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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신문] ‘어디로’ 가느냐보다 ‘스스로’ 가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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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20-01-26 14:39 조회5,76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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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64년 동안거 특집] 평창 월정사 만월선원 정진 현장
 



월정사 만월선원에는 올해 동안거에 주지 정념스님을 비롯한 19명의 스님들이 참여해 정진하고 있다.
강원도 오대산은 불교의 성지다. 지혜의 화신인 문수보살이 산다는 땅이다. 1400년 전 신라 자장율사는 이 문수보살이 보고 싶어 월정사를 짓고 기다렸다. 스님은 끝내 친견하지 못하고 입적했다.

나중에, 우연히 마주쳤던 비렁뱅이가 실은 문수보살이었음을 깨닫고 후회 속에 열반에 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부처님은 바로 발밑에 있어 쉽게 발견할 수 있는데, 목에 힘이 들어가서 보지 못한다는 교훈이다.

이후에도 워낙에 상서로운 산이어서 나옹(懶翁)과 경허(鏡虛) 등 여러 고승들이 일생에 한번은 반드시 수행처로 삼았다. 근현대 선지식 한암스님이 주석하면서 오대산에는 사시사철 선풍(禪風)이 분다.

조계종 제4교구본사 월정사 권역으로 곳곳에 선원이 서 있다. 월정사 만월선원, 상원사 청량선원, 북대 상왕선원, 남대 지장암 기린선원에서 80여 명 스님들의 동안거가 한창이다. 만월선원에는 19명의 스님들이 방부를 들였다.

만월선원은 화엄경 강론의 대부 탄허스님이 정진하던 방산굴에 세웠는데 2008년 월정사 주지 정념스님이 복원해 다시 문을 열었다. ‘만월(滿月)’은 보름달이며 오대산의 동쪽 줄기를 만월산이라 한다. 깨달은 마음을 심월(心月)이라 하며 참선하는 스님들은 마음속에 달을 밝히려고 노력하고 있다.
 



새벽 3시에 일어나야 하며 잠은 저녁 9시에 자야 한다. 하루 10시간 정진한다. 이 가운데 1시간은 요가로 굳은 몸을 푼다는 것이 특징이다. 주지 정념스님도 대중과 함께 화두를 든다. 1월16일 월정사를 찾았다. 바쁜 절일 와중에서도 안거에 참여한 까닭을 물었다. “동(動)과 정(靜)의 조화가 진실하고 바른 삶”이라는 것이 스님의 지론인데, 안거는 정으로의 몰입이다. 그래야만 “삶이란 본디 비어있어서 따로 앉을 자리도 떠날 자리도 없음을 통찰할 수 있다.” 하지만 으레 사람들은 일상을 일껏 펼치기만 할 뿐 접어서 간직할 줄 모른다.

만월선원 청규의 첫머리는 이것이다. “대중은 화합을 우선시하며 친소작당(親疎作黨), 시비쟁론(是非爭論), 훤화잡담(喧譁雜談) 등으로 상호간에 불편한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알고 보면 그저 끼리끼리 놀고, 툭하면 시비 걸고, 걸핏하면 수다나 떠는 게 세상살이의 대부분이다. 그래서 고민만 하지 반조하지는 않는다. 안거에 충실해야만 나도 철저히 비어져서, 비어있는 세상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다.

공은 별로 들이지 않아놓고는, 문수보살은 또 꼭 보고 싶어 한다. 복 받으려고 하고 나만 살려달라고 한다. 한암스님은 평생 오대산을 떠나지 않았다. 말하기 좋아하는 자들은 이것마저 하나의 집착이라고 의심하거나 흉볼 수 있다.

월정사에서 더 깊숙이 들어가면 상원사가 있는데, 주련에 한암스님이 통도사의 어른이었던 경봉스님에게 건넨 편지글이 적혀 있다. ‘水聲山色盡家鄕(수성산색진가향)’과 ‘文殊何獨在淸凉(문수하독재청량)’ 부분이 유난히 눈에 밟힌다. “물소리와 산빛이 전부 고향이니, 어찌 문수보살이 청량산(오대산)에만 있다 하리오?” 정념스님은 “내가 지금 서 있는 자리가 삶의 근본이요 진리처”라고 그 말뜻을 정리했다.
 



<무문관(無門關)> 제31칙 ‘조주감파(趙州勘婆)’는 ‘오대산’과 관련이 있다. 한 노파에게 어느 스님이 오대산 가는 길을 묻자 노파는 “곧장 가라”고 대답했다. 스님이 그곳을 향해 몇 발짝 떼려는데 노파는 “훌륭한 스님이 또 저렇게 가는 구나”라며 혀를 끌끌 찼다. 남의 말만 듣고 사는 게 이리도 위험하고 멍청하다. 어디로 가느냐보다 스스로 가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일러주기도 한다. 하늘에 떠 있는 달도, 내 마음에 들어와야만 비로소 달이다.

월정사=장영섭 기자 fuel@ibulgyo.com

출처 :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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