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월6일(현지시간) 규모 7.8 강진이 튀르키예와 시리아를 강타했다. 유례없는 대지진에 5만여 명이 사망했고, 이재민은 수백만명에 이르렀으며, 건물 수십만 채가 붕괴하는 등 막대한 인명·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대부분의 주택과 아파트가 무너진 탓에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은 이재민들은 텐트촌을 전전하거나 비닐천막을 치고 불안정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식료품 부족은 물론 전기, 수도, 화장실 등 기본 시설도 갖춰지지 않아 큰 고통을 겪고 있다. 평범한 일상을 꿈꾸지만 피해 복구까지 갈 길이 멀다.
한국불교계는 이들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았다. 동체대비 정신으로 재난의 아픔을 나누며 종교, 국경을 넘어 구호의 손길을 건넸다. 이재민들의 생존과 지진 피해 복구를 위해 성금을 모연하고 구호물자를 신속하게 지원했다. 또 임시주거시설을 제공하고 학교 건립, 아동 심리 및 학업 지원을 펼치는 등 그동안 쌓아온 재난구호 역량을 발휘해 이재민들의 일상으로의 복귀를 위한 다각도의 노력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불교계의 지원은 구호성금 모금과 물품지원방식으로 나뉘었다.
성금모금은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이 물꼬를 텄다. 지진 소식이 전해지자 진우 스님은 2월13일 아름다운동행을 통해 튀르키예 대사관에 피해복구 지원금 2억원을 전달했다. 이를 시작으로 전국 사찰과 스님, 불자, 교계 단체들의 성금 기탁이 줄을 이었다. 서울 조계사(주지 지현 스님), 영축총림 통도사(주지 현문 스님), 지리산 화엄사(주지 덕문 스님), 서울 봉은사(주지 원명 스님), 서울 도선사(주지 태원 스님), 오대산 월정사(주지 정념 스님), 공주 마곡사(주지 원경 스님), 광명 금강정사(주지 가섭 스님), 도신 스님, 일면 스님 등 228개 사찰 및 개인후원자 966명과 전국비구니회, 법보신문을 비롯해 청도 운문사 총동문회, 광주불교연합, 지구촌공생회, 월드머시코리아, 쿠무다, 포교사단, 한국병원불자연합회 등 단체 48곳이 동참하며 위로와 함께 재난 극복을 기원했다.
튀르키예·시리아 지원을 위한 이색적인 모금도 진행됐다. 팔공총림 동화사(주지 능종 스님)는 직지사, 동화사, 은해사, 불국사, 고운사 등 대구·경북지역 조계종 5개 교구본사와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 피해 돕기 대법회’ 개최하고 성금을 모연했다. 동화사 말사인 파계사, 안일사, 용연사, 송림사, 보현사와 신도단체인 불국사 신도회·자원봉사단·합창단·불국회도 동참해 자비정신을 실천했다. 이와 함께 포항불교사암연합회는 먹거리, 생활용품, 연예인 애장품 등을 판매하는 후원 바자회를 통해 2000만원을, 양산 미타정사도 SNS에서 ‘한 사람당 1만원 후원 캠페인’을 진행, 전국에서 1089명의 후원자들이 동참, 1146만원을 지원금으로 조성해 전달했다.
튀르키예·시리아 지원을 위해 2월8일~3월31일 아름다운동행에 답지한 성금만 18억8000만원에 달한다. 아름다운동행은 모금한 성금을 토대로 이재민들이 안전과 존엄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도록 지진 피해가 가장 큰 지역에 컨테이너 주택을 지원키로 했다. 튀르키예 한인회와 MOU를 맺고 하타이주 내 한국마을에 컨테이너 100동을 건립 중에 있다. 임시주거시설은 4인 가족이 불편함 없이 생활할 수 있도록 거실, 방 1개, 주방, 화장실로 구성됐다. 에어컨과 온수기도 설치했으며, 1500만원 상당의 인덕션 370개도 지원했다. 이재민들의 임시거처가 있는 카이세리 뷴얀시에도 지원금 30만리라(한화 2000만원)를 전달했다.
튀르키예·시리아 돕기에 조계종만 팔을 걷어붙인 것은 아니었다. 천태종(총무원장 덕수 스님)은 전국 사찰을 중심으로 지진 피해 지원 성금 모금을 진행, 서울 관문사, 명락사, 마산 삼학사와 신도들이 모은 1억원을 튀르키예 대사관에 전달했다. 산하 NGO 단체인 (사)나누며하나되기도 7000만원 상당의 마스크 20만장, 손소독제 5000개, 의류 1500점, 수건 900장 등을 튀르키예로 전달해 현지에서 이재민들에게 배분했다. 진각종도 전국 심인당을 통해 성금을 모연해 대사관에 1억원을 전달했다.
불교계 구호단체들은 직접 현지를 찾아 봉사에도 나섰다. 굿월드자선은행(이사장 덕문 스님)과 더프라미스(이사장 묘장 스님)는 2월18일 실의에 빠진 이재민들을 돕기 위해 경험과 전문성을 갖춘 전문가를 파견, 튀르키예 현지에서 구호활동에 참여했다. 굿월드자선은행 총괄이사 석문 스님, 김규환 사무국장, 김동훈 더프라미스 이사는 압둘와합 헬프시리아 사무국장과 함께 튀르키예에 머물면서 3월16일까지 지원 사각지대에 놓인 튀르키예 이재민, 시리아 난민들을 대상으로 긴급 지원에 나섰다.
두 단체는 현지 단체, 구조대, 봉사단 등과 협력해 발빠르게 대처해나갔다. 업무 협조를 통해 현장을 점검하며 지원 지역, 대상을 선정했고, 난민들에게 가장 필요한 품목을 조사해 상황에 맞게 맞춤형으로 지원했다.
쌀, 통조림, 마카로니 등 식료품과 속옷, 신발, 치약, 비누 등 생활용품을 현지에서 구매한 뒤 마라하쉬, 누르닥, 꼬냐, 우르파, 마르딘 등 지원이 중단되거나 난민 거주 비율이 높은 지역, 접경지역에 배분했다. 여성 난민들을 위한 위생 용품, 시리아 음식 문화에 맞는 패키지도 별도로 마련해 제공하는 세심함을 보였다. 두 단체는 피해에 취약한 아동들을 위한 지원에도 집중했다. 헬프시리아에 시리아 아동들을 위한 지원금을 전달했으며, 아동복 매장 본사와 협의해 아동들이 직접 고를 수 있도록 의류 쿠폰을 발급해 지원했다.
합동 지원 외에 단체별 활동도 활발히 진행했다. 굿월드는 아이들의 교육 환경 개선을 위해 텐트촌에 거주하고 있는 시리아 학생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교육비를 지원하기로 했으며, 시리아 대학생 자원봉사단체 ‘레이한’에 시설 임대료 1년치를 후원하며 아이들이 안전하게 심리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번 기금 전달은 일회성을 넘어 정기적이고 지속적인 후원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더프라미스는 시리아 NGO ‘샤팍’을 통해 시리아 살킨(salqin) 지역 거주 어린이들의 심리적 불안감을 해소하고자 심리 전문가를 섭외해 이재민 캠프에서 재난 트라우마 대응 프로그램을 진행 중에 있다. 또 시리아 내 1100가구에 쌀, 콩, 올리브유 등이 담긴 푸드 패키지를, 2020명에게는 중고생활가전을 전달했으며, 물자 부족으로 구조 및 처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민 방위대 ‘화이트 헬멧’에 16만2000달러(한화 2억1400여만원) 상당의 의료물품을 지원했다.
국제구호단체 JTS(이사장 법륜 스님)도 지진 난민을 돕기 위한 구호활동에 적극 뛰어들었다. JTS는 특히 시리아 지원에 심혈을 기울였다. 지진의 직격탄을 입은 시리아 북부는 장기간 이어진 내전으로 일대를 반군이 장악하고 있어 구호의 손길이 닿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
이에 JTS는 박지나 대표를 중심으로 긴급구호팀을 조직해 사업에 착수했다. 2월과 3월 두 차례에 걸쳐 현지 사전 답사를 진행하고 구호사업 진행 실태와 시장 조사를 실시했다. 현지 파트너 ‘샤팍’ ‘화이트 헬멧’과 구체적 지원 물품과 일정을 논의하고 정부 지원이 미치지 않아 직접 지원이 필요한 곳을 선정했다.
화이트 헬멧을 통해 시리아에 지혈대 3300개와 10만달러 상당의 의약품을, 가지안테프 오스마니예 캠프 500가구, 시리아 난민캠프 2000가구에 설탕, 국수, 오일 등 식료품 꾸러미를 전달했다. 개인 위생을 위해 튀르키예에도 비누 5만개, 샴푸 5만개를 전달했다. 현재 시리아 난민캠프에 1만8500인분 추가 식량을 배급하고 시리아 내에 생리대 10만팩과 샴푸, 비누 등을 지원할 예정이다. 지진피해로 손과 다리를 잃은 이재민들을 위한 의수족 지원도 준비 중에 있다.
JTS는 청소년들이 희망을 잃지 않고 학업에 매진할 수 있도록 ‘화이트 헬멧’과 시리아 내 학교 재건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복구 대상 학교는 튀르키예 국경과 가까운 시리아 아프린 주 진디레(Jindires)에 위치해 있다. 지진으로 학생 150명과 교사 10명이 사망했고 건물은 붕괴 직전에 놓여있어 학생들은 학교 옆 텐트에서 수업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JTS는 학교 건설을 위한 일체 비용을 지불하기로 했으며 현재 화이트 헬멧과 예산 및 사업 일정을 논의 중이다.
조계종사회복지재단(대표이사 보인 스님)은 긴급구호 모금운동을 전개해 2억5000여만원을 모금했다. 재단은 재난으로 생계수단을 잃은 이재민들의 일상 회복을 돕고자 식량키트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대표이사 보인 스님을 포함한 재단 직원들이 튀르키예에서 현지 파트너 기관 샤팍과 정부 재난관리청, 레이한리군과 협력해 긴급구호활동을 진행했다. 지역정부의 추천을 받은 취약가정 1만4000명(튀르키예 이재민 7000명·시리아 난민 7000명)에 의약품과 영양소를 고려한 1개월분 저장성 식료품 13종을 전달했다.
지진으로 튀르키예와 시리아 난민들이 정상적인 일상을 회복하기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그들이 겪어야 할 시련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그렇더라도 한국불교계가 보여준 부처님의 자비심은 그들이 새롭게 도약할 수 있는 희망이 되었다.
김민아 기자 kkkma@beopbo.com
2023-0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