, 그걸 자기 몸으로 안다. 시공(時空)이 끊어진 자리란 죽으나 사나 똑같은 자리, 이 몸을 벗으나 안 벗으나 똑같은 지리, 우주 생기기 전의 시공이 끊어진 자리, 생사가 붙지 않는 자리란 뜻이다.

부처란 바로 이 ‘자리’를 가르쳐주기 위해 오셨다. 이 세상의 한 마당 삶이 ‘꿈’이란 걸 가르쳐주기 위해서 온 것이다. 더웁고 춥고 괴로운 경험을 꿈속에서 했을 것이다. 꿈을 만든 이 육신이 일점도 안 되는 공간에 누워 10분도 안 되는 시간의 꿈속에서 몇백년을 산다. 그러고 보면 우주의 주체가 ‘나’라는 것을 알 것이다. 곧 ‘내’가 우주를 만드는 것이다. 우주 속에서 내가 나온 것이 아니다. 세간(世間)의 어리석은 이들은 꿈만 꿈인 줄 안다. 현실 이것도 꿈일 줄 모르고.

다시 말하거니와 성인이 도통했다는 것은 이 현실을 간밤의 꿈으로 보아버린걸 말한다. 우리는 간밤 꿈만 꿈으로 보고, 현실로 보니까 몇백년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고 싶다며 아등바등 집착하게 되는 것이다. 성인의 눈엔 현실이 꿈, 즉 환상이니까 집착이 없다. 그러니까 천당 지옥을 자기 마음대로 한다.

이 정도로 말해 놓고 나서 우리의 삶이 영원하다면 영원하고 찰나로 보면 찰나일수 있다고 말하면 좀 수긍이 될지 모르겠다. 요컨대, 우주창조주, 즉 하느님이라는 건 우주 생기기 전의 면목을 타파한 걸 ‘하느님’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하느님이란 하늘 어느 한 구석에 담요를 깔고 앉아 있는 어떤 실재인물이 아니란 말도 이해가 될 것이다. 자, 그럼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삶을 살아가야할까.

내 얘기의 초점은 여기에 있다. 한반도에 태어난 젊은이라면 3000만, 5000만의 잘못을 나의 잘못으로, 즉 나 하나의 잘못은 3000만, 5000만명에게 영향이 미친다고 생각하고 나중에 어른이 되어 무슨 문제에 부딪히더라도 당황하지 않는 준비를 갖추며 살 일이다. 청년은 그런 자신을 길러야 한다.

■ 탄허스님은…

   
서울 안암동 대원암에서의 탄허스님.

1913년 음력 1월15일 전북 김제에서 독립운동가인 율재(栗齋) 김홍규(金洪奎) 선생의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속명은 김택(金鐸). 본관(本貫)은 경주(慶州)다. 자(字)는 간산(艮山). 법명은 택성(宅成 또는 鐸聲). 법호는 탄허(呑虛).

어려서부터 10여 년간 부친과 조부에게 사서삼경 등 유학을 공부하며 학문의 경지를 넓혔다. 부친이 독립운동을 하다 체포되어 1919년부터 1924년까지 옥바라지를 했다. 17세에 기호학파의 이극종(李克宗) 선생에게 각종 경서(經書)를 배웠다. 20세 즈음 ‘도(道)란 무엇인가?’에 관심을 갖기 시작, 한암(漢岩)스님에게 서신을 보냈다. 이후 한암스님과 20여 통의 서신을 주고 받았으며, 1934년 음력 9월5일 22세에 오대산 상원사로 입산했다. 한암스님을 은사로 구족계를 받은 후 3년간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는 묵언 수행을 했다.

1936년 유점사 건봉사 월정사 등 ‘강원도 3본산’이 상원사에 설치한 승려연합수련소에서 중강(中講)으로 <금강경> <기신론> <범망경> 등을 강의했다. 세수 24세의 약관으로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스님의 실력과 신심을 확인할 수 있는 일화이다. 1939년(27세)에는 연합수련소에서 <화엄경>과 <화엄론>을 강의했다. 11개월간의 강의가 끝난 후 한암스님은 탄허스님에게 <신화엄경합론(新華嚴經合論)>에 대한 현토 간행을 유촉했으며, 이후 스님은 은사 스님의 뜻을 받들기 위해 평생 노력했다.

스님은 교학뿐 아니라 참선 수행도 깊이 했다. 은사인 한암스님을 모시고 15년 동안 선원에서 좌선 수행을 했으며, 이 과정에서 은사의 권유로 <전등록(傳燈錄)>, <선문염송(禪門拈頌)>, 선어록 등을 익혔다.

1955년 조계종 강원도 종무원장 겸 월정사 조실로 추대된 후 후학 양성에 적극 나섰다. 1956년 4월 오대산에 5년 과정의 수도원을 세웠다. 강원 대교과 졸업자나 대졸자, 또는 유가의 사서(四書)를 마친 자는 출ㆍ재가를 막론하고 공부할 수 있었다. 아쉽게도 오대산 수도원은 정화불사로 인한 재정난 때문에 1958년 문을 닫고 말았으며, 스님은 남은 제자들과 영은사로 자리를 옮겨 1962년까지 연찬을 계속했다. 이후 1962년 월정사 주지, 1965년 동국대 대학선원장, 1966년 동국역경원 역장장, 1975년 동국학원 이사 등을 역임했다. 스승의 유촉에 따른 <신화엄경합론> 원고를 1967년에 마무리 지었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1975년 제3회 인촌문화상과 조계종 종정상을 동시에 받았다.

인재양성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인 탄허스님은 수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스님 가운데는 입적한 희찬(전 월정사 회주)·운학(전 동국대 교수)스님과 성파(전 통도사 주지)·혜거(금강선원장)·명성(전국비구니회장)·성일(화성 신흥사)스님 등이 탄허스님 회상에서 공부했다. 입적한 통광스님과 각성·무비스님이 전강제자이다. 재가자로는 박성배 뉴욕 주립대 교수, 박완일 전 조계종 전국신도회장과 고(故) 서경수 전 동국대 교수, 여익구 전 민중불교운동연합 의장 등이 있다. 이밖에도 고(故) 조중훈 한진그룹 회장, 고은 시인, 황석영 소설가도 스님과 잦은 교류로 친분이 깊었다.

노년까지 매일 원고를 집필하는 것을 거르지 않던 스님은 열반에 들기 일주일 전까지도 마지막 교정에 혼신을 다했다. 스님은 1983년 음력 4월24일(양력 6월5일) 월정사 방산굴(方山窟)에서 ‘일체무언(一切無言)’이란 임종게를 남기고 고요히 원적에 들었다. 법랍 49세, 세수 71세.


기사원문보기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15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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