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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타임즈] 겨울,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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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9-12-04 09:12 조회5,23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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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순 수필가

 

 

적멸보궁, 이곳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곳이다. 생각보다 아담한 암자는 무언가가 이끄는 힘이 있었다. 산 정상에 위치한 탓이라 그런지 저녁 바람이 더욱 매섭게 느껴졌다. 영험한 기도 도량인 조그만 암자 법당은 불자들로 발을 디딜 수가 없었다. 우리는 삼배만을 드린 채 다음날 아침 다시 오르기로 하고 내려왔다.

저녁 공양을 마치고 기도시간에는 백팔 배를 했다. 사실 나는 불자라 말할 처지도 아니다. 불교에 심취해 있지도 않고, 또한 절을 어찌해야 잘 하는지도 모른다.. 다만 절의 분위기를 정말 좋아한다. 고즈넉한 산사에서 듣는 풍경소리, 저녁 답에 들리는 스님들의 목탁 소리, 깊은 밤 들려오는 은은한 범종의 소리를 들으면 왠지 숙연해지고 마음이 편해지곤 했다. 지인들을 따라 백팔염주를 들고 열심히 절을 했다. 땀이 비 오듯 한다. 아무런 원도 하지 말란다. 무엇을 빈다는 것은 욕심만 채우는 것이라고. 공의 상태로 기도를 했다. 절의 횟수가 늘어나고 땀으로 얼굴이 범벅될수록 속세에서의 내 행동들이 욕심으로 생각되는 것은 왜일까. 그래서인지 몸이 천근만근 욕심의 무게인 듯 짓눌려 왔다. 그런데도 기이한 것은 백 팔 기도가 다 끝나자 몸과 마음이 날아갈 듯이 가벼워졌다는 것이다.

새벽 두 시 반, 잠이 오질 않아 슬그머니 1층으로 내려갔다. 깜깜한 하늘을 마주했다. 싸라기별이 가득하다. 가까이에서 참나무의 마른 잎새가 바람에 잠을 설치고 있다.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눈을 산으로 돌리는 순간 저 밑에서 불빛 같은 것이 줄지어 오르고 있었다. 가만 보니 적멸보궁으로 새벽 기도를 가는 불자들이었다. 불빛의 끝은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고행이었다.

잠을 설친 일행은 아침 일찍 공양을 들고 적멸보궁에 올랐다. 법당에는 밤새 당도한 불자들로 들어설 여지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우리는 합장을 하고 암자를 세 바퀴 돌고 내려왔다. 숨도 고를 겸 우리는 사자암 양지 녘에 앉아 숲의 너울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밤새 그리 세차게 불어대던 바람은 종적도 없이 사라졌다. 따뜻한 햇볕이 기왓장 끝에 앉아 졸고 있다. 시간이 이대로 멈춰버려도 좋을 것 같았다. 그때, 뒤에서 스님이 지나가다 말고 한마디 툭 던지고 가신다.

“발아래 세상이 보이십니까?”

산을 내려오는 내내 스님의 말씀이 화두가 되어 머릿속을 헝클어 놓았다. 우리는 월정사에 차를 세워 놓고 천 년 숲을 걷기로 했다. 월정사에서부터 일주문까지 이어지는 길은 전나무가 울울창창 하늘을 향해 기운차게 버티고 있었다. 밤새 잠을 설쳐서인지 몸이 찌뿌듯했다. 숲길을 걷고 있노라니 전나무에서 뿜어져 나오는 향내와 시원한 공기가 우리의 몸을 씻겨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 중간쯤을 왔을까. 제 몸을 텅 비운 아름드리 전나무가 쓰러져 있었다. 수령 500년, 인고의 세월을 어찌 지내 왔는지 나무는 온몸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수행의 진정한 마음은 가득 차인 것을 모두 씻어내고 바닥까지 비워내는 일이라고 한다. 불현듯 엊저녁 법당에서 맛보았던 가벼움이 생각났다. 백팔 배를 올리고 숨이 차 그토록 괴로웠는데 기도가 다 끝나자 몸이 정말 가벼웠던 그 순간. 그 순간만큼은 내 안의 모든 것을 비웠기 때문일까? 고사해 있는 전나무를 보고 있자니 만감이 교차한다. 사는 동안 그 살아온 날만큼을 버리고 깎아 내야 하는 것이 수행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잠깐이었는데도 영겁의 세월이 지나간 것만 같다. 어디선가 스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제 발아래 세상이 보이십니까?”

출처 : 충청타임즈(http://www.cc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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