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찬바람 불 때 제맛, 강원도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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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9-10-22 17:00 조회5,205회 댓글0건본문
[비즈한국] 올림픽에만 대표 선수가 있는 건 아니다. 여행에도 지역을 대표하는 선수들이 있다. 그런 곳이라면 이미 다녀와 더 볼 필요가 없다고? 모르시는 말씀! 대표 선수가 대표 선수인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그중 하나는 볼수록 빠져드는 여행지의 매력, 다른 하나는 파도 파도 계속 샘솟는 숨은 이야기들이다. 여행이란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더 즐거운 법. 재미난 이야기와 함께 강원도의 평창과 강릉, 정선 여행 대표 선수들을 둘러보자.
#이야기와 함께 걷는 천년의 숲길, 평창 월정사
우선 간단한 퀴즈부터. 오대산(五臺山)은 왜 오대산일까?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동쪽이 만월봉, 남쪽이 기린봉, 서쪽이 장령봉, 북쪽이 상왕봉, 가운데가 지로봉인데, 다섯 봉우리가 고리처럼 벌려 섰고, 크기가 고른 까닭에 오대라 이름하였다”고 한다. 다섯 봉우리가 있어서 오대산이라, 이것 참 간단하군! 하고 넘어가면 재미가 없으니 한 걸음 더 들어가 볼까.
‘삼국유사’의 이야기는 조금 다르다.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중국의 오대산에서 일주일 간 기도했더니 문수보살이 나타나 석가세존의 사리를 건넸단다. 귀국해서 중국 오대산과 비슷한 산을 찾아다니다 마침내 강원도에서 다섯 봉우리가 연꽃처럼 벌어진 산을 발견하고는 오대산이라 이름 지었다는 것. 월정사는 바로 자장율사가 오대산에 지은 절이다.
월정사 주차장에 차를 대고 금강교를 건너 천왕문, 요사채, 동별당을 지나면 교과서에도 등장하는 월정사 팔각구층석탑(국보 제48호)이 나온다. 고개를 돌리면 정면 다섯 칸, 측면 네 칸의 우람한 법당이 눈에 들어온다. 탑을 마주보고 있으니 여기가 부처님을 모신 대웅전(大雄殿)인가 하는데 현판에는 ‘적광전(寂光殿)’이라고 쓰여 있다. 적광전은 ‘진리의 화신’이라는 비로자나불을 모신 법당. 하지만 안을 들여다보니 닫집에 좌정하신 부처님의 모습이 석굴암 대웅전 석가모니불과 쌍둥이처럼 닮았다.
팔각구층석탑과 적광전을 품은 월정사는 일주문에서 본채까지 대략 1km에 걸친 아름드리 전나무 숲길로도 유명하다. 이 숲길의 별명은 ‘천년의 숲길’. 멋진 이름이지만 숲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도 수백 년을 넘지 않는다는 건 ‘안비밀’이다. 뭐 그렇다고 아름다운 숲길을 걷는 감흥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 오대산과 월정사에 담긴 재미난 이야기와 함께라면 더욱 그렇다.
#정조의 율곡 사랑, 강릉 오죽헌
우선 기억해야 할 것은 오죽헌이 신사임당의 외가 쪽 고택이라는 사실. 신사임당(1504~1551)이 살던 조선 중기까지만 하더라도 혼인을 하고 난 후 처갓집에 살다가 그쪽 재산을 물려받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신사임당이 율곡을 시집이 아닌 친정에서 낳은 것도 이런 까닭이다.
또 신사임당은 당대에 현모양처가 아니라 천재 화가로 이름을 알렸다. 율곡은 직접 쓴 어머니의 행장에 “자당은 평소 묵적이 뛰어났는데 7세 때에 안견의 그림을 모방하여 산수도를 그린 것이 아주 절묘했다. 또 포도를 그렸는데 세상에 흉내를 낼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 그림을 모사한 병풍이나 족자가 세상에 많이 전해지고 있다”고 적었다. 5만 원 지폐에 신사임당 초상화와 함께 그의 작품인 초충도가 들어간 것도 그런 까닭이다. 그러니 고즈넉한 오죽헌을 둘러보면서 조선을 대표하는 유학자인 율곡뿐 아니라 천재 화가 신사임당의 흔적도 더듬어보시길.
오죽헌에서 빼먹지 말아야 할 곳이 하나 더 있다. 정조의 친필을 보관한 어제각이다. 평소 율곡을 흠모하던 정조는 자신의 문집인 ‘홍재전서’에 “근자에 들으니 강릉에 (율곡이 지은) ‘격몽요결’ 초본과 쓰던 벼루가 있다고 하므로 속히 가져오게 하여 살펴보았더니, 점획이 새로 쓴 듯 처음과 끝이 한결같아 총명하고 뛰어난 자질과 비 갠 뒤의 바람과 달처럼 깨끗한 기상을 느낄 수 있었다”는 기록을 남겼다.
정조는 ‘격몽요결’ 초본에 머리글을, 벼루 뒤에는 율곡을 찬양한 글을 적어 보냈고, 오죽헌 옆에 어제각을 지어 이를 보관하도록 했다. 지금도 정조의 글씨를 담은 벼루와 ‘격몽요결’은 여전하지만 어제각의 위치는 바뀌었다. 원래 어제각이 있던 자리에는 1975년 ‘오죽헌 정화사업’ 때 지은 사당인 문성사가 들어섰고, 어제각은 오죽헌 뒤편으로 옮겼다. 아담한 어제각보다 몇 배는 큰 문성사의 현판은 박정희 대통령이 썼단다.
#먹어는 봤드레요? 정선아리랑시장 콧등치기 국수
숨은 이야기는 오래된 사찰이나 고택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몇 해 전부터 ‘정선아리랑시장’이란 새 이름으로 불리는 정선오일장도 이야기가 풍성하다. 이미 오래전에 세상을 뜬 승려와 학자, 화가들이 남긴 이야기들과는 달리 지금도 서민들이 모여 물건을 사고파는 시장의 이야기는 현재진행형이다.
예나 지금이나 서민들의 주된 관심사는 먹고사는 문제. 쌀 한 톨 자라기 힘든 강원도 정선오일장에서는 부족한 먹거리에 재미난 이야기를 푸짐하게 얹어 먹는다. ‘콧등치기 국수’와 ‘올챙이 국수’, ‘메밀총떡’ 등이 대표 선수들이다.
정선을 대표하는 향토음식인 콧등치기 국수는 장국에 훌훌 말아먹는 메밀 칼국수다. 척박한 강원도 땅에서도 잘 자라는 메밀을 손으로 밀어 만든 두툼한 면발을 훅, 빨아들이면 억센 국수 가락이 콧등을 친다고 이런 이름이 붙었단다.
예전 이곳을 지나던 뗏목꾼들이 간단히 배를 불리고, 다시 떼돈을 벌러 가던 시절부터 불리던 이름이라고. 그러다 이걸 맛본 한 시인이 콧등치기 국수를 소재로 시를 짓고, 잡지와 TV에 소개하면서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덕분에 정선오일장에는 콧등치기 국수 전문점(?)들이 줄지어 성업 중이다. 오일장이 열리는 2, 7일에 방문하면 더욱 풍성한 시장을 즐길 수 있으니 참고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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