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개혁 일등공신' 석전·한암과 선운사·월정사(연합뉴스) 2014.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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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4-04-11 10:24 조회8,190회 댓글0건본문
<'불교개혁 일등공신' 석전·한암과 선운사·월정사>
석전·한암 학술대회 여는 선운사·월정사 주지스님
(서울=연합뉴스) 공병설 기자 = 선운사와 월정사는 오는 18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한국불교학회와 공동으로 학술대회를 열어 석전(石顚·1870∼1948)·한암(漢岩·1876∼1951) 스님의 사상을 집중 조명한다. 사진은 선운사 주지 법만 스님(오른쪽)과 월정사 주지 정념 스님. 2014.4.10 <<문화부 기사 참조>> kong@yna.co.kr |
법맥 잇는 두 사찰, 석전·한암 사상 조명 공동학술대회
(서울=연합뉴스) 공병설 기자 = 석전(石顚·1870∼1948) 스님과 한암(漢岩·1876∼1951) 스님은 한국불교의 초석을 다진 이들이다.
석전은 경전과 교리를 중시하는 교학의 대표적 스님이었고 한암은 선정(禪定)을 통한 깨달음에 집중하는 선종의 대표 주자였다.
계율과 윤리를 중요하게 여겼던 이들은 일제의 대처승 정책 등에 맞서 혼탁해지는 불교의 기강과 문화를 바로잡아 현대적 불교의 기틀을 세웠다.
각각 석전과 한암의 법맥을 잇는 사찰인 선운사(주지 법만 스님)와 월정사(주지 정념 스님)가 손을 맞잡고 이들의 사상과 업적을 집중 조명한다.
선운사와 월정사는 오는 18일 서울 견지동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한국불교학회와 공동으로 '석전과 한암, 한국불교의 시대정신을 말하다'란 학술대회를 연다.
조성택 고려대 교수와 윤창화 민족사 대표 등 전문가 10명이 석전과 한암의 시대정신, 한국불교를 청정승가로 지켜내려 한 이들의 노력을 다각도로 분석한다.
한암 스님은 당시 최고의 선사로 윤리적 바탕 위에서 선 수행으로 평생을 살았고, '박한영'이란 속명으로 알려진 석전은 최고의 석학이자 교학의 대종사였다.
석전은 1929년 조선불교 선교양종에서 7인의 종정 중 한 명으로 추대된 데 이어 1945년 해방 후 초대교정에 올랐다. 한암은 1929년, 1935년, 1941년, 1948년 4차례 종정으로 추대됐다.
선·교 양종에서 가장 출중한 인물이었던 이들은 일본불교의 대처와 육식 관행을 보급하려는 일제에 강력히 저항했다. 오늘날 조계종이 비구승가로 남게 된 데는 석전과 한암의 기여가 결정적이었다.
당시에는 만해 한용운이 총독부에 승려의 결혼을 허용하라고 건의할 정도였다.
1925년 조선불교 중앙교무원 자료를 보면, 승려의 3분의 2가량이 결혼한 것으로 돼 있다. 불교수행 전통의 명맥이 끊길지도 모르는 큰 위기였다.
이런 상황에서 석전 스님은 '계학약전'이라는 교재를 펴내는 등 승려교육을 통한 청정성 회복 운동에 나섰다.
조선 최고의 지식인이었던 석전은 불교뿐 아니라 각계에 많은 제자를 남겼다. 대표적인 이들이 청담·운허·운성·운기·남곡 스님과 육당 최남선, 위당 정인보, 미당 서정주, 이광수, 신석정 등이었다.
최남선은 그를 두고 "석전 스승은 모르는 게 없을 만큼 박식했다"고 했고, 정인보도 "한영(석전의 속명)과 함께 길을 가면 어디를 가도 모르는 것이 없다"고 감탄했다.
한암 스님은 1925년 "천고에 자취를 감추는 학이 될지언정 봄날에 말 잘하는 앵무새 재주는 배우지 않겠다"며 강남 봉은사 조실 자리를 박차고 나와 오대산으로 들어갔다.
계율정신을 강조한 승가오칙을 몸소 실천해 입적할 때까지 27년간 거의 산문을 나서지 않았다.
1951년 1·4 후퇴 직전 국군이 오대산의 모든 절을 태웠을 때 한암이 주석하던 상원사만은 화를 면했다. 가사와 장삼을 갈아입고 법당에 좌정한 채 "불을 지르라"고 호령하는 한암 스님의 기에 눌린 군인들이 법당 문짝만 떼어 불사르고 갔다.
석전 스님의 법맥은 남곡-태허를 거쳐 선운사 주지 법만(53) 스님으로 연결되고, 한암 스님은 탄허-만화를 거쳐 월정사 주지 정념(58) 스님으로 이어진다.
선운사와 월정사는 문도회를 중심으로 석전과 한암의 정신을 기리기 위한 사업에 힘을 쏟고 있다.
이번 학술대회에서 주제발표에 나서는 월정사 교무국장 자현 스님은 "종교는 윤리가 가장 엄격해야 하는 집단인데도 조계종은 윤리보다 수행을 중시하는 풍조가 있다. 윤리를 겸비하지 않으면 수행 역시 정당하게 인정받을 수 없다"며 "석암과 한암 스님의 사상은 갈수록 윤리의식이 희박해지는 한국불교와 현대인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다"고 말했다.
k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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