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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 삼화상 법통 이은 ‘월정사 멍청이’ (현대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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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26-03-13 13:32 조회2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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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 삼화상 법통 이은 ‘월정사 멍청이’

  •  신중일 기자
  •  승인 2026.03.13 13:27

생전 인터뷰로 만나는 원행 대종사 행장

염불 소리에 이끌려 佛門 들어
한암·탄허·만화 스님 법통 이어
월정사 대웅전 불사 등 이끌어
원주 지역 포교에도 일임 담당
생전 “기후위기 대응해야” 강조

조계종 원로의원 원행 대종사.
조계종 원로의원 원행 대종사.

3월 12일 원적에 든 조계종 원로의원 자광당 원행 대종사(월정사 선덕)는 곧잘 스스로를 ‘월정사 멍청이’라고 불렀다. 이는 원행 스님의 에세이집 제목이기도 하다. 그 연유는 스님의 출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행 스님은 약관의 나이에 염불과 독경 소리에 이끌려 오대산 월정사로 출가했다. 오대산에 한암 스님, 탄허 스님과 같은 고승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서였다. 스님은 월정사에서 만화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행자 생활을 하고, 탄허 스님을 법사로 수계했다. 당시 상황에 대해 원행 스님은 이같이 회고했다.

“탄허 큰스님께서 ‘<화엄경>에 나오는 십지명(十地名) 보살 가운데 칠지 보살인 원행지가 있다. 너는 원행(遠行)이라 해라. 그리고 멍청이가 되라’고 하면서 법명을 주셨어요. 그때는 내가 똑똑하고 영리한데 왜 멍청이가 되어야 할까 하는 생각을 품었지만, 평생의 좌우명이자 화두로 삼고 있습니다.” -본지 ‘지상백고좌’ 인터뷰 중

‘오대산 삼화상’으로 널리 알려진 한암·탄허·만화 스님은 월정사 근현대 법통의 상징과도 같다. 만화 스님을 은사로, 탄허 스님을 법사로 출가해 수행정진했으니 사실상 삼화상의 법통을 이은 것과 다름없다. 원행 스님은 생전 세 선지식을 선양하기 위해 <성인(聖人) 한암 대종사> <탄허 대선사 시봉 이야기< <만화 희찬 스님 시봉 이야기>를 출간하기도 했다.

행자 시절 잠이 많아 고생한 원행 스님은 삼화상의 정진력에 항상 감복했다. 한암 스님은 새벽 3시에 예불한 뒤 선방에서 <금강경<을 독송했고, 탄허 스님은 밤 9시면 무조건 잠자리에 들어 밤 12시나 새벽 1시에 첫잠을 깨면 다시 눕지 않고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만화 스님도 밤새도록 앉아서 참선했다.

이를 이어받은 원행 스님은 세수 팔십을 넘어서도 새벽예불을 마치고 경내 팔각구층석탑 탑돌이를 해왔다. 어른 스님들의 가르침을 되새기며 지구가 온전하기를, 사람들이 평화롭기를 기원했다. 이에 대해 원행 스님은 “수행자는 일상의 질서가 무너져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진정한 자기를 찾는 일은 이렇듯 사소한 생활규범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원력이 지극해지면 같은 시대 나아가서는 미래 인류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어요. 사소한 개인의 육바라밀이 지구촌 사람들과 삼천대천세계의 중생에게 회향되는 자비로운 주문이 될 수도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본지 ‘지상백고좌’ 인터뷰 중

조계종 원로의원 원행 대종사.
조계종 원로의원 원행 대종사.

원행 스님은 ‘불사의 달인’이기도 했다. 은사 만화 스님을 보필하며 월정사 대웅전 중창불사를 도왔고, 폐사 직전에 대전 자광사를 중창했다. 동해 삼화사 주지 시절에는 노사나철불을 복원하기도 했다. 원주 치악산 구룡사 주지를 맡아서는 원주 지역 포교를 이끌었다.

이 역시 한암 스님의 ‘승가오칙’ 가르침에 따른 것이다. 한암 스님의 ‘승가오칙’은 △참선 △염불 △간경 △의식 △수호가람이다. ‘사원의 보수와 중창은 청정불국가람을 수호하는 것이며 이것도 수행’이라는 한암 스님의 정신을 이어받은 원행 스님은 어떤 불사도 허투루하는 법이 없었다.

원행 스님은 중창불사를 할 때면 4분(分) 정근으로 기도결사를 했다. 스님은 새벽 3시에 일어나 도량석을 한 후 2시간 동안 새벽기도를 하고, 10시에 사시기도를 한 후 2시간 기도하고, 점심공양을 마치고 2시간 기도를 하고 저녁공양을 마친 후에 2시간 기도를 하는 일과를 이어갔다. 하루 8시간씩 매일 목탁을 치며 염불하고 기도를 올리며 불사를 원만회향할 수 있도록 원행 스님은 솔선수범했다.

“하나의 도량이 건립된다는 것은 다른 역사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사회의 정신적인 수행도량이 들어서면 공부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인심이 넉넉해져요. 가람은 미래불교의 근원지이자 불성의 발아처입니다.”  -본지 ‘지상백고좌’ 인터뷰 중

​​​2024년 10월 10일 10.27법난 피해자 토론회에서 법문하는 원행 스님.
2024년 9월 3일 10.27법난 피해자 모임 남북평화 기원 역사순례에 참가한 원행 스님.
2024년 9월 3일 10.27법난 피해자 모임 남북평화 기원 역사순례에 참가한 원행 스님.

이런 원행 스님에게도 아물지 않는 상처가 있었다. 월정사 재무 소임을 맡아 일하고 수행하던 중 1980년 10.27 법난 당시 강제 연행돼 극심한 고문을 받았다. 1700년 한국불교사에서 최대 법난이었던 10.27법난으로 인해 수많은 선지식이 다치거나 유명을 달리했다. 스님 역시 당시 받은 고문 후유증으로 계속 고생했다.

10·27법난피해자모임을 이끌었던 원행 스님은 10·27법난의 진실 규명이 불교와 사회 발전의 자양분이 되길 바라며 △정부의 공식적 대국민 사과 △지속가능한 피해자 개인 배상 방안 마련 △10·27법난 관련 서류 국민 공개 등을 요구해 왔다.

“역사의 법정엔 시효가 없으며 진상규명만큼 완전한 자유는 없습니다. 불교와 국가의 관계 속에서 이런 아픔과 갈등을 극복하는 것이 후학들의 과제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제44주년 10.27법난 추념문화제서

2025년 2월 6일 대한언론문화포럼에서 특별 강연을 하는 원행 스님.
2025년 2월 6일 대한언론문화포럼에서 특별 강연을 하는 원행 스님.

원행 스님은 외전으로 ‘생명환경과학’을 전공했다. 고려대 생명환경과학대원에서 수학한 것도 탄허 스님의 영향 때문이다. 원행 스님은 “인간과 자연을 하나로 보는 새로운 인본주의를 절실히 요구하고 있으며, 현대사회가 갈망하는 참인간주의 사상은 자기회복, 인간회복”임을 분명히 하며 “한암 스님의 불교사상과 탄허 스님의 화엄사상은 21세기가 요구하는 사상이 담겨있는 귀한 가르침”이라고 강조해 왔다.

“기후 위기를 넘어 지금 비상사태입니다. 국제사회는 기후변화의 임계점을 섭씨 1.5도로 잡았어요. 당장은 별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이 선을 넘는 순간 지구는 파국으로 치닫게 되겠지요. 생태계를 뒤흔드는 삶의 방식과 물질을 최고로 추구하는 인간의 욕망이 빚은 결과입니다. 욕망의 온도를 낮추는 것이 지구를, 인류를 살리는 길입니다.”-본지 ‘지상백고좌’ 인터뷰 중

원행 스님은 한암·탄허·만화 스님의 아난다였다. 오대산 삼화상의 가르침을 오래 듣고 실천하며 수행정진했다. 나아가 삼화상의 가르침을 책과 글로 전해왔다.

이제는 적멸의 길로 떠난 자광당 원행 대종사가 본지와 했던 생전 마지막 인터뷰에서 남긴 짧은 법문으로 글을 마친다.

“저 들녘에 핀 꽃 한 송이도 제 역할을 다하고 있습니다. 화엄의 세계에서 볼 때는 온 힘을 다해 꽃피우는 민들레, 들국화, 장미는 모두 귀한 존재들입니다. 우리는 화려한 꽃도 이름 없는 꽃도 모두 소중한 꽃이라는 사실을 잊고 사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온 힘을 다 바쳐서 살아가는 존재는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어요. 불자 여러분들도 자신을 귀중하게 여기고, 자기의 온 생명을 다 바쳐 꽃피우는 꽃들처럼 후회 없이 살아야 합니다.” -본지 ‘지상백고좌’ 인터뷰 중

 

현대불교신문/신중일 기자

출처 : https://www.hyunbu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502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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