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신문] [배종훈의 템플드로잉] <9> 오대산 월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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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9-11-01 15:27 조회4,888회 댓글0건본문
토요일 새벽 영동고속도로는 예상대로 한산했다. 본격적인 단풍철이 아니기도 했고, 태풍의 영향으로 강릉에 많은 비가 왔다는 뉴스가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다. 강원도로 가는 길은 영동고속도로가 역시 아름다웠다. 새로 만든 도로는 터널을 통해 순식간에 강원도 땅에 발을 딛게 하지만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이 여행은 아닐 것이다. 눈앞에 펼쳐진 풍광이 운전을 즐겁게 했다.
전나무숲길을 걸어 월정사로 들어가고 싶어 숲길 초입에 차를 세웠다. 물을 머금은 숲은 짙고 깊어져 있었다.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스님은 “오대산은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산 중에서도 단연 으뜸”이라고 했다. 태백산맥의 중추에 자리 잡아 깊은 수림과 부드러운 황색 흙으로 이루어진 토산은 그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휴식이 된다. 앞서 걷는 노부부는 내가 처음 봤을 때부터 월정사 천왕문을 통과해 사라질 때까지 한 번도 손을 놓지 않았다. 짙은 숲 내음 사이에 따뜻한 온풍이 함께 느껴졌다.
누각 아래를 통과하는 절집의 구조는 언제나 감탄을 불러온다. 담을 치지 않고도 눈앞에 있는 공간을 숨겼다가 극적인 순간에 펼쳐낸다. 일주문부터 하나씩 지나다보면 부처님의 땅에 다가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두근거리다가 전각의 모퉁이를 돌아 펼쳐지는 절 마당과 법당을 거쳐 고개를 들고 올려다봐야 하는 누각으로 들어서면 부처님이 가까이 계시다는 생각에 발이 묵직해진다. 오늘은 천녀가 연주를 하며 맞아준다. 맑게 갠 하늘과 눈부신 햇살 아래 하늘로 솟은 단색의 석탑, 주불을 모신 웅장한 본당을 만나면 절로 울컥해지지 않을 수 없다.
가위바위보 놀이를 이긴 여동생이 계단 맨 위로 뛰어 올라가 만세를 부르고 오빠를 장난스럽게 놀렸다. 절 마당을 사진에 담고 있다가 갑자기 프레임 안으로 들어선 활기찬 소녀의 웃음이 너무나 예뻤다. 역시 어느 집이든 아이의 밝음과 명랑함, 생기가 있어야 사람이 살아가는 집이라는 생각이 든다. 계산하지 않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아이의 마음을 유지하고 사는 것이 부처님의 마음일까?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을 위한 간절한 기도인지,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회한인지 모를 모호한 표정의 한 노부인은 적광전 문틈으로 보이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오랫동안 올려다보았다. 계단 끝에 장식된 석상처럼 보이는 그 모습에서 한편 내가 보였다.
누구나 아끼는 사람이 늘 행복하고 실수하지 않으며 불편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을 갖고 있다. 그것이 사랑의 마음일 것이다. 그래서 가족에게, 연인에게, 학생에게, 동료나 후배에게, 때론 선배에게 충고나 조언의 말을 꺼낸다. 그 시작의 마음이 아름다운 것은 세상의 모든 사람이 안다. 하지만 이해하고, 고마워하면서도 자신의 결정에 대한 타인의 간섭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스스로 조언을 구하는 경우에도 자신을 바라보는 상대의 오해와 편견이 느껴지는 순간 불편함과 불쾌감을 느끼게 된다. 옳고 그름의 가치 판단 이전에 오롯한 존재로서의 자신에 대한 다른 이의 주관적 판단이 불편한 것이다. 그러므로 말을 아끼고 믿고 기다려야 하는데 그게 참 어렵다. 억지로 참지 않고 그 마음에 도달하는 날이 오면 부처님 마음에 한 걸음 다가선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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