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기도가 힐링이다] 고개 들면 시리게 푸른 하늘, 월정사 적멸보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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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20-03-12 09:53 조회5,620회 댓글0건본문
(평창=연합뉴스) 현경숙 기자 = 오대산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산 전체가 불교 성지다. 장소가 기도의 간절함과 힐링의 감동을 더 할 수 있다면, 오대산 월정사 적멸보궁만큼 그러한 곳도 드물다.
◇ 귀한 것은 사람 발길 닿기 어려운 곳에
음력 정월 초 오대산 일대에는 사나흘 눈이 많이 내렸다.
그만큼 설경을 감상하고, 한해 안녕을 기원하려는 마음이 강렬했으리라.
주말이 지난 뒤 월요일에 방문한 오대산은 아름답고 푸근하고 적막했다.
오대산의 그 유명한 전나무와 소나무 가지, 계곡, 바위, 산비탈에 쌓인 하얀 눈은 탐스러웠고, 얼음 밑으로 흐르는 계곡 물소리는 청신하면서도 힘이 있었다.
새해 시작을 알리는 정월의 우렁찬 소리인가. 눈 덮인 산은 시리게 맑고 파란 하늘을 이고 있었다.
상원사에서 적멸보궁을 향해 걸었다.
거리는 1.5㎞에 지나지 않았지만 거의 전 구간이 계단으로 된 오르막이다. 귀하디 귀한 것이라 사람 손을 타지 않도록 이처럼 높은 곳에 모셨나 보다.
적멸보궁은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절을 말한다. 월정사 적멸보궁은 부처의 정골 사리, 즉 머리뼈로 된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있다.
불교 신도는 물론 많은 일반 대중이 찾는다. 기도의 원력이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평일이지만 적멸보궁에서 기도하고 참배하는 남녀, 노인, 젊은이는 끊이지 않았다. 탑돌이 하듯 적멸보궁을 도는 불자도 눈에 띄었다.
적멸보궁에 가본 이들은 왜 이곳의 기도가 신성하다고 믿는지 알게 된다.
오대산은 전체가 불교 성지다. 산 전체가 불교 성지인 곳은 우리나라에서 오대산이 유일하다.
적멸보궁은 오대산 중심 줄기인 비로봉에서 흘러내린 산맥들이 주위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곳의 중앙에 우뚝 솟아 있다.
적멸보궁 뒤로는 석가모니 진신사리의 봉안을 알리는 마애불탑, 산비탈 위 소나무들, 오대산 봉우리들과 하늘밖에 보이지 않는다. 산중 고원에서도 하늘 가까이 다가간 느낌이 든다.
마음이 깨끗해지고 경건해질 수밖에 없다. 정화되고 청정한 마음으로 하는 기도는 성찰과 명상의 진수라고 해도 될 듯싶다.
불자가 아니더라도 기도로 안식을 얻고 소원을 빈 뒤 희망을 갖는다면, 기도는 힐링이 되리라. 적멸보궁은 마음의 흔들림이 없고 번뇌가 없는 보배스러운 궁전이라는 뜻이다.
적멸보궁 터는 비로봉 아래 용머리에 해당하는 명당이라고 한다.
조선 영조 때 어사 박문수는 전국을 돌아다니다 오대산에 왔다가 이곳을 보고 "승도들이 좋은 기와집에서 일도 하지 않고 남의 공양만 편히 받아먹고 사는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라며 세상에 둘도 없는 명당에 조상을 모셨으니 후손이 잘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부처의 진신사리는 적멸보궁 뒤쪽에 모셨다고 알려질 뿐 사리가 묻힌 정확한 위치는 아무도 모른다.
적멸보궁에서 조금 내려가면 용의 눈에 해당한다는 샘이 나온다. '용안수'라고 불리는 약수다.
신라 때 자장율사는 당나라에서 부처의 사리, 정골, 치아, 가사 등을 국내에 가지고 와서 월정사 적멸보궁, 설악산 봉정암, 양산 통도사, 사자산 법흥사, 태백산 정암사에 모셨는데 이 5개 사찰을 '5대 적멸보궁'이라고 한다.
적멸보궁은 부처의 진신을 모셨기 때문에 부처를 상징하는 불상을 두지 않고 불단만 설치한다.
적멸보궁에서 상원사로 내려가는 길 중간에 중대사자암이 있다. 적멸보궁을 지키는 암자다. 중대사자암은 산비탈 경사진 곳에 세워져 있다. 겹처마 집이다. 모양이 특이하면서도 우아하다.
맨 꼭대기 층인 5층의 비로전 법당 문살은 꽃 모양인데 절에서 보기 드물게 화려하고 아름답다.
비로전과 적멸보궁에서는 새벽기도, 사시불공, 참회 정진기도, 저녁 예불, 원력 기도, 입춘 기도, 정초 기도 등 기도가 이어지고 있었다.
정월은 기도하기 좋은 계절이다. 한해를 멋지게, 순조롭게 시작하게 해달라는 기도가 통한다면, 일 년 내내 만사형통하지 않을까.
◇ 설경 속 기품있는 전나무
적멸보궁 올라갈 때 걸었던 계단 길 대신 등산로를 택해 상원사로 내려갔다.
산비탈에 난 좁은 등산로에 눈이 소복이 쌓여 있다. 온 지 며칠 지났건만 눈이 녹지 않아 뽀송뽀송하다.
아이젠을 착용하고 스틱을 사용해서인지 눈길이 흙길보다 편안하다. 질척거리지 않고 뽀드득거리는 하얀 눈을 밟아본 지 얼마나 됐으려나. 그것도 전나무와 소나무가 가득한 그윽한 숲에서.
오대산 일대엔 두 침엽수가 무성했다. 이곳엔 전나무 군락이, 저곳엔 소나무가 빽빽이 서 있고, 어떤 곳엔 두 나무가 뒤섞여 있었다.
전북 부안 내소사, 광릉 수목원, 오대산은 우리나라 3대 전나무 숲으로 일컬어진다.
내소사 숲의 전나무들이 길지 않은 수령에도 깊고 진한 향으로 감동을 준다면 오대산 전나무는 높이와 굵기로 압도한다. 수령이 200년 이상 될 듯한 굵은 전나무들이 즐비하다.
작은 내리막길은 왼쪽이 막혀 있고 오른쪽만 시야가 트였는데 전나무 가지들에 눈이 쌓여 있다. 비탈에 선 큰 나무들이 위태로워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넘어진 굵은 전나무가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오대산 전나무 숲 중에서도 월정사 입구의 계곡 옆 전나무 숲길은 오대산 여행의 백미로 통한다. 이 숲은 일주문부터 금강교까지 1km 남짓한 길 양쪽에 있다. 수령 80년 넘는 전나무가 자그마치 1천700여 그루다.
이 숲길에 가면 오래된 전나무가 넘어져 있다. 2006년 쓰러졌을 때 수령이 약 600년이었다. 당시 이 숲에서 제일 늙은 전나무였다고 한다.
전나무는 상처가 나면 젖(우유)이 나온다고 하여 '젖나무'라고 불리다가 전나무가 됐다고 한다.
전나무는 침엽수 중에서는 비교적 빨리 자라는 속성수다. 소나무와 비교하면 뿌리가 약해 잘 넘어진다.
하얀 눈옷을 입고 하늘로 치솟은 전나무에서 드높은 기상이 느껴졌다. 전나무는 피톤치드를 발산하기 때문에 현대인의 육체, 정신 건강 치유에 좋다.
어느새 상원사에 도착했다. 법당 지붕에 쌓인 눈이 무게 때문에 아래쪽으로 쏠려 곧 쏟아질 태세다. 처마엔 고드름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눈 폭탄 주의' 경고문이 붙어있다.
상원사에는 신라 때 만들어진 동종이 있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종이다.
상원사에서 월정사 쪽으로 더 내려가면 '관대걸이'가 있다. 조선 초 세조가 피부병을 치료하기 위해 상원사로 오던 중 계곡에서 목욕할 때 옷을 걸어둔 곳을 기념해 세운 표지석이다.
세조가 동자승을 만나 등을 밀게 하고는 "어디 가서 임금 옥체를 보았다고 말하지 말라"라고 하자, 동자승은 "임금도 문수보살이 등을 밀어줬다고 말하지 말라"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세조는 그 후 피부병이 나았다고 전한다. 관대걸이 옆에 잎갈나무가 서 있다. 수령이 약 250년이다. 남한에서 가장 오래됐다.
◇ 오대산과 월정사
오대산과 월정사는 '삼국유사'에서 가장 많이 언급됐을 정도로 불교의 전성기를 대표한다. 삼국유사에서 '불교가 길이 번성할 터전'이라고 한 곳이 월정사다.
오대산의 이름은 주봉인 비로봉(1,563m), 동대산, 상왕봉, 두로봉, 호령봉 등 다섯 봉우리가 편편한 누대를 이루고 있는 데서 유래했다. 동대산을 동대, 상왕봉을 서대, 두로봉을 남대, 비로봉을 북대, 호령봉을 중대라고 한다.
월정사 영감암 앞에는 조선왕실의 사고(史庫) 유적이 있다.
조선왕조실록은 초기에 춘추관, 충주, 전주, 성주에 1부씩 보관됐으나 임진왜란 때 전주실록만 내장산으로 옮겨져 남고 나머지는 모두 불탔다.
선조 때 다시 3부가 제작돼 춘추관, 태백산, 묘향산에 보관됐고, 전주본은 강화 마니산에, 교정본은 오대산 사고에 보관됐다.
그 후 병자호란과 이괄의 난으로 인해 춘추관본, 마니산본이 불에 타거나 파손됐다. 다시 4부가 제작돼 강화도 정족산, 태백산, 무주 적상산, 오대산에 1부씩 보관됐다.
오대산 보관본은 일제 강점기에 동경제국대학으로 반출돼 1923년 관동대지진 때 거의 불탔다. 실록 수난사가 애틋하다. 동시에 조선의 기록 의식과 문화에 경의를 표하게 된다.
사철 푸른 침엽수림에 둘러싸인 월정사는 고즈넉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오대산 대자연과 벗하면 지친 일상을 잠시 잊을 수 있다.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몸이 맑아집니다', '생각이 밝아집니다', '좋은 인연을 만나게 됩니다', '부처님의 가피로 소원이 이루어집니다'. 월정사가 말하는 '오대광명'이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0년 3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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