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민일보] [월요마당] 기해년 새해를 맞이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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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9-01-07 08:37 조회5,775회 댓글0건본문
▲ 퇴우 정념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 월정사 주지 |
새벽녘의 겨울 산사(山寺)는 백두대간을 넘어온 냉기가 ‘모골(毛骨)이 송연’할 정도로 차갑다.오대산에 있는 월정사 만월선원을 비롯한 3곳 선원(禪院)들이 동안거(冬安居)에 든 지도 어느덧 반환점을 앞두고 있지만,고요한 가운데 수행의 열기가 치열하다.한 해가 제야의 종소리와 더불어 뒷걸음질치고,또 한 해가 밝아왔지만 오대산 월정사는 특별할 것 없는 수행의 하루가 반복되고 있을 뿐이다.점심 공양을 마친 뒤에 소화도 시킬 겸 좌선(坐禪)에 굳어진 몸도 풀어줄 겸 이리저리 포행을 한다.산 속을 걷다보면 마치 경운기나 트랙터로 땅을 헤쳐 놓은 것 같은 장면과 종종 마주치게 되는데,다름 아닌 멧돼지들의 작품이다.풀이나 나무의 뿌리를 캐먹거나 땅 속의 벌레를 잡아먹으려고 땅을 파헤친 것이다.한편 물기가 있는 땅을 헤집고 진흙탕을 만들어 진흙목욕을 하기도 한다.주둥이로 단단한 대지를 파헤치는 멧돼지들을 떠올리면 새삼 생명에 깃들어있는 잠재력에 놀라게 된다.
올해는 기해년 황금돼지의 해라 하여 돼지 모양의 황금 장신구가 각광받는 등 꽤나 떠들썩한 모양이다.월정사 새해맞이 행사에서도 황금색 돼지저금통을 참가자들에게 나눠줬으니 시류를 좇은 셈이다.2018년 대한민국과 강원도는 적지 않은 유산을 만들었다.많은 이들이 실패할거라 우려했던 평창동계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냈다.‘스포츠를 통한 평화’라는 올림픽의 이념이 구현된 대성공이었다.또 잘못된 일들,아쉬운 일들도 적지 않았다.실패했든 성공했든 함께 헤쳐 나왔던 2018년은 우리의 유산으로 남게 될 것이다.실패한 역사도 또한 역사다.그 경험은 뒷사람에게 주는 타산지석(他山之石)의 교훈이 되어 내일의 자산이 될 것이다.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현실은 녹녹한 것이 아니다.이 땅에 전쟁의 씨앗을 소멸해 영구적인 평화를 정착시키는 것은 정치적으로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 필수적인 과제다.평화롭게 지낸다 하더라도 굶주린다면 절반의 성취에 불과하다.평화와 경제 발전은 어느 것도 양보할 수 없는 목표지만,경제만을 놓고 보아도 양적 성장 못지않게 질적인 발전도 중요하기에 쉬운 과제가 아니다.이제 우리 사회는 소득의 증대를 넘어서 분배와 관련된 경제정의에 대해 사회적 합의와 대타협이 필요한 시점에 와있다고 본다.그리고 세대와 성(性),이념으로 갈린 사회적 갈등의 골을 메꾸어야 한다.모두가 평화로운 환경에서 풍요로운 성장의 혜택을 고루 누리며 조화롭게 사는 것은 현실에선 거의 불가능한 유토피아적 꿈처럼 보이지만 바로 국가의 존재 목적이기도 하다.지난(至難)하지만 이뤄가야 할 시대의 과제인 것이다.
근래 교수신문이 전국 대학교수들을 대상으로 기해년의 사자성어를 설문조사한 결과 ‘임중도원’(任重道遠)이 선정됐다고 한다.‘짐은 무겁고 갈 길은 멀다’는 뜻이다.현재를 살고 있는 개인이나 나라에도 시의적절한 표현이 아닌가 싶다.돼지처럼 지치지 않고 꾸준한 노력을 기울이다 보면 주둥이로 단단한 땅을 파헤치듯이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갈 수 있지 않을까.세상에서 비켜나 한가로이 지내는 산승(山僧)이지만 황금돼지해를 맞아 강원도민과 국민 모두 풍요로운 결실을 수확하게 되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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