쭉쭉 뻗은 은행나무 숲, 멋지긴 한데...(오마의뉴스)2012.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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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2-10-16 09:23 조회12,041회 댓글0건본문
쭉쭉 뻗은 은행나무 숲, 멋지긴 한데...
[문수성지 오대산의 단풍 구경 ①] 오대산 두로령 넘는 길12.10.15 14:42
최종 업데이트 12.10.15 14:42 이상기(skrie)홍천군 내면 은행나무 숲
오대산의 가을 단풍이 한창이다. '산내 들내 길 찾아' 회원 일행은 단풍도 보고 문화유산도 탐사할 겸 오대산을 찾았다. 오대산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에 있는 월정사로 들어가 상원사까지 옛길을 걸어간 다음 비로봉(1563m)에 오른다. 그러나 우리는 이번에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길을 택했다. 홍천군 내면 명개리의 국립공원 오대산 탐방지원센터를 출발 임도를 따라 두로령을 넘어가기로 했다. 두로령을 넘으면 북대 미륵암이 있고, 거기서 다시 상원사를 거쳐 월정사까지 걸을 예정이다.
그러므로 이번 여행의 목적은 오대산 등산이 아니라 오대산 옛길 답사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산내 들내 길 찾아'는 한 달에 한 번 옛길을 답사하며 선인들의 발자취를 찾아보고 옛 이야기도 정리한다. 최근에 갔던 길이 울진 금강소나무숲길, 광릉 국립수목원길, 백룡동굴과 칠족령길 등이다. 오대산으로 가는 길에 우리는 잠시 홍천군 내면 광원리에 있는 은행나무 숲에 들린다. 달둔교 앞에서 버스를 내린 다음 다리를 건너 계방천을 따라 올라가면 다리골이 나온다.
내린천의 지류인 계방천을 따라 봄꽃보다 아름답다는 단풍이 내려 앉아 가을이 깊어간다. 다리골에 있는 홍천 은행나무 숲은 부지가 4만여 평에 이르고, 2000여 그루의 은행나무가 심어져 있다. 5m 간격으로 줄을 맞춰 심어 마치 가로수 터널을 연상케 한다. 우리는 이곳에서 가을 정취를 만끽한다. 가을색은 노랑, 갈색, 빨강이 있는데, 노랑에서 출발해 빨강으로 절정을 이뤘다 갈색으로 스러져 가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면 이곳 은행나무 숲은 가을 단풍의 출발을 알리는 전령사 구실을 한다고 생각하면 좋겠다.
수령이 30년이 되었다고 하는데 아직은 나무가 그렇게 굵지는 않다. 또 상하로 죽죽 뻗는 수나무만 심어져 운치가 덜한 편이다. 은행은 암나무가 있어야 가지를 넓게 뻗어 풍성한 맛이 있는데 말이다. 또 은행나무의 열매를 감싸고 있는 질척한 과육이 땅에 떨어져 냄새를 풍겨야 진정한 가을 맛을 느낄 수 있는데 아쉽다. 이곳 은행나무 숲은 시각적인 관광에 중점을 두다 보니 조금은 인위적인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자연스런 은행나무 숲이 그립다.
우리는 산책도 하고 사진도 찍고 맑은 공기도 마시면서 은행나무 숲을 즐긴다. 바닥에는 은행나무 잎이 많이 떨어져 있다. 그래선지 바닥이 푹신하다. 최근에 아침 최저기온이 영도 가까이 내려가면서 은행나무 잎도 더 노래지고 낙엽도 늘어나는 것 같다. 오전 8시 40분 밖에는 안 된 아침 이른 시간이라 아직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은행나무 숲을 나오면서 보니 벌써 장사들은 영업을 시작했다. 차가운 기온에 따뜻한 커피를 한 잔 마시는 사람도 있고, 버섯과 다래 등 산에서 채취한 임산물을 판매하는 사람도 눈에 띈다. 그 중에는 수염을 멋지게 기르고 장사를 하는 국가유공자 박상영씨도 있다. 그는 아내와 함께 장사를 막 준비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삼봉약수와 칡소폭포도 가깝고 해서 주변으로 펜션과 카페 등이 많이 생기고 있다. 그들 덕에 봄에서 가을까지는 이들 노점상들이 꽤나 번창하고 있다.
홍천군 내면 쪽의 오대산 임도
여기서 다시 버스를 타고 구룡령 쪽으로 가다 오른쪽 오대산 방향으로 들어서니 비포장길이다. 한 5분쯤 달렸을까, 국립공원 오대산 내면 탐방지원센터가 나온다. 차는 여기까지만 운행을 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차에서 내려 준비운동을 한다. 그리고 차단기가 내려진 입구를 지나 오늘 답사의 정점인 두로령(1310m)으로 향한다. 이곳에서부터 두로령까지 10.2㎞, 두로령에서 상원사까지 6.6㎞, 상원사에서 월정사까지 8.3㎞를 걸을 예정이다. 그러므로 이번 옛길 답사는 도상거리가 25㎞가 넘는 꽤나 긴 코스다.
임도는 계류를 오른쪽으로 끼고 나 있다. 계류를 따라 단풍이 곱게 물들었다. 평탄한 길과 단풍, 좋은 길벗들, 이번 답사는 여느 때보다 즐거울 것 같다. 길은 트럭이나 RV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좋은 편이어서 힘도 하나 들지 않는다. 그냥 자연과 단풍을 완상하며 걷기만 하면 된다. 지팡이를 짚고, 등짐을 지고, 사진기를 들고 회원들 각자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가을 단풍을 즐긴다. 낙엽을 밟으면서 느끼는 또 다른 재미는 덤이다.
한 시간쯤 걸었을까, 자기 짐이 무거우니 풀고 가자는 회원이 있다. 나같이 비쩍 마른 사람들은 힘도 하나 안 드는데, 몸무게가 좀 나가는 회원들은 얼굴에 땀이 꽤나 많이 흐른다. 그 회원 배낭에서 막걸리와 한우고기로 만든 기가 막힌 안주가 나온다. 막걸리 한 잔을 시원하게 마시고 안주를 소금에 찍어 씹으니 맛이 기가 막히다. 산행을 하거나 답사를 하면서 자연유산과 문화유산을 보는 것도 좋지만, 이처럼 입을 즐겁게 하고 귀를 즐겁게 하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산은 오를수록 단풍이 곱지만 계류를 떠나니 대비의 아름다움은 덜한 편이다. 그 대신 능선의 이쪽과 저쪽으로 벌겋게 피어오르는 유장한 산줄기를 볼 수 있다. 또 이미 모든 잎을 다 떨쳐버리고 나목의 상태가 된 성급한 녀석들도 볼 수 있다. 이제 저 멀리 두로령의 산등성이가 보인다. 우리는 삼삼오오 짝을 지어 이야기를 나누며 산길을 오른다. 그래도 부부가 함께 가는 모습이 가장 좋아 보인다.
두로령의 이쪽과 저쪽
두로령에 오르기 전인 오전 11시 30분쯤 점심을 먹는다. 오전 6시에 출발을 했으니 회원들 모두 5시나 5시 30분경 이른 아침을 먹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을의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단풍나무 숲 속에서 먹는 점심도 역시 맛이 있다. 이런 곳에서 먹는 점심은 맛뿐 아니라 멋까지 있다. 또 부지런한 회원들은 그 바쁜 가운데도 이것저것 많이 준비를 해 왔다.
점심을 먹고 다시 출발해 오후 1시 10분경 두로령 정상에 도착한다. 우리가 내면 탐방지원센터를 오전 9시 30분에 출발했으니 두로령 정상까지 점심식사를 포함해 3시간 40분 정도 걸린 것이다. 두로령 정상에는 백두대간 두로령이라는 커다란 표지석이 서 있다. 그러나 정확히 말해 두로령으로 백두대간이 지나가지는 않는다. 백두대간은 두로령의 동북쪽에 있는 두로봉(1422m) 정상으로 지나간다. 2011년 6월 23일에 세워 아직도 뽀얀 두로령 표지석에는 위도와 경도를 적어 놓았다. 이곳은 GPS 상으로 북위 37°48′ 동경 128°34′이다.
두로령에서 우리는 지나온 홍천군 내면 쪽을 내려다보고 앞으로 나갈 평창군 진부면 쪽을 살펴본다. 이곳에서 북동쪽 두로봉 까지는 1.6㎞고, 서남쪽 북대 미륵암까지는 2.6㎞이다. 우리의 일차 목표는 나옹대라고도 불리는 북대 미륵암이다. 북대 미륵암 쪽으로 내려다 본 오대산의 단풍은 정말 절경이다. 붉은색과 갈색이 내게 손짓하는 듯하다. 지금 설악산과 오대산의 단풍이 산중턱까지 내려간 것 같다.
북대 미륵암의 나옹화상과 보살의 정취
두로령에서 북대 미륵암으로 가는 길은 내리막이다. 20분 정도 걸으니 미륵암이 나온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인데, 겨울 추위 때문인지 알루미늄 새시로 문을 해 달았다. 이곳은 오대산의 다섯 대(臺)중 하나로 북쪽에 있어 북대(北臺)라 부른다. 오대산은 5개의 대가 있어 오대산이라 불려지게 되었다. 이들 오대(五臺)는 동대 관음암, 서대 수정암, 남대 지장암, 북대 미륵암, 중대 사자암이다.
북대는 또한 나한도량과 나옹대로도 불린다. 이곳이 나한도량으로 불리게 된 데는 다음과 같은 연유가 있다.
통일신라시대 보천(寶川)이라는 스님이 있었다. 그가 오대산에서 수행할 때 북대 상왕산(象王山)에 석가여래와 함께 오백나한이 나타난 것을 보았다고 한다. 임종에 이르러 그는 제자들을 불러놓고 북대 남쪽에 나한당(羅漢堂)을 짓고 석가여래와 오백나한을 그려 봉안하고 예불에 전념할 것을 부탁했다. 낮에는 <불보은경(佛報恩經)>과 <열반경(涅槃經)>을 읽고, 밤에는 열반예참(涅槃禮懺)을 행하도록 하라고 유언했다고 한다. 이때부터 오대산 북대 미륵암이 나한신앙의 성지가 되었다.
이곳은 또한 고려시대 나옹화상(懶翁和尙: 1320-1376) 혜근(慧勤)이 수행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나옹화상은 경상도 영해부(寧海府) 사람으로 20세 되던 해 친구의 죽음에 의문을 느껴 공덕산 묘적암으로 출가한다. 1344년 양주 회암사로 가 4년 동안 공부하여 큰 깨달음을 얻고 1347년 중국으로 떠난다. 1348년 나옹화상은 대도(大都)의 법원사(法源寺)에서 지공(指空)대화상을 만나 1350년 3월까지 공부한다. 그리고 제방의 절을 순례하며 선지식과 게송을 주고받으며 법거량을 한다.
10년 공부를 마친 나옹화상은 1358년 3월 지공화상과 이별하고 요양(遼陽)을 거쳐 고려로 다시 돌아온다. 그는 평양과 동해 등을 지나며 설법하다 1360년 가을 오대산에 들어가 상두암(象頭菴)에 주석하였다. 이 상두암이 바로 오대산 북대 미륵암이다. 이때 나옹화상은 용문산에 있던 태고화상 보우와 서신왕래를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때 지은 게송이 다음과 같이 전해진다.
임제의 한 종지가 땅에 떨어지려 할 때 臨濟一宗當落地
공중에서 고담 노옹이 불쑥 튀어 나오더니 空中突出古潭翁
세 척의 취모검을 번쩍 치켜들고 把將三尺吹毛劍
정령들 모두 베어 자취를 완전히 없애버렸네. 斬盡精靈永沒蹤
여기서 임제는 중국 남종선의 한 분파인 임제종을 개창한 스님이고, 고담 노옹은 당대 고려의 최고 선지식이었던 태고화상을 말한다. 취모검은 솜털까지 잘라내는 예리한 칼로, 중생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또는 큰 결단을 내리기 위해 선지식들이 사용한다. 그러므로 이 게송은 태고화상에 대한 상찬이다.
미륵암 바깥벽에는 나한전, 산신전, 나옹전 복원불사를 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상왕봉(1491m) 아래 오대산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절이라서 그런지 찾는 사람도 적고 시주도 적은가 보다. 그렇지만 이곳에서는 현재 그러한 원을 세우고 불사를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불단 옆에는 <극락세계 유람경>이라는 책자가 놓여 있다. 그 아래에는 보시하는 것이니 모셔가라는 친절한 안내문도 보인다.
책자를 하나 들고 나오는데, 보살이 봉지를 하나 건넨다. 센베이 과자와 초콜릿이 들어 있다. 시주를 조금 밖에 못했는데, 얻어가는 것이 너무 많아 죄송한 마음이다. 산사에 가면 이처럼 마음이 풍성해지는 때가 많다. 나옹화상의 흔적도 찾아보고, 좋은 책도 하나 얻고, 따뜻한 보살님의 마음도 얻었으니 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걷고 때로 얻으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논어의 첫 구절을 이처럼 살짝 바꿔 보았다. 10월 13일 단풍이 한창인 북대 미륵암에서 나는 너무나 많은 것을 얻었다.
▲ 내면 탐방지원센터에서 상원사 탐방지원센터까지 답사 코스 | |
ⓒ 이상기 |
오대산의 가을 단풍이 한창이다. '산내 들내 길 찾아' 회원 일행은 단풍도 보고 문화유산도 탐사할 겸 오대산을 찾았다. 오대산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에 있는 월정사로 들어가 상원사까지 옛길을 걸어간 다음 비로봉(1563m)에 오른다. 그러나 우리는 이번에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길을 택했다. 홍천군 내면 명개리의 국립공원 오대산 탐방지원센터를 출발 임도를 따라 두로령을 넘어가기로 했다. 두로령을 넘으면 북대 미륵암이 있고, 거기서 다시 상원사를 거쳐 월정사까지 걸을 예정이다.
그러므로 이번 여행의 목적은 오대산 등산이 아니라 오대산 옛길 답사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산내 들내 길 찾아'는 한 달에 한 번 옛길을 답사하며 선인들의 발자취를 찾아보고 옛 이야기도 정리한다. 최근에 갔던 길이 울진 금강소나무숲길, 광릉 국립수목원길, 백룡동굴과 칠족령길 등이다. 오대산으로 가는 길에 우리는 잠시 홍천군 내면 광원리에 있는 은행나무 숲에 들린다. 달둔교 앞에서 버스를 내린 다음 다리를 건너 계방천을 따라 올라가면 다리골이 나온다.
▲ 홍천군 내면 은행나무 숲 | |
ⓒ 이상기 |
내린천의 지류인 계방천을 따라 봄꽃보다 아름답다는 단풍이 내려 앉아 가을이 깊어간다. 다리골에 있는 홍천 은행나무 숲은 부지가 4만여 평에 이르고, 2000여 그루의 은행나무가 심어져 있다. 5m 간격으로 줄을 맞춰 심어 마치 가로수 터널을 연상케 한다. 우리는 이곳에서 가을 정취를 만끽한다. 가을색은 노랑, 갈색, 빨강이 있는데, 노랑에서 출발해 빨강으로 절정을 이뤘다 갈색으로 스러져 가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면 이곳 은행나무 숲은 가을 단풍의 출발을 알리는 전령사 구실을 한다고 생각하면 좋겠다.
수령이 30년이 되었다고 하는데 아직은 나무가 그렇게 굵지는 않다. 또 상하로 죽죽 뻗는 수나무만 심어져 운치가 덜한 편이다. 은행은 암나무가 있어야 가지를 넓게 뻗어 풍성한 맛이 있는데 말이다. 또 은행나무의 열매를 감싸고 있는 질척한 과육이 땅에 떨어져 냄새를 풍겨야 진정한 가을 맛을 느낄 수 있는데 아쉽다. 이곳 은행나무 숲은 시각적인 관광에 중점을 두다 보니 조금은 인위적인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자연스런 은행나무 숲이 그립다.
▲ 은행나무 숲을 즐기는 회원들 | |
ⓒ 이상기 |
우리는 산책도 하고 사진도 찍고 맑은 공기도 마시면서 은행나무 숲을 즐긴다. 바닥에는 은행나무 잎이 많이 떨어져 있다. 그래선지 바닥이 푹신하다. 최근에 아침 최저기온이 영도 가까이 내려가면서 은행나무 잎도 더 노래지고 낙엽도 늘어나는 것 같다. 오전 8시 40분 밖에는 안 된 아침 이른 시간이라 아직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은행나무 숲을 나오면서 보니 벌써 장사들은 영업을 시작했다. 차가운 기온에 따뜻한 커피를 한 잔 마시는 사람도 있고, 버섯과 다래 등 산에서 채취한 임산물을 판매하는 사람도 눈에 띈다. 그 중에는 수염을 멋지게 기르고 장사를 하는 국가유공자 박상영씨도 있다. 그는 아내와 함께 장사를 막 준비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삼봉약수와 칡소폭포도 가깝고 해서 주변으로 펜션과 카페 등이 많이 생기고 있다. 그들 덕에 봄에서 가을까지는 이들 노점상들이 꽤나 번창하고 있다.
홍천군 내면 쪽의 오대산 임도
▲ 오대산 계류 옆의 단풍 | |
ⓒ 이상기 |
여기서 다시 버스를 타고 구룡령 쪽으로 가다 오른쪽 오대산 방향으로 들어서니 비포장길이다. 한 5분쯤 달렸을까, 국립공원 오대산 내면 탐방지원센터가 나온다. 차는 여기까지만 운행을 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차에서 내려 준비운동을 한다. 그리고 차단기가 내려진 입구를 지나 오늘 답사의 정점인 두로령(1310m)으로 향한다. 이곳에서부터 두로령까지 10.2㎞, 두로령에서 상원사까지 6.6㎞, 상원사에서 월정사까지 8.3㎞를 걸을 예정이다. 그러므로 이번 옛길 답사는 도상거리가 25㎞가 넘는 꽤나 긴 코스다.
임도는 계류를 오른쪽으로 끼고 나 있다. 계류를 따라 단풍이 곱게 물들었다. 평탄한 길과 단풍, 좋은 길벗들, 이번 답사는 여느 때보다 즐거울 것 같다. 길은 트럭이나 RV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좋은 편이어서 힘도 하나 들지 않는다. 그냥 자연과 단풍을 완상하며 걷기만 하면 된다. 지팡이를 짚고, 등짐을 지고, 사진기를 들고 회원들 각자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가을 단풍을 즐긴다. 낙엽을 밟으면서 느끼는 또 다른 재미는 덤이다.
▲ 오대산 임도를 오르는 회원들 | |
ⓒ 이상기 |
한 시간쯤 걸었을까, 자기 짐이 무거우니 풀고 가자는 회원이 있다. 나같이 비쩍 마른 사람들은 힘도 하나 안 드는데, 몸무게가 좀 나가는 회원들은 얼굴에 땀이 꽤나 많이 흐른다. 그 회원 배낭에서 막걸리와 한우고기로 만든 기가 막힌 안주가 나온다. 막걸리 한 잔을 시원하게 마시고 안주를 소금에 찍어 씹으니 맛이 기가 막히다. 산행을 하거나 답사를 하면서 자연유산과 문화유산을 보는 것도 좋지만, 이처럼 입을 즐겁게 하고 귀를 즐겁게 하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산은 오를수록 단풍이 곱지만 계류를 떠나니 대비의 아름다움은 덜한 편이다. 그 대신 능선의 이쪽과 저쪽으로 벌겋게 피어오르는 유장한 산줄기를 볼 수 있다. 또 이미 모든 잎을 다 떨쳐버리고 나목의 상태가 된 성급한 녀석들도 볼 수 있다. 이제 저 멀리 두로령의 산등성이가 보인다. 우리는 삼삼오오 짝을 지어 이야기를 나누며 산길을 오른다. 그래도 부부가 함께 가는 모습이 가장 좋아 보인다.
두로령의 이쪽과 저쪽
▲ 두로령 정상 표지석 | |
ⓒ 이상기 |
두로령에 오르기 전인 오전 11시 30분쯤 점심을 먹는다. 오전 6시에 출발을 했으니 회원들 모두 5시나 5시 30분경 이른 아침을 먹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을의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단풍나무 숲 속에서 먹는 점심도 역시 맛이 있다. 이런 곳에서 먹는 점심은 맛뿐 아니라 멋까지 있다. 또 부지런한 회원들은 그 바쁜 가운데도 이것저것 많이 준비를 해 왔다.
점심을 먹고 다시 출발해 오후 1시 10분경 두로령 정상에 도착한다. 우리가 내면 탐방지원센터를 오전 9시 30분에 출발했으니 두로령 정상까지 점심식사를 포함해 3시간 40분 정도 걸린 것이다. 두로령 정상에는 백두대간 두로령이라는 커다란 표지석이 서 있다. 그러나 정확히 말해 두로령으로 백두대간이 지나가지는 않는다. 백두대간은 두로령의 동북쪽에 있는 두로봉(1422m) 정상으로 지나간다. 2011년 6월 23일에 세워 아직도 뽀얀 두로령 표지석에는 위도와 경도를 적어 놓았다. 이곳은 GPS 상으로 북위 37°48′ 동경 128°34′이다.
▲ 오대산 단풍 | |
ⓒ 이상기 |
두로령에서 우리는 지나온 홍천군 내면 쪽을 내려다보고 앞으로 나갈 평창군 진부면 쪽을 살펴본다. 이곳에서 북동쪽 두로봉 까지는 1.6㎞고, 서남쪽 북대 미륵암까지는 2.6㎞이다. 우리의 일차 목표는 나옹대라고도 불리는 북대 미륵암이다. 북대 미륵암 쪽으로 내려다 본 오대산의 단풍은 정말 절경이다. 붉은색과 갈색이 내게 손짓하는 듯하다. 지금 설악산과 오대산의 단풍이 산중턱까지 내려간 것 같다.
북대 미륵암의 나옹화상과 보살의 정취
두로령에서 북대 미륵암으로 가는 길은 내리막이다. 20분 정도 걸으니 미륵암이 나온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인데, 겨울 추위 때문인지 알루미늄 새시로 문을 해 달았다. 이곳은 오대산의 다섯 대(臺)중 하나로 북쪽에 있어 북대(北臺)라 부른다. 오대산은 5개의 대가 있어 오대산이라 불려지게 되었다. 이들 오대(五臺)는 동대 관음암, 서대 수정암, 남대 지장암, 북대 미륵암, 중대 사자암이다.
▲ 북대 미륵암 | |
ⓒ 이상기 |
북대는 또한 나한도량과 나옹대로도 불린다. 이곳이 나한도량으로 불리게 된 데는 다음과 같은 연유가 있다.
통일신라시대 보천(寶川)이라는 스님이 있었다. 그가 오대산에서 수행할 때 북대 상왕산(象王山)에 석가여래와 함께 오백나한이 나타난 것을 보았다고 한다. 임종에 이르러 그는 제자들을 불러놓고 북대 남쪽에 나한당(羅漢堂)을 짓고 석가여래와 오백나한을 그려 봉안하고 예불에 전념할 것을 부탁했다. 낮에는 <불보은경(佛報恩經)>과 <열반경(涅槃經)>을 읽고, 밤에는 열반예참(涅槃禮懺)을 행하도록 하라고 유언했다고 한다. 이때부터 오대산 북대 미륵암이 나한신앙의 성지가 되었다.
이곳은 또한 고려시대 나옹화상(懶翁和尙: 1320-1376) 혜근(慧勤)이 수행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나옹화상은 경상도 영해부(寧海府) 사람으로 20세 되던 해 친구의 죽음에 의문을 느껴 공덕산 묘적암으로 출가한다. 1344년 양주 회암사로 가 4년 동안 공부하여 큰 깨달음을 얻고 1347년 중국으로 떠난다. 1348년 나옹화상은 대도(大都)의 법원사(法源寺)에서 지공(指空)대화상을 만나 1350년 3월까지 공부한다. 그리고 제방의 절을 순례하며 선지식과 게송을 주고받으며 법거량을 한다.
▲ 신륵사에 있는 나옹화상 진영 | |
ⓒ 이상기 |
10년 공부를 마친 나옹화상은 1358년 3월 지공화상과 이별하고 요양(遼陽)을 거쳐 고려로 다시 돌아온다. 그는 평양과 동해 등을 지나며 설법하다 1360년 가을 오대산에 들어가 상두암(象頭菴)에 주석하였다. 이 상두암이 바로 오대산 북대 미륵암이다. 이때 나옹화상은 용문산에 있던 태고화상 보우와 서신왕래를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때 지은 게송이 다음과 같이 전해진다.
임제의 한 종지가 땅에 떨어지려 할 때 臨濟一宗當落地
공중에서 고담 노옹이 불쑥 튀어 나오더니 空中突出古潭翁
세 척의 취모검을 번쩍 치켜들고 把將三尺吹毛劍
정령들 모두 베어 자취를 완전히 없애버렸네. 斬盡精靈永沒蹤
▲ 보제존자 나옹화상 탑과 탑비 그리고 석등 | |
ⓒ 이상기 |
여기서 임제는 중국 남종선의 한 분파인 임제종을 개창한 스님이고, 고담 노옹은 당대 고려의 최고 선지식이었던 태고화상을 말한다. 취모검은 솜털까지 잘라내는 예리한 칼로, 중생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또는 큰 결단을 내리기 위해 선지식들이 사용한다. 그러므로 이 게송은 태고화상에 대한 상찬이다.
미륵암 바깥벽에는 나한전, 산신전, 나옹전 복원불사를 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상왕봉(1491m) 아래 오대산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절이라서 그런지 찾는 사람도 적고 시주도 적은가 보다. 그렇지만 이곳에서는 현재 그러한 원을 세우고 불사를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불단 옆에는 <극락세계 유람경>이라는 책자가 놓여 있다. 그 아래에는 보시하는 것이니 모셔가라는 친절한 안내문도 보인다.
▲ 미륵암 법당 내부 | |
ⓒ 이상기 |
책자를 하나 들고 나오는데, 보살이 봉지를 하나 건넨다. 센베이 과자와 초콜릿이 들어 있다. 시주를 조금 밖에 못했는데, 얻어가는 것이 너무 많아 죄송한 마음이다. 산사에 가면 이처럼 마음이 풍성해지는 때가 많다. 나옹화상의 흔적도 찾아보고, 좋은 책도 하나 얻고, 따뜻한 보살님의 마음도 얻었으니 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걷고 때로 얻으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논어의 첫 구절을 이처럼 살짝 바꿔 보았다. 10월 13일 단풍이 한창인 북대 미륵암에서 나는 너무나 많은 것을 얻었다.
덧붙이는 글 | 오대산 단풍을 보기 위해 답사를 다녀 왔다. 홍천군 내면 탐방지원센터에서 출발 평창군 진부면 월정사까지 25㎞ 이상을 걸었다. 이번 답사의 목적은 첫째가 단풍 구경이고 둘째가 문화유산 답사다. 3회에 걸쳐 오대산의 가을 단풍과 문화를 소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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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자는요
홍천군 내면 은행나무 숲
오대산의 가을 단풍이 한창이다. '산내 들내 길 찾아' 회원 일행은 단풍도 보고 문화유산도 탐사할 겸 오대산을 찾았다. 오대산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에 있는 월정사로 들어가 상원사까지 옛길을 걸어간 다음 비로봉(1563m)에 오른다. 그러나 우리는 이번에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길을 택했다. 홍천군 내면 명개리의 국립공원 오대산 탐방지원센터를 출발 임도를 따라 두로령을 넘어가기로 했다. 두로령을 넘으면 북대 미륵암이 있고, 거기서 다시 상원사를 거쳐 월정사까지 걸을 예정이다.
그러므로 이번 여행의 목적은 오대산 등산이 아니라 오대산 옛길 답사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산내 들내 길 찾아'는 한 달에 한 번 옛길을 답사하며 선인들의 발자취를 찾아보고 옛 이야기도 정리한다. 최근에 갔던 길이 울진 금강소나무숲길, 광릉 국립수목원길, 백룡동굴과 칠족령길 등이다. 오대산으로 가는 길에 우리는 잠시 홍천군 내면 광원리에 있는 은행나무 숲에 들린다. 달둔교 앞에서 버스를 내린 다음 다리를 건너 계방천을 따라 올라가면 다리골이 나온다.
내린천의 지류인 계방천을 따라 봄꽃보다 아름답다는 단풍이 내려 앉아 가을이 깊어간다. 다리골에 있는 홍천 은행나무 숲은 부지가 4만여 평에 이르고, 2000여 그루의 은행나무가 심어져 있다. 5m 간격으로 줄을 맞춰 심어 마치 가로수 터널을 연상케 한다. 우리는 이곳에서 가을 정취를 만끽한다. 가을색은 노랑, 갈색, 빨강이 있는데, 노랑에서 출발해 빨강으로 절정을 이뤘다 갈색으로 스러져 가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면 이곳 은행나무 숲은 가을 단풍의 출발을 알리는 전령사 구실을 한다고 생각하면 좋겠다.
수령이 30년이 되었다고 하는데 아직은 나무가 그렇게 굵지는 않다. 또 상하로 죽죽 뻗는 수나무만 심어져 운치가 덜한 편이다. 은행은 암나무가 있어야 가지를 넓게 뻗어 풍성한 맛이 있는데 말이다. 또 은행나무의 열매를 감싸고 있는 질척한 과육이 땅에 떨어져 냄새를 풍겨야 진정한 가을 맛을 느낄 수 있는데 아쉽다. 이곳 은행나무 숲은 시각적인 관광에 중점을 두다 보니 조금은 인위적인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자연스런 은행나무 숲이 그립다.
우리는 산책도 하고 사진도 찍고 맑은 공기도 마시면서 은행나무 숲을 즐긴다. 바닥에는 은행나무 잎이 많이 떨어져 있다. 그래선지 바닥이 푹신하다. 최근에 아침 최저기온이 영도 가까이 내려가면서 은행나무 잎도 더 노래지고 낙엽도 늘어나는 것 같다. 오전 8시 40분 밖에는 안 된 아침 이른 시간이라 아직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은행나무 숲을 나오면서 보니 벌써 장사들은 영업을 시작했다. 차가운 기온에 따뜻한 커피를 한 잔 마시는 사람도 있고, 버섯과 다래 등 산에서 채취한 임산물을 판매하는 사람도 눈에 띈다. 그 중에는 수염을 멋지게 기르고 장사를 하는 국가유공자 박상영씨도 있다. 그는 아내와 함께 장사를 막 준비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삼봉약수와 칡소폭포도 가깝고 해서 주변으로 펜션과 카페 등이 많이 생기고 있다. 그들 덕에 봄에서 가을까지는 이들 노점상들이 꽤나 번창하고 있다.
홍천군 내면 쪽의 오대산 임도
여기서 다시 버스를 타고 구룡령 쪽으로 가다 오른쪽 오대산 방향으로 들어서니 비포장길이다. 한 5분쯤 달렸을까, 국립공원 오대산 내면 탐방지원센터가 나온다. 차는 여기까지만 운행을 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차에서 내려 준비운동을 한다. 그리고 차단기가 내려진 입구를 지나 오늘 답사의 정점인 두로령(1310m)으로 향한다. 이곳에서부터 두로령까지 10.2㎞, 두로령에서 상원사까지 6.6㎞, 상원사에서 월정사까지 8.3㎞를 걸을 예정이다. 그러므로 이번 옛길 답사는 도상거리가 25㎞가 넘는 꽤나 긴 코스다.
임도는 계류를 오른쪽으로 끼고 나 있다. 계류를 따라 단풍이 곱게 물들었다. 평탄한 길과 단풍, 좋은 길벗들, 이번 답사는 여느 때보다 즐거울 것 같다. 길은 트럭이나 RV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좋은 편이어서 힘도 하나 들지 않는다. 그냥 자연과 단풍을 완상하며 걷기만 하면 된다. 지팡이를 짚고, 등짐을 지고, 사진기를 들고 회원들 각자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가을 단풍을 즐긴다. 낙엽을 밟으면서 느끼는 또 다른 재미는 덤이다.
한 시간쯤 걸었을까, 자기 짐이 무거우니 풀고 가자는 회원이 있다. 나같이 비쩍 마른 사람들은 힘도 하나 안 드는데, 몸무게가 좀 나가는 회원들은 얼굴에 땀이 꽤나 많이 흐른다. 그 회원 배낭에서 막걸리와 한우고기로 만든 기가 막힌 안주가 나온다. 막걸리 한 잔을 시원하게 마시고 안주를 소금에 찍어 씹으니 맛이 기가 막히다. 산행을 하거나 답사를 하면서 자연유산과 문화유산을 보는 것도 좋지만, 이처럼 입을 즐겁게 하고 귀를 즐겁게 하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산은 오를수록 단풍이 곱지만 계류를 떠나니 대비의 아름다움은 덜한 편이다. 그 대신 능선의 이쪽과 저쪽으로 벌겋게 피어오르는 유장한 산줄기를 볼 수 있다. 또 이미 모든 잎을 다 떨쳐버리고 나목의 상태가 된 성급한 녀석들도 볼 수 있다. 이제 저 멀리 두로령의 산등성이가 보인다. 우리는 삼삼오오 짝을 지어 이야기를 나누며 산길을 오른다. 그래도 부부가 함께 가는 모습이 가장 좋아 보인다.
두로령의 이쪽과 저쪽
두로령에 오르기 전인 오전 11시 30분쯤 점심을 먹는다. 오전 6시에 출발을 했으니 회원들 모두 5시나 5시 30분경 이른 아침을 먹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을의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단풍나무 숲 속에서 먹는 점심도 역시 맛이 있다. 이런 곳에서 먹는 점심은 맛뿐 아니라 멋까지 있다. 또 부지런한 회원들은 그 바쁜 가운데도 이것저것 많이 준비를 해 왔다.
점심을 먹고 다시 출발해 오후 1시 10분경 두로령 정상에 도착한다. 우리가 내면 탐방지원센터를 오전 9시 30분에 출발했으니 두로령 정상까지 점심식사를 포함해 3시간 40분 정도 걸린 것이다. 두로령 정상에는 백두대간 두로령이라는 커다란 표지석이 서 있다. 그러나 정확히 말해 두로령으로 백두대간이 지나가지는 않는다. 백두대간은 두로령의 동북쪽에 있는 두로봉(1422m) 정상으로 지나간다. 2011년 6월 23일에 세워 아직도 뽀얀 두로령 표지석에는 위도와 경도를 적어 놓았다. 이곳은 GPS 상으로 북위 37°48′ 동경 128°34′이다.
두로령에서 우리는 지나온 홍천군 내면 쪽을 내려다보고 앞으로 나갈 평창군 진부면 쪽을 살펴본다. 이곳에서 북동쪽 두로봉 까지는 1.6㎞고, 서남쪽 북대 미륵암까지는 2.6㎞이다. 우리의 일차 목표는 나옹대라고도 불리는 북대 미륵암이다. 북대 미륵암 쪽으로 내려다 본 오대산의 단풍은 정말 절경이다. 붉은색과 갈색이 내게 손짓하는 듯하다. 지금 설악산과 오대산의 단풍이 산중턱까지 내려간 것 같다.
북대 미륵암의 나옹화상과 보살의 정취
두로령에서 북대 미륵암으로 가는 길은 내리막이다. 20분 정도 걸으니 미륵암이 나온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인데, 겨울 추위 때문인지 알루미늄 새시로 문을 해 달았다. 이곳은 오대산의 다섯 대(臺)중 하나로 북쪽에 있어 북대(北臺)라 부른다. 오대산은 5개의 대가 있어 오대산이라 불려지게 되었다. 이들 오대(五臺)는 동대 관음암, 서대 수정암, 남대 지장암, 북대 미륵암, 중대 사자암이다.
북대는 또한 나한도량과 나옹대로도 불린다. 이곳이 나한도량으로 불리게 된 데는 다음과 같은 연유가 있다.
통일신라시대 보천(寶川)이라는 스님이 있었다. 그가 오대산에서 수행할 때 북대 상왕산(象王山)에 석가여래와 함께 오백나한이 나타난 것을 보았다고 한다. 임종에 이르러 그는 제자들을 불러놓고 북대 남쪽에 나한당(羅漢堂)을 짓고 석가여래와 오백나한을 그려 봉안하고 예불에 전념할 것을 부탁했다. 낮에는 <불보은경(佛報恩經)>과 <열반경(涅槃經)>을 읽고, 밤에는 열반예참(涅槃禮懺)을 행하도록 하라고 유언했다고 한다. 이때부터 오대산 북대 미륵암이 나한신앙의 성지가 되었다.
이곳은 또한 고려시대 나옹화상(懶翁和尙: 1320-1376) 혜근(慧勤)이 수행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나옹화상은 경상도 영해부(寧海府) 사람으로 20세 되던 해 친구의 죽음에 의문을 느껴 공덕산 묘적암으로 출가한다. 1344년 양주 회암사로 가 4년 동안 공부하여 큰 깨달음을 얻고 1347년 중국으로 떠난다. 1348년 나옹화상은 대도(大都)의 법원사(法源寺)에서 지공(指空)대화상을 만나 1350년 3월까지 공부한다. 그리고 제방의 절을 순례하며 선지식과 게송을 주고받으며 법거량을 한다.
10년 공부를 마친 나옹화상은 1358년 3월 지공화상과 이별하고 요양(遼陽)을 거쳐 고려로 다시 돌아온다. 그는 평양과 동해 등을 지나며 설법하다 1360년 가을 오대산에 들어가 상두암(象頭菴)에 주석하였다. 이 상두암이 바로 오대산 북대 미륵암이다. 이때 나옹화상은 용문산에 있던 태고화상 보우와 서신왕래를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때 지은 게송이 다음과 같이 전해진다.
임제의 한 종지가 땅에 떨어지려 할 때 臨濟一宗當落地
공중에서 고담 노옹이 불쑥 튀어 나오더니 空中突出古潭翁
세 척의 취모검을 번쩍 치켜들고 把將三尺吹毛劍
정령들 모두 베어 자취를 완전히 없애버렸네. 斬盡精靈永沒蹤
여기서 임제는 중국 남종선의 한 분파인 임제종을 개창한 스님이고, 고담 노옹은 당대 고려의 최고 선지식이었던 태고화상을 말한다. 취모검은 솜털까지 잘라내는 예리한 칼로, 중생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또는 큰 결단을 내리기 위해 선지식들이 사용한다. 그러므로 이 게송은 태고화상에 대한 상찬이다.
미륵암 바깥벽에는 나한전, 산신전, 나옹전 복원불사를 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상왕봉(1491m) 아래 오대산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절이라서 그런지 찾는 사람도 적고 시주도 적은가 보다. 그렇지만 이곳에서는 현재 그러한 원을 세우고 불사를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불단 옆에는 <극락세계 유람경>이라는 책자가 놓여 있다. 그 아래에는 보시하는 것이니 모셔가라는 친절한 안내문도 보인다.
책자를 하나 들고 나오는데, 보살이 봉지를 하나 건넨다. 센베이 과자와 초콜릿이 들어 있다. 시주를 조금 밖에 못했는데, 얻어가는 것이 너무 많아 죄송한 마음이다. 산사에 가면 이처럼 마음이 풍성해지는 때가 많다. 나옹화상의 흔적도 찾아보고, 좋은 책도 하나 얻고, 따뜻한 보살님의 마음도 얻었으니 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걷고 때로 얻으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논어의 첫 구절을 이처럼 살짝 바꿔 보았다. 10월 13일 단풍이 한창인 북대 미륵암에서 나는 너무나 많은 것을 얻었다.
▲ 내면 탐방지원센터에서 상원사 탐방지원센터까지 답사 코스 | |
ⓒ 이상기 |
오대산의 가을 단풍이 한창이다. '산내 들내 길 찾아' 회원 일행은 단풍도 보고 문화유산도 탐사할 겸 오대산을 찾았다. 오대산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에 있는 월정사로 들어가 상원사까지 옛길을 걸어간 다음 비로봉(1563m)에 오른다. 그러나 우리는 이번에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길을 택했다. 홍천군 내면 명개리의 국립공원 오대산 탐방지원센터를 출발 임도를 따라 두로령을 넘어가기로 했다. 두로령을 넘으면 북대 미륵암이 있고, 거기서 다시 상원사를 거쳐 월정사까지 걸을 예정이다.
그러므로 이번 여행의 목적은 오대산 등산이 아니라 오대산 옛길 답사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산내 들내 길 찾아'는 한 달에 한 번 옛길을 답사하며 선인들의 발자취를 찾아보고 옛 이야기도 정리한다. 최근에 갔던 길이 울진 금강소나무숲길, 광릉 국립수목원길, 백룡동굴과 칠족령길 등이다. 오대산으로 가는 길에 우리는 잠시 홍천군 내면 광원리에 있는 은행나무 숲에 들린다. 달둔교 앞에서 버스를 내린 다음 다리를 건너 계방천을 따라 올라가면 다리골이 나온다.
▲ 홍천군 내면 은행나무 숲 | |
ⓒ 이상기 |
내린천의 지류인 계방천을 따라 봄꽃보다 아름답다는 단풍이 내려 앉아 가을이 깊어간다. 다리골에 있는 홍천 은행나무 숲은 부지가 4만여 평에 이르고, 2000여 그루의 은행나무가 심어져 있다. 5m 간격으로 줄을 맞춰 심어 마치 가로수 터널을 연상케 한다. 우리는 이곳에서 가을 정취를 만끽한다. 가을색은 노랑, 갈색, 빨강이 있는데, 노랑에서 출발해 빨강으로 절정을 이뤘다 갈색으로 스러져 가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면 이곳 은행나무 숲은 가을 단풍의 출발을 알리는 전령사 구실을 한다고 생각하면 좋겠다.
수령이 30년이 되었다고 하는데 아직은 나무가 그렇게 굵지는 않다. 또 상하로 죽죽 뻗는 수나무만 심어져 운치가 덜한 편이다. 은행은 암나무가 있어야 가지를 넓게 뻗어 풍성한 맛이 있는데 말이다. 또 은행나무의 열매를 감싸고 있는 질척한 과육이 땅에 떨어져 냄새를 풍겨야 진정한 가을 맛을 느낄 수 있는데 아쉽다. 이곳 은행나무 숲은 시각적인 관광에 중점을 두다 보니 조금은 인위적인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자연스런 은행나무 숲이 그립다.
▲ 은행나무 숲을 즐기는 회원들 | |
ⓒ 이상기 |
우리는 산책도 하고 사진도 찍고 맑은 공기도 마시면서 은행나무 숲을 즐긴다. 바닥에는 은행나무 잎이 많이 떨어져 있다. 그래선지 바닥이 푹신하다. 최근에 아침 최저기온이 영도 가까이 내려가면서 은행나무 잎도 더 노래지고 낙엽도 늘어나는 것 같다. 오전 8시 40분 밖에는 안 된 아침 이른 시간이라 아직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은행나무 숲을 나오면서 보니 벌써 장사들은 영업을 시작했다. 차가운 기온에 따뜻한 커피를 한 잔 마시는 사람도 있고, 버섯과 다래 등 산에서 채취한 임산물을 판매하는 사람도 눈에 띈다. 그 중에는 수염을 멋지게 기르고 장사를 하는 국가유공자 박상영씨도 있다. 그는 아내와 함께 장사를 막 준비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삼봉약수와 칡소폭포도 가깝고 해서 주변으로 펜션과 카페 등이 많이 생기고 있다. 그들 덕에 봄에서 가을까지는 이들 노점상들이 꽤나 번창하고 있다.
홍천군 내면 쪽의 오대산 임도
▲ 오대산 계류 옆의 단풍 | |
ⓒ 이상기 |
여기서 다시 버스를 타고 구룡령 쪽으로 가다 오른쪽 오대산 방향으로 들어서니 비포장길이다. 한 5분쯤 달렸을까, 국립공원 오대산 내면 탐방지원센터가 나온다. 차는 여기까지만 운행을 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차에서 내려 준비운동을 한다. 그리고 차단기가 내려진 입구를 지나 오늘 답사의 정점인 두로령(1310m)으로 향한다. 이곳에서부터 두로령까지 10.2㎞, 두로령에서 상원사까지 6.6㎞, 상원사에서 월정사까지 8.3㎞를 걸을 예정이다. 그러므로 이번 옛길 답사는 도상거리가 25㎞가 넘는 꽤나 긴 코스다.
임도는 계류를 오른쪽으로 끼고 나 있다. 계류를 따라 단풍이 곱게 물들었다. 평탄한 길과 단풍, 좋은 길벗들, 이번 답사는 여느 때보다 즐거울 것 같다. 길은 트럭이나 RV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좋은 편이어서 힘도 하나 들지 않는다. 그냥 자연과 단풍을 완상하며 걷기만 하면 된다. 지팡이를 짚고, 등짐을 지고, 사진기를 들고 회원들 각자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가을 단풍을 즐긴다. 낙엽을 밟으면서 느끼는 또 다른 재미는 덤이다.
▲ 오대산 임도를 오르는 회원들 | |
ⓒ 이상기 |
한 시간쯤 걸었을까, 자기 짐이 무거우니 풀고 가자는 회원이 있다. 나같이 비쩍 마른 사람들은 힘도 하나 안 드는데, 몸무게가 좀 나가는 회원들은 얼굴에 땀이 꽤나 많이 흐른다. 그 회원 배낭에서 막걸리와 한우고기로 만든 기가 막힌 안주가 나온다. 막걸리 한 잔을 시원하게 마시고 안주를 소금에 찍어 씹으니 맛이 기가 막히다. 산행을 하거나 답사를 하면서 자연유산과 문화유산을 보는 것도 좋지만, 이처럼 입을 즐겁게 하고 귀를 즐겁게 하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산은 오를수록 단풍이 곱지만 계류를 떠나니 대비의 아름다움은 덜한 편이다. 그 대신 능선의 이쪽과 저쪽으로 벌겋게 피어오르는 유장한 산줄기를 볼 수 있다. 또 이미 모든 잎을 다 떨쳐버리고 나목의 상태가 된 성급한 녀석들도 볼 수 있다. 이제 저 멀리 두로령의 산등성이가 보인다. 우리는 삼삼오오 짝을 지어 이야기를 나누며 산길을 오른다. 그래도 부부가 함께 가는 모습이 가장 좋아 보인다.
두로령의 이쪽과 저쪽
▲ 두로령 정상 표지석 | |
ⓒ 이상기 |
두로령에 오르기 전인 오전 11시 30분쯤 점심을 먹는다. 오전 6시에 출발을 했으니 회원들 모두 5시나 5시 30분경 이른 아침을 먹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을의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단풍나무 숲 속에서 먹는 점심도 역시 맛이 있다. 이런 곳에서 먹는 점심은 맛뿐 아니라 멋까지 있다. 또 부지런한 회원들은 그 바쁜 가운데도 이것저것 많이 준비를 해 왔다.
점심을 먹고 다시 출발해 오후 1시 10분경 두로령 정상에 도착한다. 우리가 내면 탐방지원센터를 오전 9시 30분에 출발했으니 두로령 정상까지 점심식사를 포함해 3시간 40분 정도 걸린 것이다. 두로령 정상에는 백두대간 두로령이라는 커다란 표지석이 서 있다. 그러나 정확히 말해 두로령으로 백두대간이 지나가지는 않는다. 백두대간은 두로령의 동북쪽에 있는 두로봉(1422m) 정상으로 지나간다. 2011년 6월 23일에 세워 아직도 뽀얀 두로령 표지석에는 위도와 경도를 적어 놓았다. 이곳은 GPS 상으로 북위 37°48′ 동경 128°34′이다.
▲ 오대산 단풍 | |
ⓒ 이상기 |
두로령에서 우리는 지나온 홍천군 내면 쪽을 내려다보고 앞으로 나갈 평창군 진부면 쪽을 살펴본다. 이곳에서 북동쪽 두로봉 까지는 1.6㎞고, 서남쪽 북대 미륵암까지는 2.6㎞이다. 우리의 일차 목표는 나옹대라고도 불리는 북대 미륵암이다. 북대 미륵암 쪽으로 내려다 본 오대산의 단풍은 정말 절경이다. 붉은색과 갈색이 내게 손짓하는 듯하다. 지금 설악산과 오대산의 단풍이 산중턱까지 내려간 것 같다.
북대 미륵암의 나옹화상과 보살의 정취
두로령에서 북대 미륵암으로 가는 길은 내리막이다. 20분 정도 걸으니 미륵암이 나온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인데, 겨울 추위 때문인지 알루미늄 새시로 문을 해 달았다. 이곳은 오대산의 다섯 대(臺)중 하나로 북쪽에 있어 북대(北臺)라 부른다. 오대산은 5개의 대가 있어 오대산이라 불려지게 되었다. 이들 오대(五臺)는 동대 관음암, 서대 수정암, 남대 지장암, 북대 미륵암, 중대 사자암이다.
▲ 북대 미륵암 | |
ⓒ 이상기 |
북대는 또한 나한도량과 나옹대로도 불린다. 이곳이 나한도량으로 불리게 된 데는 다음과 같은 연유가 있다.
통일신라시대 보천(寶川)이라는 스님이 있었다. 그가 오대산에서 수행할 때 북대 상왕산(象王山)에 석가여래와 함께 오백나한이 나타난 것을 보았다고 한다. 임종에 이르러 그는 제자들을 불러놓고 북대 남쪽에 나한당(羅漢堂)을 짓고 석가여래와 오백나한을 그려 봉안하고 예불에 전념할 것을 부탁했다. 낮에는 <불보은경(佛報恩經)>과 <열반경(涅槃經)>을 읽고, 밤에는 열반예참(涅槃禮懺)을 행하도록 하라고 유언했다고 한다. 이때부터 오대산 북대 미륵암이 나한신앙의 성지가 되었다.
이곳은 또한 고려시대 나옹화상(懶翁和尙: 1320-1376) 혜근(慧勤)이 수행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나옹화상은 경상도 영해부(寧海府) 사람으로 20세 되던 해 친구의 죽음에 의문을 느껴 공덕산 묘적암으로 출가한다. 1344년 양주 회암사로 가 4년 동안 공부하여 큰 깨달음을 얻고 1347년 중국으로 떠난다. 1348년 나옹화상은 대도(大都)의 법원사(法源寺)에서 지공(指空)대화상을 만나 1350년 3월까지 공부한다. 그리고 제방의 절을 순례하며 선지식과 게송을 주고받으며 법거량을 한다.
▲ 신륵사에 있는 나옹화상 진영 | |
ⓒ 이상기 |
10년 공부를 마친 나옹화상은 1358년 3월 지공화상과 이별하고 요양(遼陽)을 거쳐 고려로 다시 돌아온다. 그는 평양과 동해 등을 지나며 설법하다 1360년 가을 오대산에 들어가 상두암(象頭菴)에 주석하였다. 이 상두암이 바로 오대산 북대 미륵암이다. 이때 나옹화상은 용문산에 있던 태고화상 보우와 서신왕래를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때 지은 게송이 다음과 같이 전해진다.
임제의 한 종지가 땅에 떨어지려 할 때 臨濟一宗當落地
공중에서 고담 노옹이 불쑥 튀어 나오더니 空中突出古潭翁
세 척의 취모검을 번쩍 치켜들고 把將三尺吹毛劍
정령들 모두 베어 자취를 완전히 없애버렸네. 斬盡精靈永沒蹤
▲ 보제존자 나옹화상 탑과 탑비 그리고 석등 | |
ⓒ 이상기 |
여기서 임제는 중국 남종선의 한 분파인 임제종을 개창한 스님이고, 고담 노옹은 당대 고려의 최고 선지식이었던 태고화상을 말한다. 취모검은 솜털까지 잘라내는 예리한 칼로, 중생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또는 큰 결단을 내리기 위해 선지식들이 사용한다. 그러므로 이 게송은 태고화상에 대한 상찬이다.
미륵암 바깥벽에는 나한전, 산신전, 나옹전 복원불사를 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상왕봉(1491m) 아래 오대산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절이라서 그런지 찾는 사람도 적고 시주도 적은가 보다. 그렇지만 이곳에서는 현재 그러한 원을 세우고 불사를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불단 옆에는 <극락세계 유람경>이라는 책자가 놓여 있다. 그 아래에는 보시하는 것이니 모셔가라는 친절한 안내문도 보인다.
▲ 미륵암 법당 내부 | |
ⓒ 이상기 |
책자를 하나 들고 나오는데, 보살이 봉지를 하나 건넨다. 센베이 과자와 초콜릿이 들어 있다. 시주를 조금 밖에 못했는데, 얻어가는 것이 너무 많아 죄송한 마음이다. 산사에 가면 이처럼 마음이 풍성해지는 때가 많다. 나옹화상의 흔적도 찾아보고, 좋은 책도 하나 얻고, 따뜻한 보살님의 마음도 얻었으니 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걷고 때로 얻으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논어의 첫 구절을 이처럼 살짝 바꿔 보았다. 10월 13일 단풍이 한창인 북대 미륵암에서 나는 너무나 많은 것을 얻었다.
덧붙이는 글 | 오대산 단풍을 보기 위해 답사를 다녀 왔다. 홍천군 내면 탐방지원센터에서 출발 평창군 진부면 월정사까지 25㎞ 이상을 걸었다. 이번 답사의 목적은 첫째가 단풍 구경이고 둘째가 문화유산 답사다. 3회에 걸쳐 오대산의 가을 단풍과 문화를 소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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