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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나무숲은 예나 지금이나 눈에 띄는 승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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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7-12-06 11:02 조회8,88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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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화 속 가을 명산 | 김홍도의 오대산 '월정사] 전나무숲은 예나 지금이나 눈에 띄는 승경



한국의 대표적인 아름다운 길… 가을 단풍과 함께 걷기 좋아

점점 깊어가는 가을, 단원 김홍도의 산수화 ‘월정사’를 들고 오대산 전나무숲과 단풍을 즐기러 가면 어떨까. 오대산 전나무숲은 한국의 아름다운 길로 꼽힐 만큼 걷기 좋은 길 아닌가.

 

김창흡은 네 가지 승경을 들면서 오대산을 아금강亞金剛이라 불렀다. 김창흡은 아버지 김수항과 형 창집이 영의정을 지냈을 정도로 조선 최고의 명문가 선비다.

 

그가 꼽은 오대산의 네 가지 승경은 가볍거나 뾰족한 태도가 없는 유덕한 군자 같은 모습이 제일 승경, 잣나뭇숲과 아름드리나무가 첩첩산중 가려 속된 자들이 오지 않은 것이 둘째 승경, 빽빽한 산림 속 곳곳에 암자가 있어 셋째 승경, 다른 산에서 도저히 찾을 수 없는 샘물의 맛이 넷째 승경이라고 했다.

 

김홍도(1745~1805)와 월정사, 연결고리는 없지만 김홍도가 금강산을 그리려 가는 길에 오대산에 들러 4곳을 방문했고, 각각의 작품을 남겼다. 그의 <금강산도> 권1에 작품 2번이 ‘월정사’, 3번 ‘오대산 중대’, 4번 ‘사고史庫’, 5번 ‘상원’ 등이 현재까지 전한다.

 

월정사는 자장율사에 의해 창건된 절이다. 자장율사가 중국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을 현몽하고 진신사리를 받아 귀국해서 오대산 적멸보궁에 모신 것으로 전한다. 따라서 오대산은 문수보살과 자장율사의 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창흡이 승경으로 꼽은 봉우리마다 암자가 있는 그것이 오대산의 유래에 해당하는 오대다. 중국의 오대를 한국의 오대산에그대로 적용한 것이다. 

[산수화 속 가을 명산 | 김홍도의 오대산 '월정사]
월정사 경내는 예나 지금이나 제법 큰 사찰의 모습을 띤다.

김창흡이 승경이라 한 대로 오대에는 각각 다른 보살이 모셔져 있고, 샘물의 명칭도 각각 다르다. 중대 사자암엔 비로자나불과 옥계수玉溪水, 서대 수정암(염불암이라고도 함)엔 대세지보살과 우통수于筒水, 동대 관음암엔 관세음보살과 청계수靑溪水, 북대 미륵암엔 미륵보살과 감로수甘露水, 남대 지장암엔 지장보살과 총명수聰明水 등으로 나뉘어 있다.

 

 특히 중대는 원래 문수보살이 모셔져 있었으나 비로자나불로 변했다. 비로자나불의 협시 불이 문수보살이기 때문이다. 문수보살은 항상 사자를 타고 있기 때문에 주변에는 사자 형상이 많다. 중대에 사자암이 있는 이유다. 또한 북대는 하늘에서 보면 영락없이 코끼리 머리같이 생겨 상두암이라 부른다고 한다.

 

단원의 ‘월정사’에서도 얼핏 5대가 보이긴 한다. 하지만 단원이 의식하는 것 같지는 않다. ‘오대산 중대’를 따로 그렸으니 전혀 모르는 것 같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월정사’에 오대를 특별히 배경으로 그리려는 의도는 없었던 것 같다.

 

[산수화 속 가을 명산 | 김홍도의 오대산 '월정사]
단원 김홍도의 산수화 ‘상원’.

김홍도가 ‘월정사’를 그릴 1700년대 당시 조선 선비들은 금강산 유람, 화가들은 금강산 그림이 유행처럼 퍼졌다. 정조도 도대체 금강산과 관동팔경이 어떤 풍경이기에 선비들과 화가들이 찾는지 궁금했다. 정조는 김홍도에게 어명御命으로 금강산 및 관동팔경을 그려오라고 했다.

 

정조의 머릿속엔 세손 시절 그의 초상을 그려준 적이 있는 김홍도뿐이었다. 정조는 김홍도가 지나가는 지방 수령들에게 필요한 물자를 부족함이 없이 지원하라고 특별히 지시했다. 1788년 어명을 받든 단원은 원주를 지나 평창·진부를 거쳐 오대산으로 들어간다. 여기서 ‘월정사’ 등의 작품을 남겼다.

 

‘월정사’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작품 배경이 되는 몇 가지 요소가 나타난다. 우선 월정사는 당시에도 매우 큰 사찰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경내를 둘러싼 전나무숲도 예로부터 아름드리나무들로 유명했던 듯하다. 전나무가 가장 인상적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림 오른쪽 아래 계곡 위 일주문은 지금과는 달리 월정사 경내와 가깝게 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 현재 일주문은 조금 옮겨진 듯하다.

월정사 옆을 휘감고 흐르는 계곡도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방향이나 폭이 별로 달라진 것 같지 않다. 부도는 뚜렷이 그려져 있다. 부도 아래 암자 한 채는 동대인 듯하지만 분명하지 않다. 조금 올라가 왼쪽 숲속 암자는 사고가 분명하다. 중대, 북대 위치도 어렴풋이 파악된다. 

 

그런데 풍경의 사실성에 바탕을 둔 진경산수화 화풍으로 그렸다면 그림 그린 장소가 있을 텐데 어딘지 알 수 없다. 그림 구도상 월정사를 위에서 내려다본 듯한데 남쪽 산봉우리 어디쯤이지 싶다. 혹시 남대에서 그렸을까. 현장에 가서 직접 확인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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