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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신문] 월정사·법보신문·선학회, ‘출가’세미나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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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8-05-01 08:43 조회6,86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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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기룡 교수는 “불도의 끝은 깨달음에서 진일보 한 보살행이며, 그 보살행은 생로병사의 고해에 있는 중생들을 이끌어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법보신문 자료사진

 

조계종 승가교육의 정향(定向)

교육과정 단계별 개선 시급
전통 교학에도 관심가져야
포교목적, 중생의 안락·행복
교세 확장에 목적둬서 안돼

  
조기룡
동국대 불교학술원 교수

조계종 승가교육의 목적은 깨달음의 성취와 보살도의 실천에 있다. 승려가치관은 승가교육 내용과 일상생활 환경 그리고 스승의 지도가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형성된다. 승가교육 내용이 붓다의 가르침을 오롯이 배울 수 있도록 편성되고, 일상생활 환경이 수행에 적합하도록 조성되고, 이러한 승가교육과 일상생활을 스승인 화상(和尙)이 지도·점검해줄 수 있을 때 승려는 붓다의 제자로서 적합한 가치관을 형성할 수 있다.

조계종의 승가교육은 행자 대상의 기초과정, 사미(니) 대상의 기본과정, 그리고 비구(니) 대상의 전문과정 등으로 편성되어 있다. 그러나 현행 조계종 승가교육의 문제점은 기초와 기본, 그리고 전문 과정에서 마저도 출가정신을 올곧게 정립할 수 없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출가 정신 즉 승려의 가치관 정립을 위해선 교육단계별 개선이 필요하다. 먼저 기초과정의 내용은 행자가 깨달아 붓다가 되겠다는 원력을 세우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이는 사찰의 대중들이 행자를 허드레 일꾼이 아닌 초발심 수행자로 인식하고 대우해 줄 수 있을 때 가능하다. 기본과정 내용은 현재의 교재 강독 일변도에서 벗어나 일상생활에서 수행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불교의 깨달음은 교재의 학습이 아닌 일상이 곧 수행인 생활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전문과정은 승려의 스승을 양성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그 교육 내용은 화상으로서의 자질을 겸비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야 한다.

승가교육이 승려들의 가치관을 인위적으로 정립시켜준다면 승가의 일상생활 환경은 그들의 가치관에 자연적으로 영향을 준다. 만일 승가의 일상생활이 붓다의 가르침에 따라 이루어진다면, 승려들은 자신도 모르게 붓다의 제자에 적합한 가치관을 가지게 될 것이다. 불교공부는 범부가 붓다되는 공부이다. 그런데 ‘붓다됨[成佛]’이 불교공부의 본질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 이르러는 승가에서 조차도 이는 현실과 동떨어진 신화(神話)처럼 간주된다. 만일 불교공부에 있어서 붓다됨을 포기한다면, 불교공부는 여타의 도덕공부가 되어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불제자로서 승려는 붓다됨을 현실의 궁극적 목표로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불교는 종교성을 상실하거나 생명력이 없는 종교로 전락하게 된다.

개혁종단은 승가교육의 현대화를 위하여 각고의 노력을 기하였다. 이는 교육의 내용에 있어서는 외전의 강화로 표현될 수 있다. 그런데 현대화는 상대적 개념이다. 현재라는 시간은 곧 과거가 되고, 미래도 언젠가는 과거가 되고야 만다. 그렇기 때문에 승가교육의 교과과목은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루고 내전과 외전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시대상을 이해하고 이에 적합한 현대적 교육을 하는 한편 전통적 교학에 대한 교육도 소홀해서는 안 된다.

붓다 재세 이래 출가 비구는 은둔자가 아니다. 걸식이라는 승가의 생활 규칙상 은둔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한국불교는 조선시대 숭유억불의 영향으로 인하여 산중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러한 환경으로 인하여 승가는 사회와 단절되었고 승려는 시대 조류에 부응할 수 없었다. 이의 극복을 위하여 개항기 이후 한국불교는 사회와의 소통을 끊임없이 강조하여왔다. 그런데 근래 들어서는 불교와 사회의 소통이 포교의 측면에서 강조되는 경향이 있다. 한국불교는 포교를 신도의 확보로 이해하고, 이를 위해선 사회와 소통해야만 한다는 인식이 강하게 작용하는 것 같다. 이와 같은 인식의 형성에는 개항기 이후 전래된 기독교의 급성장에 대한 불교계의 위기의식이 한몫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포교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은 교세의 확장이 아닌 중생고의 해소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붓다가 포교를 한 이유는 교단의 신도를 늘리거나 큰 절을 짓기 위함이 아니라 중생에게 자신이 깨달은 바를 전함으로써 그들이 무명을 벗고 안락과 행복을 얻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와 사회의 소통에 대한 승가교육은 신도의 증가보다는 중생의 안락과 행복을 위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불법에 여법한 승려의 삶은 은둔이 아닌 중생고를 구제하기 위한 헌신이다. 불도(佛道)의 끝은 깨달음에서 진일보한 보살행이며, 그 보살행은 생로병사의 고해에 있는 중생들을 이끌어주는 것이다. 따라서 승가교육은 깨달음을 향한 수행에 한정되지 말고 중생고의 해소를 위한 포교를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포교는 붓다의 가르침이 전제되어야 하는바 포교의 명분으로 붓다의 가르침에 이르는 길인 수행을 등한시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조계종 출가진흥 위한 노력

인구감소·탈종교화 시대가
출가자 감소 원인이라지만
조계종 정체성 훼손이 문제
한국불교 특수성 재정립 필요

  
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출가자 감소의 원인에는 여러 변수가 있어, 간단하게 말하기는 쉽지 않다. 인구감소를 그 원인으로 들기도 하고, 현대 사회의 탈종교화를 들기도 한다.

인구감소와 탈종교 시대라는 두 문제가 외적 문제라면 조계종의 내적 문제를 토론해보고자 한다. 단도직입적으로 조계종의 불교적 정체성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불교(교단)가 성립되기 위해서 부수적 요소와 필수적 요소가 있다면, 어떤 경우에도 필수적 요소는 지키고 상황에 따라 부수적 요소는 버려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구감소 시대에 부수적인 것은 버리고 필수를 지켜야 할 것이다. 그러면 불교 성립의 필수적 요소는 무엇인가? 그것은 삼보이다. 삼보에도 셋이 있다. ‘현전(별상)삼보’와 ‘주지삼보’와 ‘동체(일체)삼보’가 있다. 지금은 석가세존의 재세시가 아니니 ‘현전삼보’는 없다. 지금 있는 것은 ‘주지삼보’이다. 그렇다고는 하나 ‘주지삼보’도 그렇고 ‘동체삼보’도 그 의지처는 역시 ‘현전삼보’이다. ‘현전삼보’가 없는 현 실정에서는 ‘도(圖)’와 ‘상(像)’으로서의 불보살이 귀의의 대상이 되는 것이고, ‘교(敎)’와 ‘의(義)’를 전하는 문자로 전해지는 경-률-논 삼장이 귀의의 대상이 되는 것이고, 그런 불과 법의 정신을 받들어 출가하여 공동체를 이룬 출가자가 귀의를 받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계종의 현주소는 어떠한가?

첫째, 불보를 보자. 조계종이 예경하는 부처님은 어떤 분이신가? 대승불교권에서는 기본적으로 법신-보신-화신, 이렇게 3신불을 신앙한다. 현재 한국불교의 전통적인 의례의식은 모두 3신 부처님께 예경하는 구조로 되어있다. 그런데 현재 조계종에서 조석예불을 공식적으로 어떻게 하고 있는가? 화신 석가모니 부처님이 사바의 교주이시기는 하지만, 한국불교의 근간은 법신 신앙이다.

둘째, 법보를 보자. 불교 경전에 대승과 소승이 있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한다. 요즘은 소승경전을 초기경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전통적으로 화엄교학에서는 ‘사나경’ ‘석가경’ 이렇게 구분했다. ‘화엄경’ ‘법화경’ ‘금강경’ ‘능엄경’ ‘원각경’ ‘지장경’ ‘약사경’ ‘아미타경’ ‘열반경’ 등은 모두 법신이 설주이신 ‘사나경’이다. 한편 ‘니까야’ 또는 ‘아함경’은 화신 석가부처님이 설주이신 ‘석가경’이다.

조계종은 ‘금강경’을 소의경전으로 삼는다. ‘금강경’을 기준으로 기타 대승경을 유기적으로 또 통합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과거 학승 중에는 그런 설명을 제시한 분이 없다. 그럼 현재 조계종에 그런 분이 있는가? 없다. 그런데 화엄종사들 ‘화엄경’을 중심으로 일체의 경전을 조직적으로 총체적으로 분석하고 배치하고 있다. 한국불교는 이런 전통을 이어왔다. 한편 종헌에는 역대 전등 조사님들의 전등법어를 소의경전으로 한다고 하는데, 부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해서 제자들의 말을 평가하는 것은 있을 수 있지만, 어찌 조사들의 말을 기준으로 부처님을 평가할 수 있는가?

셋째, 승보를 보자. 승가 공동체에는 율장이 있어야 한다. 조계종 출가자들의 수행생활을 통제 유지하는 율장은 무엇인가? 현재 조계종에서는 종헌 종법 종규를 제정하여 전 승려에게 적용하고 있다. 그 위에 제방의 선원에서는 청규로 살고 있다. 출가대중이라면 율장에 따라 생활하고 그에 따라 포살해야 한다. 무슨 근거로 ‘범망경’으로 포살을 하는가? 과연 조계종의 대중 정체성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한국불교는 조선시대 이래 시절 인연에 따른 부침은 있었으나, 교리적으로는 ‘화엄교학-참선수행-염불정토’의 삼문 수학을 바탕으로, 발표자가 이상에서 거론한 정체성을 세우고 조직화해 왔다. 승단 운영은 기본적으로 남종선의 사자상승을 근간으로 하면서 율장과 청규를 형편 것 지켜갔다. 조선 후기에 들면서 이런 전통은 더욱 분명해졌고, 비록 일제강점기에 왜곡되고 축소되기는 했지만 중심은 지켜갔다.

이상에서 언급한 전통과 그 속에 담긴 가치는 한국불교만의 고유한 점이다. 그렇다고 별난 것은 아니다. 그 속에는 세계불교사의 지평선 위에서 볼 때에 나름의 합리성과 보편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각 지역과 각 역사 속에 만들어진 보편성 있고 합리성 있는 각각의 불교들이 모여 세계불교가 만들어져 가는 것이다. 한국불교가 갖는 이런 특수하면서도 보편적인 점이 재확인 되고 정립된다면, 이것이 바로 한국불교의 세계화일 것이다. 전통문화의 전승자이며 세계화의 한 주인공으로 사는 것이 출가자의 삶이다. 이 삶을 보람으로 삼고, 이 삶을 행복으로 삼고, 이 삶을 편안함으로 삼는 것이다. 그 시작이 바로 출가이다. 앞으로 출가하려는 자에게 그런 확인이 예상되게 해야 하고, 이미 출가한 자에게는 그 확신을 이미 누리게 해야 한다.

 



[1438호 / 2018년 5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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